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日本은 怨望의 대상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삼국시대부터 끊임 없이 우리를 괴롭혔다.
왜구(倭寇)의 횡포는 日常化 되다시피 했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나라는 거덜났으나
이순신이라는 英雄의 덕분으로 겨우 나라를 지켰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영웅이나
그들에겐 철천지 원수(怨讐)나 다름 없다.

< 한성입성 일본군 >
日本이 1868년 明治維新으로 개혁하고
西洋文物을 받아들여 눈부신 발전을 했다.
反面에 조선은 儒學으로 門戶에 빗장을 걸고 스스로 孤立되었다.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서 1910년 朝鮮은 일본에게 먹힌다.
그리고 9년 후인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治獄의 35년간 통치를 받고 1945년 감격스런 해방을 맞는다.
일본은 조선을 먹기 위하여 1894년 淸日전쟁을 일으키고 승리를 한다.
내친 김에 1905년 大國 러시아도 물리쳐 세계를 놀라게 하고
1910년 마침내 조선을 병탄(倂呑)한다.
일본은 중국 여순(뤼순)에 있는 러시아의 極東함대를 쳐서
이에 격분(激奮)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명령으로
북유럽 발트海에 있는 거대한 '발틱艦隊'를 發進시킨다.
< 悲運의 리콜라이 2세 >
당시 발틱함대는 스페인의 '無敵함대'에 비견(比肩)하는
세계 最强의 함대로 꼽혔다.
1904년 10월 全艦 38척을 거느리고 발진한 함대는
1905년 5월 激戰地 대한해협에 當到한다.
무려 3만 7천㎞를 7개월동안 巡航했는데
지름길인 스웨즈運河를 영국의 반대로 건너지 못하고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함대는 이미 지칠대로 치쳤다.
그 당시 영국과 일본은 '英日同盟'을 맺은 동맹국이다.
불과 이틀간의 전투에서
발틱함대는 궤멸(潰滅)하고 단 2척만 살아서 歸還했다.
전사자 5천 명, 포로 6천 명을 남기고.
일본은 어뢰정 3척만 침몰하고 전사자는 7백 명에 불과했다.
승리의 장수는 일본의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入朗)' 提督이다.
이 전쟁의 패배로 러시아는 피폐(疲弊)하여
혁명의 導火線이 마련되었다.
제왕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處刑당하고 王政이 붕괴되었다.
이 혁명은 社會主義 혁명으로 러시아에서 共産主義가 胎動되었다.

< 발틱함대의 이동경로 >
일본의 도고 제독은 국민적 英雄이 되었고
西方기자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는 逸話가 있다.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인정하나
朝鮮의 이순신 장군과의 비교는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우수한 군함과 용감한 군대, 충분한 군수보급을 받았으나
이순신은 最惡의 불리한 戰況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내가 어찌 감히 이순신과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나?
이순신이 장군이라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 영웅 도고 제독 >
또 하나의 逸話가 있다.
발틱함대에는 軍資金을 실은 '돈스코이'함이 있었는데
그 배는 금괴와 골동품 등을 싣고 도망 가다가
東海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沈沒했다고 한다.
그동안 傳說로 내려 오다가
1999년 10월에 동아건설이 引揚을 시도했다.
그 당시 IMF로 어려웠던
동아건설은 이것으로 回生을 시도했고
그것으로 株價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결국은 인양에 失敗하고
다음 해 11월 不渡처리로 최종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