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그의 非理를 눈 감고 찍어 준
보수층을 완전히 배반했습니다.
560만 票라는 절대적 優位를 버리고
그는 좌파와 同居를 했습니다.
광우병 폭동 때,
그는 꼬리를 내리고 항복문서를 썼습니다.
그것이 “中道實用”이라는 비겁한 문서입니다.
이명박이 남자라면
광우병 사태에 정정당당히 맞서야 했습니다.
광화문 무대에 올라가서 쇠고기 협상의 정당성과
그것의 안전성을 說破했어야 합니다.
돌이 날아오면 그것을 맞고
물병이 날아오면 그것도 맞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맞는다고 죽기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했더라면 이명박과 보수는 살았을 것입니다.
돌과 물병을 겁낸 결과가
지금의 사태를 유발한 것입니다.
아침이슬을 따라 부른다고
그들이 감동을 해서 분을 삭히겠습니까?
즉, 좌파와 同居나 協商으로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定說 아닙니까?
그는 사나이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박근혜를 내 편으로 품지 못했습니다.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좌파와 협력하면 그들의 지지를 얻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골수 빨갱이 황석영과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同行했습니다.
夫餘에서 열린 세계대백제문화제에서
양팔에 골수좌파 안희정과 이광재를 껴안고
웃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가 하나 잘 하려다 못한 것이 있습니다.
“세종시 수정안”입니다.
이것 역시 박근혜를 포용하지 못한 결과로
국회에서 否決이 되었습니다.
한가족 두 지붕의 悲哀였습니다.
형님 이상득을 내치지 못한 것도 原罪가 되었습니다.
그들 형제는 이름에
왜 돌림자를 쓰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명박에게 가장 큰 悲哀를 느낀 것은
그가 병역미필자라는 것입니다.
그가 국군의 날에 장병들 앞에서
致辭를 하는 것은 한 편의 코메디였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구성원은 90%가
병역미필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코메디입니다.
그는 박근혜의 불행에 한치의 안타까움도 없이
좌파의 편을 들어 하야를 촉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좌파에게 보험을 든 것입니다.
골프로 餘生을 즐기다 이번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촛불망국 집회의 단두대가 연상되는
적폐의 대상으로 轉落한 것입니다.
이명박은 別名이 참 많습니다.
그의 별명과 상징어를 불러 속을 풀어볼까 합니다.
중도양아치, 양다리, 맹물, 울보, 사팔뜨기,
겁쟁이, 찌질이, 끄싱이, 쪼다, 병신, 등신, 육갑,
박쥐, 쥐박이, 째진눈, 매부리코, 혀낼름, 쉰목소리,
고소영, 강부자, 아침이슬, 명박산성, 가카,
병역미필, BBK, 도곡동, 위장전입 등 전과 16범.
지하벙커, 검정가죽잠바, 환자복 군인,
마누라 억울함에 불 같이 화를 낸 애처가.
대불공단 전봇대, 영어몰입교육,
공정사회,
예단말라, 확전말라,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도덕적으로 완벽한,
올 것이 왔다,
퇴임 후 살집 보러 문지방이 닳는다,
국민의 뜻에 따르라.
뭐, 더 없습니까?
어휴! 숨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