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불후의 명작이라 일컫는 작품이 많지만 19세기말 남북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남부 조지아주를 무대로, 격렬하게 살아간 여인 ‘스칼렛 오하라(Scarlet O'Hara)’를 그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명작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다.
원작자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은 이 소설을 10여 년 만에 완성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다 쏟아 넣었기에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며 일체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36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의 영화화권리를 당시로서는 거금인 5만 달러에 사들인(후에 다시 5만 달러를 추가로 지불)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원작자의 추천에 의해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으로 ‘클락 게이블(Clark Gable)’을 일찌감치 결정해놓았으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배우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중, 영국 출신의 무명 여배우 ‘비비안 리(Vivien Leigh)’가 당당하게 요구하여 행운이 돌아갔는데 마치 ‘비비안 리’를 위해 마련된 인물인양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얻는다.
600만 달러가 투입된 제작비는 당시로서 엄청난 규모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복잡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죠지 큐커(George Cukor)’가 연출을 맡아 촬영을 시작했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서 3주 만에 손을 들고 말았고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에게 메가폰이 넘어갔다.
그러나 ‘플레밍’ 조차 촬영 마지막 1주일을 남기고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샘 우드(Sam Wood)’ 감독이 나머지 분량을 찍었으니 감독에 관한 한 그리 순탄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옛 관습과 전통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땅 남부. 북부가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남부에도 이를 강요하자 남북전쟁이 벌어진다.
조지아주 ‘타라’농장의 장녀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는 빼어난 미모와 당찬 성격으로 모든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스칼렛’이 사랑하는 남자는 오직 ‘애슐리 윌크스(Ashley Wilkes레슬리 하워드Leslie Howard분)’ 뿐.
그 때 ‘스칼렛’ 앞에 나타난 사나이가 영국 출신이면서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레트 버틀러Rhett Butler’다. 모든 청년의 주목을 받을 만큼 미모가 빼어난 ‘스칼렛’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다.
‘스칼렛’의 기대와는 달리 ‘애슐리’가 자신의 사촌 ‘멜라니(Melanie Hamilton올리비아 드 하빌란드Olivia De Havilland분)와 결혼하자 홧김에 동생 ‘인디아(India알리시아 렛 분)’와 결혼하기로 되어있던 ‘멜라니’의 남동생 ‘찰스(Charles Hamilton랜드 브룩스 분)’와 결혼해 버린다.
그러나 ‘찰스’는 입대하자마자 전사戰死한다.
어울리지 않는 상복을 입은 ‘스칼렛’은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데 전황戰況은 점차 남부에 불리해져 조지아주 애틀랜타까지 북군北軍이 쳐들어온다.
‘스칼렛’은 ‘멜라니’가 아이를 낳고 전쟁의 불길이 거세지자 ‘레트’의 마차로 고향으로 피신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실성한 아버지, 그리고 혹독한 가난뿐이었다.
이에 ‘스칼렛’은 동생의 약혼자인 ‘프랭크 케네디(Frank Kennedy캐롤 나이 분)’와 결혼하여 ‘프랭크’의 자금으로 당차게 제제소를 운영한다.
‘프랭크’와 ‘애슐리’는 습격을 받은 ‘스칼렛’의 복수를 하러 나갔다가 ‘프랭크’가 총에 맞아 죽고, ‘애슐리’는 다행히 전쟁을 틈타 큰돈을 번 ‘레트 버틀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또 다시 남편을 잃은 ‘스칼렛’은 결국 돈 많은 ‘버틀러’의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한다.
‘버틀러’는 그녀가 ‘애슐리’만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지만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점차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애슐리’에 대한 ‘스칼렛’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스칼렛’을 포기한 ‘버틀러’는 오직 딸 ‘보니(Bonnie Blue Butler캐미 킹 분)’가 커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러나 ‘보니’가 낙마落馬하여 죽어버리고 두 사람을 항상 위로해 주던 ‘멜라니’도 쓰러진 후 결국 숨을 거두자, ‘버틀러’는 커다란 슬픔에 빠진다.
