후추는 고추와 더불어 대표적인 향신료(香辛料)이다.
원산지는 高溫多濕한 열대지방으로
주로 인도에서 많이 생산된다.
그것이 중국에서 호초(胡椒)로 불렸고
우리는 한글화 해서 '후추'로 부른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후추가 世界史를 바꾼 것이다.
주로 肉食을 하는 서양인들은
고기에 이것이 빠지면 고급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고기의 누린내를 잡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급 藥材로도 쓰였다.
그것이 지금은 흔하지만 옛날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 당시는 원산지 인도에서 유럽까지 오려면
먼 거리와 많은 유통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러므로 가격이 꽤나 비싸서
王族이나 貴族들만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어키에 함락된다.
그 지역을 이슬람의 세력에게 내 주면서
모든 交易이 그들에게 종속된다.
따라서 인도에서 오는 후추는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후추와 金이 같은 重量으로 교환이 됐다고 하며
아마도 지금의 마약유통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다른 交易路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드디어 바스코 다가마가 이끄는 포르투갈 船團이
1498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 도착하는데 성공을 한다.
그에 앞서 바돌로뮤 디아즈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한 덕분이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후추를 배에 가득 싣고 리스본에 도착했다.
이 후로 이 航路를 포르투칼이 독점하고 橫暴를 부렸다.
이것으로 포르투칼은 빠르게 강대국으로 浮上을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났다.
"후추를 얻는 자가 세계를 정복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컬럼버스는
不可能을 可能으로 바꾼 선구자(先驅者)로 알려졌다.
그래서 “컬럼버스의 달걀”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는 선구자가 맞지만
그가 벌인 惡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마침내 모험(冒險)을 결단한다.
모험은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해당하는 代價가 걸려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는 “포르투갈의 항로”가 아닌 다른 항로를 모색(摸索)한다.
그 당시 아직은 檢證되지 않았지만
지구는 둥글다는 인식이 航海士들에게 있었다.
그는 그것을 믿고 기존 인도항로와 반대편으로 가고자 했다.
그 계획을 가지고 각국의 王室과 접촉했지만
그의 허술한 계획과 收益金의 무리한 요구로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두 사깃꾼의 意氣가 投合한다.
포르투갈에 밀려있던 스페인의 이사벨 女王의 지원으로
3척의 함선과 120명의 罪囚들로 구성된 선원으로
마침내 대서양으로 인도를 향한 航海를 결행한다.
드디어 1492년 10월 12일,
33일만에 꿈에 그리던 인도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은 인도가 아니고
오늘날 서인도 諸島의 ‘산살바도르’란 섬이다.
그러나 그곳에 후추는 없었고 대신 金이 있었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간 칼럼버스는 17척의 船團에
대포와 총으로 무장을 하고 2차 遠征을 떠난다.
그곳에 돌아와 보니 잔류(殘留)시킨 30명의 부하는 죽고 없었다.
그들은 원주민을 약탈하고 강간하는 등의 행패를 부리다가
원주민 부족에게 報復을 당한 것이다.
컬럼버스는 이를 奇貨로 원주민에 대한 소탕전을 벌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金銀寶貨를 모두 챙겨서 본국으로 돌아간다.
3차 원정에서는 ‘마스티프’라는
초대형 개를 데리고 가서 그것으로 원주민을 학살한다.
그렇게 해도 기대했던 금이 더 나오지 않자
그는 發想의 전환을 한다.
금 대신 원주민을 싣고 와 그들을 노예로 팔아 버린다.
4차 원정 때에는 금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14세 이상 成人 원주민의 손목을 죄다 잘라 버렸다.
컬럼버스가 오기 전의 그 섬은 30萬 명의 원주민들이 살았는데
불과 2년 만에 5백 명만 남은 초라한 섬이 되어 있었다.
이에 그는 逆으로
아프리카의 노예를 데려다 금을 찾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 끔찍한 이야기는 그곳에 후추만 있었어도
그런 悲劇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는 이 사건으로 新大陸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그 대륙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로 獨占을 한다.
컬럼버스는 그의 野望을 이루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이사벨 여왕의 背信과 그의 惡行으로
1506년 가난 속에 쓸쓸히 生을 마감한다.
이후 마젤란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世界一周를 마치고
지구는 둥글다는 결론에 마침표를 찍고는
故國이 아닌 異域萬里 필리핀에서 그도 쓸쓸히 생을 마친다. *
* 컬럼버스는 과연 偉人일까?
그의 行實로 봐서는 惡人이다.
그러나 그의 惡行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세계문명에 기여했다.
역사는 그의 악행은 눈감고 그의 業績을 기억한다.
無動力 帆船으로 地圖도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그것은 冒險이다.
모험은 어떤 댓가와 생명을 바꾸려는 意圖이다.
그만큼 댓가가 크기 때문이다.
1620년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 移民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北아메리카에 도착했다.
그들은 철저한 종교적 신앙으로 그곳을 개척했다.
반면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南아메리카에 식민지 건설을 했다.
그러니까 北은 청교도, 즉 기독교이고
南은 천주교가 주된 종교이다.
北은 미국과 캐나다의 선진국이고
南은 라틴 아메리카의 諸國들이다.
만약에 北에 천주교 국가가 들어갔다면
미국과 캐나다는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지금의 南아메리카의 수준이 아니었을까?
종교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