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워낙 고지식한 성격을 지녀서인지, 세상이 더러워졌으면 나 역시 더러워지면 마음이나마 편할진대 도무지 세상과 동화되지 못해서 탈이다.
사람이 썩다보니 세상도 개판이 되는 것일까. 2070년에 이르면 한반도 남녘에서 겨울이 사라진다는 보고가 나왔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0.74도 올랐지만 한반도는 이보다 2배, 1.5도나 상승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지속되면 고산지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녘 대부분이 아열대기후로 변한다고 기상청에서 보고했다고 한다.
하긴 최근 들어 베트남에서나 보았던 스콜과 비슷한 집중호우와 아열대성 고온다습한 기온을 여름마다 보고 있으니 기상청의 보고가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딸아이들이 노인이 될 즈음이면 4계절의 아름다운 한반도 절기를 잃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변하는 것은 절기만이 아니라 사람의 성품과 판단기준까지 포함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모른다. 다만 타락하는 이 시대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 성향이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변화에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이 있어서 걱정이다.
이럴 때 나는 한번 태어난 존재는 기필코 죽는다는 진리가 더 없이 고맙게 생각된다. 아마도 영생을 살아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참으로 저주받은 존재일 거라 생각할 만큼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을 70으로 본다면 내 나이 일흔셋이니 이미 평균수명보다 더 살았으며, 설혹 평균수명보다 10년을 더 산다하더라도 앞으로 7년이면 세상과 안녕을 고하게 되니 최소한 최악의 순간만큼은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최악의 순간이라 함은 지구가 멸망한다든가 내가 죽는 순간이 매우 괴로울 거라든가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든가 하는 것들이 아니다. 흔히들 죽는 순간 숨이 막혀 고통스럽거나 사고로 몸이 크게 다쳤을 때 괴로우리라 상상하는 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거야말로 괜한 기우에 불과하더라는 거다.
베트남에서 오른쪽 가슴과 하반신이 만신창이가 되는 부상을 당했을 때, 처음에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날아 가버린 다리에 고통조차 느껴지지 못했었다.
정신 차리고 다친 부위를 확인함과 동시에 마치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가슴과 다리를 담근 듯 상상도 못할 고통을 느꼈을 뿐,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모든 감각기관이 마비되어 생각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설혹 지구가 멸망하여 죽게 되었기로 고통을 느낄 사이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만일 10층 건물에서 추락한다면 추락하는 동안 이미 정신을 잃어버릴 것이니 지상과 충돌하는 고통이고 뭐고 있을 게 없다는 것이다.
죽는 순간의 육신의 고통은 별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는데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마도 자신의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닐까.
죽어본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고로든, 병으로든, 아니면 노환으로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놓고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었다는 둥, 자는 듯 편안하게 죽었다는 둥,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런 모습으로 죽었겠냐는 둥, 이렀군, 저렀군, 떠드는 건 산자들의 느낌이요, 호사일 뿐, 죽은 자에게는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거다. 뭐, 어떻게 죽었든 죽었다는 의미에서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어쨌든 나는 베트남에서 전투를 치렀던 스무 살 이후에는 감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당장 누군가가 총구를 내 이마에 들이댄다면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대응은 하겠지만 그것은 생의 본능에 의한 단순반응일 뿐, 죽음에 대한 이지적理智的 의미에서의 두려움은 아니라는 거다.
사람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또한 그 영혼이라는 것이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을 보존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당연하게 맞다.
지금 살아있음에도 태어날 때, 초등학교 때, 중, 고교 시절 등등, 이미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일들이 부지기수인데 그걸 죽어서 어떻게 기억한다는 거야? 싶기도 하지만 나도 죽어본 경험은 없으니 그 영혼이라는 존재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면서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도, 반박할 이유도 없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워낙 물리적으로 되어먹어서 1갑자를 넘겨 살고도 귀신도 보지 못하는 내게는 그 역시 의미 없기로는 마찬가지다.
성서를 읽은 영향인지 나 죽어 우주와 섞여 버리면 영혼이 있은들 없은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더구나 영혼이란 살아있는 동안 나를 나로 살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데야…….
그렇지 않은가. 모든 존재의 근원根源과 하나로 섞이는 데야 그깟 낡아빠진 영혼이 무에 그리 소중하겠는가.
그러니 내가 살아오는 동안 만들어지고 기억되어진 잡다한 것들을 나라고 믿어버린 내가 그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잊히고 버려진다 할지라도 역시 두렵거나 섭섭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나 죽어 우주와 동화되든, 아니면 산천초목과 동화되든, 생각이 없고 나라는 주체를 인지할 수 없을 바에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잊히거나 말거나 두려울 게 뭐란 말인가.
죽음과 동시에 나타남의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했던 오감과 느낌, 판단, 갈등, 행복, 슬픔, 말하자면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 등등이 사라질 터인 즉 죽은 다음을 걱정하는 어리석음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말하자면 종북반역도들을 미워하는 거나, 이명박의 철학 없는 오락가락이 너무나 안쓰러운 거나, 빨갱이들의 인민재판의 희생자가 된 박근혜의 어리석음이나, 나라를 공산화로 끌고가는 문재인의 반역행위나, 반면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대통령이 앞으로는 나오기 힘들 거라는 안타까운 바램이나,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면 사람들의 심성도 변할 것이라거나, 이 모든 것들은 살아있는 동안의 필요에 의해 바라거나 거부하는 마음이 이는 것에 불과할지니 오히려 이런 오만가지 상념으로부터 벗어남에 행복해 해야 하는 것이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평소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나이 일흔셋씩이나 먹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뭐, 문재인이 개판치는 바람에 이 나라가 김정은 치하로 들어가든, 아열대성 기후가 되어 사람들이 변화하든, 그 이전에 내가 세상을 떠남에 어찌 다행이라 하지 않을 것인가.
문득 그럴 경우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피식 웃고 만다.
어차피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살게 될 것. 행복이니 불행이니, 내가 지녔던 가치관과 같지 않을 것이요, 저들 인생은 따로 있을진대, 오히려 나보다 훨씬 드높은 정신세계를 지녔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걱정을 새삼스레……, 싶어서다.
나는 죽은 다음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어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냐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살아있기에 때로는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환경파괴를 걱정하며 문재인과 김정은이 휘둘러댈 나라를 걱정하지만 그 모든 걱정들이 우리 후손들을 위한 걱정일지언정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가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믿는가? 영혼이 있어서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