여전히 ‘스칼렛’이 ‘애슐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오해한 ‘버틀러’는 미련 없이 그녀를 떠난다. 비로소 자신이 ‘버틀러’를 사랑함을 깨달았지만 남은 것이 없는 ‘스칼렛’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면화棉花의 고장 남부는 기사騎士들의 땅이었으나 이 아름다운 땅의 기사도정신도 쇠락衰落의 길을 걸었으니, 이 시대 마지막 기사들과 숙녀들이 살던 곳……, 주인과 노예들의 땅……, 이제는 역사로 남아 덧없는 꿈으로만 기억되는 땅이여. 문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검은 노예들이 말과 소를 몰아가는 배경에 위와 같은 자막字幕이 펼쳐지는 퍼스트 신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암시暗示해 준다.
이 자막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겠으나 내 시각으로는 남부문화가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자기중심적 가치가 격렬激烈하고 강력强力한 변화에 휩쓸려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망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노예제도 폐지에 따른 남북 간의 갈등葛藤으로 남부 청년들의 관심사는 온통 전쟁뿐이다.
‘애슐리’ 집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던 날, 숙녀들이 낮잠을 즐기는 동안 남자들은 연방탈퇴를 선언하며 북군北軍이 항복할 때까지 전쟁하겠노라 선언한다.
조지아주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기사정신이 있는 남부가 승리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자기중심적 사고다.
그러나 비록 퇴학은 당했으되 웨스트포인트를 다녔고 북부를 잘 아는 ‘레드 버틀러’는 이들의 자신감이 어리석게만 보인다. 북부사람들은 무식하고 자신들만 신사라 여기는 자부심自負心이 무너지는 상황이 그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남부에도 전쟁이 비극을 부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있다.
장교출신인 ‘애슐리’다. 그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의견을 말하지만 흥분한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리 없다.
그런 그들에게 ‘버틀러’는 이렇게 충고한다.
“전쟁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남부에는 대포공장이 하나도 없지 않소? 양키의 장비裝備가 좋다는 걸 말하는 거요. 그들은 공장과 항구를 막아 우릴 말려죽일 만한 선박도 가지고 있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목화와 노예, 그리고 교만뿐이요.”
그러나 그런 ‘버틀러’를 반역자라 비난하는 청년들이다.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군사학을 아는 ‘애슐리’는 ‘버틀러’의 충고가 옳다는 걸 안다.
뛰어난 미모를 지녔지만 온통 자만과 욕심으로 가득한 ‘스칼렛’보다 미모보다는 착하고 헌신적인 ‘멜라니’를 선택한 것으로도 그의 신중한 성품이 드러난다. 자기중심적이 아닌, 모든 것을 두루 살피는 자들에게는 진실이 보이는 것이다.
‘버틀러’와 ‘스칼렛’ 역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버틀러’의 판단은 객관적이다.
‘애슐리’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하자 분노하며 ‘애슐리’의 뺨을 때리는 ‘스칼렛’이다. ‘애슐리’가 말없이 나가버리자 ‘스칼렛’은 분에 못 이겨 컵을 던지자 숨어있던 ‘버틀러’가 나선다.
“인기척이라도 하셨어야죠.”
“열렬히 사랑고백을 하는 중에? 그건 현명하지 못하죠.”
“당신은 신사가 아니군요.”
“당신도 숙녀답지는 않죠. 이건, 칭찬입니다. 당신이 고상한 ‘애슐리’씨를 잊을 즈음 다시 만나고 싶군요.”
“당신은 그의 구두를 닦을 자격도 없어!”
상대편에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기에 ‘스칼렛’의 개성과 자신의 개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버틀러’와 자기중심적으로만 보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스칼렛’의 상반된 모습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애틀랜타에서 만난 ‘버틀러’와 ‘스칼렛’의 대화가 이렇다.
“너무나 많이 죽었어요. 거의 모든 가정에서요.”
“저 가엾은 사람들을 보시오. 남부는 다신 일어서지 못할 거요. 대의명분, 과거의 대의명분은 빛을 잃고 있소. 이건 낭비요.”
피아彼我의 능력을 모르고 오직 만용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비극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이렇게 비극을 만들기도 한다.
“잘 봐두시오. 남부가 사라지는 순간이니까. 이 얘길 손자들에게 해 주시오. 한 달 후엔 양키들에게 아첨할 거요. 용감한 바보들…….”
애틀랜타가 북군에게 점령당하기 직전에 ‘스칼렛’의 요청으로 ㅅ한모 ‘멜라니’와 함께 패잔병들과 섞여 타라로 데려가던 길에 ‘버틀러’가 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안전한 지대까지 ‘스칼렛’을 데려다 주고 타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린다.
“난 떠나겠소.”
“농담 말아요. 겁주면 죽여 버리겠어.”
“회색제복의 용감한 병사들과 함께 하겠소.”
“장난치지 말아요!”
“당신 생각만 하는군. 남부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지요? 당신을 이렇게 필요로 하는데, 왜 하필 지금 떠나요? 왜요?!”
“왜냐고? 명분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요.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연약한 날 두고 가는 게 부끄러운 거죠.”
“연약하다고? 허허허……, 양키도 당신은 못 이길 거요.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하오. 우리는 내 멋 대로고 내 맘대로 하지만 바로 보고 바른 말을 하지.”
결국 ‘버틀러’는 ‘스칼렛’에게 말을 빼앗으려 하는 자가 있으면 사살하라며 권총을 넘겨주고 남군에 입대하려고 떠난다. 비록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비극이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참가하지 않을 수 없는 ‘버틀러’의 마음이다.
진실보다 당장 명분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과연 잘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일까.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헐벗고 굶주린 타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스칼렛’에게 동생들은 불만이 많다. 노예들이나 하던 목화 따기를 비롯하여 온갖 굳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여전히 노예를 거느리고 풍족했던 귀족적인 과거過去의 생활 속에 남아있다.
자기중심적이기에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스칼렛’ 덕에 입에 풀칠이나마 하면서도 여전히 노예를 부리던 과거에 머물러 있다. 참혹한 현실을 피해 행복했던 지난 시간대時間帶에 안주安住해버린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정신이라는 동생들이나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다르지 않다.
산후조리 중인 ‘멜라니’는 그래도 현실감각이 있다.
“당신이 죽였군요. 정말 잘했어요.”
강도짓을 하러 들어온 북군 탈영병을 권총으로 사살한 ‘스칼렛’에게 ‘멜라니’가 해준 말이다.
총소리에 놀라 들어오려는 동생들과 아버지를 오발사고라고 거짓말을 해서 북군병사의 죽음을 숨기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스칼렛’과 함께 마당에 묻어버린다.
병사의 지갑에 든 돈을 훔치는 것도 납득한다. ‘멜라니’의 성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변신이요, 현실적응인 셈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자기중심적 사고다.
“내가 살인을 했어. 지금은 생각을 말아야지. 내일 생각할 테야.”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스칼렛’ 특유의 독백獨白이다. 그녀에게는 순간의 판단이 중요할 뿐, 깊이 생각하는 법이 없다.
북부의 세상이 되고 타라의 어려움을 틈타 옛 노예감독관이었던 자가 타라를 사려고 찾아온다. ‘스칼렛’의 단호한 거절에 오만한 태도로 돌아가는 노예감독관을 쫓아 말을 달리던 아버지는 그만 낙마하여 세상을 뜨고 만다.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 살다가 자기중심적으로 죽어간 아버지다.
어쩌면 그것이 노예를 부리며 살았던 사람의 불가피한 숙명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화하면 인간도 변해야 하는 것. 자신들의 삶만이 문명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자리할 수 없다.
타라를 위해 동생의 애인 ‘케네디’를 가로채 결혼한 ‘스칼렛’은 제재소를 운영하면서 죄수들을 일꾼으로 쓰는 등 편법을 동원한다. 자신이 억지로 제재소 일을 맡긴 ‘애슐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물론이요, 남편 ‘케네디’에게도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올바르게 사업하겠다는 ‘애슐리’와 돈만이 절대적 가치라 믿는 ‘스칼렛’의 사고방식은 영원한 평행선平行線일 뿐이다.
“스칼렛! 우릴 약탈하고 괴롭힌 사람들과 거래를 하다니…….”
“지난 일이에요. 양키들과도 멋지게 해 보겠어요.”
‘멜라니’의 충고까지 무시하는 ‘스칼렛’이다.
양키들과 가래한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눈총도 상관없다. 언제나 목적한 바,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독선의 화신이다.
‘애슐리’와 ‘케네디’는 ‘스칼렛’을 공격한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빈민가를 치치러 간다.
그러나 이것은 ‘애슐리’가 이끄는 단체의 단원들을 잡아들이려는 함정이라는 것을 북군장교에게서 알게 된 ‘버틀러’가 그들을 구하려 했으나 때가 늦어 ‘케네디’는 머리를 맞아 죽고 부상負傷입은 ‘애슐리’만을 구해 데려온다.
‘애슐리’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준 사람은 주점을 운영하기에 모든 부인婦人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와틀링’이다. ‘와틀링’은 ‘버틀러’의 오랜 친구이자 남군병원기금도 몰래 낼 만큼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이 천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와틀링’에게 ‘멜라니’는 만나자는 족지를 보낸다.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쪽지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러시면 안 돼요. 저 같은 사람에게 부인이 그러시면 안 돼요.”
“남편을 구해준 분에게 감사인사도 못 드리나요?”
사람의 사고思考는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와 시대의 모럴moral을 뛰어넘기 어렵다.
보고 배운 것이 진리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틀링’은 자신이 속한 지역과 시대의 모럴에 충실한 사람이다.
‘멜라니’는 노예에게도 인간적인 차별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과연 누가 진실을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일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잡초雜草처럼 끈질긴 생명력이다.
‘스칼렛’은 결정이 빠른 여자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성품이기에 그만큼 생활력이 강하기도 하다.
사랑하지도 않는 ‘찰스 헤밀턴’과 결혼한 것도 사랑하는 ‘애슐리’가 출전하면서 ‘멜라니’와 다정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홧김에 충동적으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찰스’는 폐렴으로 죽고 만다.
어이없게 미망인이 되어버린 ‘스칼렛’은 사랑하지도 않는 ‘찰스’를 위해 검은 상복을 입는 것이 싫다. 어머니는 상복이 싫다는 ‘스칼렛’에게 바람이라도 쏘이라며 ‘멜라니’와 ‘피티’고모가 있는 애틀랜타로 여행을 보내준다.
애틀랜타 육군병원 기금마련 자선바자회에 상복을 입은 채로 참석한 ‘스칼렛’은 ‘피티’고모의 걱정을 듣는다. 미망인으로 무도회를 겸하는 바자회에 나타나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녀의 넘치는 생명력은 지켜야할 도덕적 가치가 너무나 답답하다.
그 자리에 북군의 봉쇄를 뚫고 생필품을 가져온 ‘버틀러’가 소개된다. 두 사람의 인연因緣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버틀러’는 병원기금으로 금화 150달러를 내놓는 값으로 ‘찰스 헤밀턴’의 미망인 ‘스칼렛’과 춤을 추겠다고 선언한다.
‘스칼렛’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춤을 추겠다고 말한다. ‘스칼렛’에게는 체면보다 지금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전황戰況이 나빠질수록 남군 전사자는 부지기수로 늘어난다. 모두들 슬픔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와중渦中에도 ‘스칼렛’의 생명력은 불꽃처럼 살아있다.
‘애슐리’도 ‘스칼렛’의 강력한 생명력을 알고 있다. 착하지만 나약한 ‘멜라니’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는 말이 이렇다.
“당신은 아름답고 강한 여자요. 얼굴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이…….”
드디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도 북군의 포격이 시작된다. 이제 전황은 남부南部의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애슐리’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스칼렛’은 극한 상황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멜라니’를 특유特有의 불꽃같은 행동력으로 지성을 다해 보살핀다.
병원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마취약이 없어 그냥 다리를 절단하기도 한다.
도시는 피난민들로 난장판이다. 급기야 노예들마저 참호塹壕를 파는 일에 동원된다. ‘스칼렛’의 어머니도 노예들을 빼앗기고 몸져눕는다.
전쟁을 피해 몸져누운 어머니가 있는 타라로 돌아가려던 ‘스칼렛’은 출산일을 한 달여 남겨둔 ‘멜라니’가 마차를 탈 수 없기에 북군들이 밀려들어올지 모르는 애틀랜타에 남는다. 그녀를 보살펴달라는 ‘애슐리’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애틀랜타는 북군에게 점령당하기 직전으로 몰린다.
‘멜라니’가 진통을 시작하자 의사를 찾아 역전으로 나가지만 드넓은 역전광장에 끝없이 널려있는 부상병들로 의사를 모시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경험도 없는 ‘스칼렛’ 혼자 아이를 받아낸다.
그야말로 밟히고 또 밟혀도 끝내 일어서고야 마는 잡초 같은 생명력이요, 적응력適應力이 아닐 수 없다.
‘스칼렛’은 ‘버틀러’의 도움을 얻어 임산부 ‘멜라니’를 데리고 타라로 돌아간다. 애틀랜타가 북군에게 점령되는 순간의 탈출이다. 말을 빼앗으려는 폭도暴徒들과 목숨 건 싸움을 하는가 하면 남군이 화약고를 터뜨린 불바다 속을 헤쳐 탈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타라로 돌아가는 길 역시 격전지다. 온갖 위험을 피하며 천신만고 끝에 쉴 수 있는 ‘애슐리’의 집에 도착하지만 이미 포격에 파괴된 지 오래된 폐허廢墟만 남았을 뿐이다. ‘애슐리’의 아버지도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소 한 마리가 숨어 있다가 사람소리를 듣고 ‘스칼렛’ 앞으로 걸어 나온다.
소를 끌고 도착한 타라. 다행스럽게도 타라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타라에는 어젯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과 아내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疲弊해진 아버지, 그리고 노예 유모, 장티푸스에서 겨우 벗어난 두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먹을 것도 모조리 양키들이 빼앗아 가고 남은 것이 없다. 타라의 모든 것이 ‘스칼렛’의 어께에 짊어지워진 것이다.
“아버지, 걱정하지 말아요. ‘스칼렛’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암담하기 다시 이를 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스칼렛’은 하늘을 우러러 주먹을 불끈 쥔다.
“하느님이 증인이야! 난 결코 지지 않는다. 이 모든 걸 극복해서 다신 배고프지 않을 거야! 나도, 내 가족도, 거짓말, 사기, 도둑질, 살인을 해서라도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거야!”
전쟁이 끝나고 악착 같이 타라를 이끄는 ‘스칼렛’ 앞에 남군패잔병들과 함께 북부 쓰레기들이 몰려온다. 과거 노예였던 검둥이들이 사업가로 둔갑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타라에도 금화 300달러의 세금이 부과된다. ‘스칼렛’에게 그렇게 큰돈이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애슐리’에게 해결책을 의논한다.
“문명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머리와 용기 있는 자들은 살아남고 아니면 사라지는 거요.”
“그런 소리 말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봐요.”
“당신 말이 옳소. 타라가 위기에 처한 이때, 난 문명얘기나 하고. 당신에게 보답할 길이 없구려. 난……, 겁쟁이요.”
“뭐가 겁나나요?”
“삶이. 내게 닥아 오는 현실이. 내가 사랑한 세계를 잃는 게 겁나오. 전쟁이 없었다면 난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전쟁은 일어났소. 난 친구들을 잃었고, 내가 쏜 적은 죽었죠. 이런 세상은 내게 죽음보다 고통스럽소. 내가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오.”
과거에 매어 현실에서 도망치는 ‘애슐리’다.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땅에 노예들을 거느리고 귀족적으로 살았던 생활만이 문명이라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사고思考의 한계限界다.
그렇다고 ‘스칼렛’이라고 해서 도망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나도 도망치고 싶어요. 지쳤어요. 먹을 것과 돈을 위해 싸워왔죠. 이제 풀뽑고 목화 따는 일에 질렸어요. 그러나 남부는 죽었어요. 북부 뜨내기들이 모조리 가져가고 남은 게 없어요.”
‘애슐리’가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주었어도 아버지와 동생들, 그리고 타라를 버리고 멕시코라도 가고 싶은 ‘스칼렛’이다. 그녀라고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현실과 싸우는 것뿐이다.
‘스칼렛’은 세금 300불을 해결하기 위해 커튼으로 옷을 지어입고 북군포로로 애틀랜타 영창營倉에 잡혀있는 ‘버틀러’를 찾아간다.
‘버틀러’는 감방 책임 장교將校에게 카드에서 잃어주며 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답게 현실적응에 능숙한 것이다. 그런 ‘버틀러’에게 ‘스칼렛’은 행복한 듯 자신을 과시한다. 그러나 험해진 그녀의 손을 본 ‘버틀러’가 그녀의 과장된 행동을 하는 속셈을 모를 리 없다.
“솔직해집시다. 벨벳 옷으로 연극을 할 만큼 원하는 게 뭐요? 돈이요?”
“세금 300달러가 필요해요.”
“담보로 뭐가 있소?”
“날 사랑한다고 그랬죠? 아직도 그렇다면…….”
“당신은 300달러의 가치가 없어. 남자를 비참하게 만들 테니까.”
거절당한 ‘스칼렛’은 ‘버틀러’에게 분풀이를 하고 나간다.
전장에서 돌아와 동생 ‘수엘렌’에게 청혼했던 ‘케네디’를 애틀랜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스칼렛’은 그가 가게를 운영하여 천 달러나 모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수엘렌’이 다른 청년과 결혼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유혹한다.
결국 타라를 위해 동생의 약혼자를 빼앗은 것이다. ‘스칼렛’에게는 살아남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는 것일까.
사랑과 소유욕所有慾은 다르다.
과연 ‘스칼렛’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땅, ‘타라’였다. 이미 기울기 시작한 남부지역의 암울한 상황은 ‘타라’에도 밀어닥쳤다. 노예들의 일이었던 목화를 직접 따야하는 동생들의 불평을 뺨을 때리면서까지 잠재우는 ‘스칼렛’이다.
“타라를 욕하면 용서하지 않아!”
이것이 ‘스칼렛’의 ‘타라’사랑이다. 전쟁 전, 평화로웠을 때, ‘애슐리’를 사랑하는 ‘스칼렛’에게 그를 포기하도록 타이르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이렇다.
“내가 죽으면 타라는 네 것이야.”
“저는 타라도 싫고 농장도 아무 의미 없어요.”
“감히 땅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게냐? 땅만이 일하고 싸우고, 죽을 가치가 있어! 땅은 어머니야. 너도 크면 땅을 사랑할 게다.”
하지만 ‘스칼렛’은 ‘애슐리’를 사랑한다.
‘스칼렛’의 사랑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사랑하므로 ‘애슐리’도 자신을 사랑하리라 확신한다. 비록 ‘애슐리’만이 가치가 있었던 ‘스칼렛’의 삶에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미 스며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미모에 자신 있는 만큼 미모가 부족한 ‘멜라니’를 ‘애슐리’가 사랑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한다. 어쩌면 ‘애슐리’에 대한 마음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스칼렛’이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애슐리’는 집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던 날, ‘멜라니’와 약혼을 발표한다. 하지만 ‘스칼렛’은 너무나 착한 ‘멜라니’에게 화를 내기조차 어렵다.
‘멜라니’와 ‘애슐리’의 사랑이야말로 서로를 아껴주는 진정한 사랑이다.
‘멜라니’의 사랑 앞에서는 닥쳐올 전쟁도 두렵지 않다. 전쟁을 두려워하는 ‘애슐리’에게 용기를 주는 ‘멜라니’다.
화가 난 ‘스칼렛’은 아무 청년들이나 닥치는 대로 친근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한껏 매력을 뽐내면서도 ‘애슐리’와 다정스럽게 산책하는 ‘멜라니’에게 불같은 질투심을 느낀다.
전쟁 중 공훈을 세운 ‘애슐리’는 3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어 ‘멜라니’가 있는 애틀랜타로 온다. ‘멜라니’와 함께 지내던 ‘스칼렛’은 마치 자신의 남편을 만나듯 기쁘다. 차마 ‘멜라니’ 앞에서 반갑다는 말은 하지 못할망정 그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스칼렛’과는 달리 ‘멜라니’의 사랑은 보다 헌신적이다.
전황이 북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부상병과 피난민들이 조지아주로 몰려든다. 육군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스칼렛’과 ‘멜라니’의 사고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곤해서 집에 가야겠어요. ‘멜라니’는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이분이 ‘애슐리’일 수도 있어요. 그분도 낯선 사람들뿐인 곳에서……, 모두가 ‘애슐리’ 같은 걸요.”
‘멜라니’의 사랑은 소유욕이 아니다. 오직 주기만 하는 사랑이다. 그런 ‘멜라니’의 말을 자기 식으로 납득하는 ‘스칼렛’이다. 모두가 ‘멜라니’ 같다는 말에 싫어도 간호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스칼렛’이다.
‘멜라니’의 사랑은 ‘애슐리’에게만 향한 건 아니다. 모든 부인들이 멸시하는 창녀娼女로 알려진 ‘벨 와틀링’에게도 성의를 다하여 대접하는 사람이 ‘멜라니’다. 많은 부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상자들을 위해 기부寄附하고자 하는 ‘와틀링’의 돈을 받아들인다. 그 누군가를 차별하는 마음이 없는 드넓은 사랑이다. 드디어 전쟁이 끝난다. ‘리’ 장군의 항복으로 남군이 패배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싸웠냐며 어이없어하는 가족들과는 달리 ‘멜라니’는 ‘애슐리’가 돌아올 거라며 행복해 한다.
‘스칼렛’ 역시 ‘애슐리’의 귀환을 짐작하고 모처럼 미소를 머금는다.
자신의 사랑에 ‘애슐리’의 아내 ‘멜라니’는 장애요인이 되지 못한다. 오직 유혹해도 넘어 오지 않는 ‘애슐리’를 소유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을 뿐이다.
드디어 ‘애슐리’도 타라로 돌아온다.
‘멜라니’와 포옹하는 ‘에슐리’에게 달려가려는 ‘스칼렛’을 유모가 말린다.
“놔! 애슐리가 돌아왔어!”
“멜라니의 부군夫君이에요!”
무조건 반가웠던 ‘스칼렛’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유모다. 타라를 위해 동생의 애인 ‘케네디’를 가로채 결혼한 ‘스칼렛’이지만 ‘애슐리’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애슐리’가 뉴욕 은행에 취직하러 가려하자 ‘케네디’의 제재소製材所를 맡아달라고 강요한다. ‘애슐리’를 곁에 두고 싶은 것이다. 결국 ‘멜라니’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욕심을 관철시키고 만다. 과연 ‘스칼렛’은 ‘애슐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케네디’의 사업체를 맡아 승승장구하는 ‘스칼렛’ 앞에 영창에서 석방된 ‘버틀러’가 나타난다.
“뻔뻔스럽게 내 앞에 나타나다니.”
“조금만 기다렸으면 내가 수백만 달러를 드렸을 텐데, 여자는 변덕쟁이요.”
“뭘 원하죠? 난 바빠요.”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과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소.”
‘버틀러’는 그런 ‘스칼렛’이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버틀러’인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해, 감정적으로, 목적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정신적으로는 오직 ‘애슐리’만을 사랑한다고 여기는 ‘스칼렛’의 사랑이란 어떤 의미일까.
빈민가의 불한당에게 공격당했던 자신의 복수를 하다가 죽은 두 번째 남편 ‘케네디’를 기리기 위해 또다시 상복을 입은 ‘스칼렛’에게 ‘버틀러’가 찾아온다.
‘스칼렛’의 연기演技가 기막히다.
“오, 레트. 두려워요.”
“무서운 게 없는 여자잖소.”
“죽어서 지옥 갈까 봐 두려워요.”
“뭘 잘못했기에 그런 걱정을 하는 거요?”
“프랭크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는 ‘수엘렌’의 애인이었어요. 난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를 죽였어요. 내가 그를 죽인 거예요. 정말 후회해요.”
“다시 시작해도 당신은 마찬가질 거요. 도둑질은 두려워하지 않고 감옥갈 일만 걱정하는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다행이에요. 제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 자리에서 ‘스칼렛’은 ‘버틀러’의 청혼을 받고 결혼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남편을 만난 것이다.
그럼에도 ‘스칼렛’의 결혼생활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빗나간다.
‘버틀러’와의 사이에서 딸 ‘보니’까지 낳았지만 ‘애슐리’를 원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 소유할 수 없었던 물건이기에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집착執着이다. 그녀는 그 집착을 사랑이라 믿는다.
‘버틀러’로써는 여전히 ‘애슐리’만을 바라보는 ‘스칼렛’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그토록 사랑하던 딸 ‘보니’가 낙마落馬하여 죽자 둘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잦아진 부부싸움 끝에 ‘스칼렛’을 밀어 정신을 잃게 한 ‘버틀러’는 자책감에 그나마 겨우 화해했으나 ‘멜라니’가 죽던 날, ‘애슐리’에게 지나치게 접근하는 ‘스칼렛’의 모습을 보다 못해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나 ‘스칼렛’은 비로소 ‘애슐리’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오직 ‘멜라니’ 뿐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애슐리’에 대한 환상이 깨진 ‘스칼렛’. 문득 떠오른 ‘버틀러’를 찾지만 이미 그는 자리에 없다.
다급하게 집으로 따라간 그녀에게 ‘버틀러’가 말한다.
“멜라니는 내가 본 중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었소. 참으로 훌륭한 부인이었지. 멜라니가 죽었으니 당신에겐 잘된 일이군.”
“어떻게 그런 말을……. 난 멜라니를 사랑했어요.”
“난 그런 줄 몰랐소.”
“멜라니는 마지막으로 당신 얘기도 했어요. 당신에게 잘해주라고요. 날 사랑한다면서요.”
“다른 말은 없었소?”
“애슐리를 부탁한다고 했어요.”
“전처의 허락을 얻었으니 잘 됐군.”
‘버틀러’는 짐을 싸기 시작한다.
“뭘 하는 거예요?”
“떠나는 거요. 애슐리에 대한 당신의 꿈이 이루어졌으니까.”
“아냐! 아녜요. 이혼을 바라지 않아요. 오늘 밤 깨달았어요. 당신을 사랑하는 걸 깨닫고 집으로 달려온 거예요.”
“이러지 마시오. 추억이라도 남기게 마지막만은 깨끗하게 합시다.”
울며불며 사정했지만 ‘버틀러’는 냉정하게 집을 나간다.
그러나 ‘스칼렛’의 끈질긴 생명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이대로 보낼 순 없어. 당신을 돌아오게 할 방법은 있을 거야. 지금은 생각할 수 없어. 미칠 것만 같아. 내일 생각해야지.”
흐느끼는 ‘스칼렛’의 머리에 아버지가 해주던 말이 떠오른다.
“어디서 감히 땅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게냐? 세상 끝까지 남는 건 땅 뿐이야.”
‘애슐리’의 말도 생각난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게 있소. 타라요. 당신은 타라의 붉은 땅에서 힘을 얻어.”
‘스칼렛’는 분연히 일어선다.
“타라! 나의 고향! 돌아 갈 테야! 그리고 그이를 되찾을 방법을 생각할 거야.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스칼렛’의 얼굴에 빛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라스트신을 접하는 순간 과연 ‘비비인 리’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이 배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었다. 결론은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이 영화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답게 제12회(1940)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작품상에 ‘데이빗 O 셀즈닉’, 여우주연상에 ‘비비안 리’, 여우조연상에 ‘헤이티 맥대니얼’, 감독상에 ‘빅터 프레밍’, 각색상에 ‘시드니 하워드Sidney Howard’, 촬영, 실내장치, 편집, 특별상 등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음악이 대접받지 못한 것이 이상했지만 제5회(1939) 뉴욕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1965년 ‘사운드 오브 뮤직’이 나오기까지 30년간 세계 영화 흥행수익 1위의 자리를 지킨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클락 케이블’과 ‘비비안 리’, 두 연기자와 배역진의 조화로운 연기력과 더불어 완벽한 시나리오,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화면을 이끄는가 하면 애틀랜타 역의 남군 부상병들과 애틀랜타 대화재 속의 극적인 탈출 장면 등, 역사에 남을만한 명장면들이 압권壓卷이라고 이구동성의 찬사를 받았다.
아직까지도 70밀리 대형화면에 스테레오 음향을 곁들여 재공개되고 있을 정도로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만큼이나 생명력이 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