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믿고 역학을 하게 된 동기 [2]
10 여명이 같이 한마을에서 동시에 홍역을 앓았는데, 그중에 다섯 사람은 어린나이에 요절[夭折]을 했고, 살아남은 다섯 사람 중에는 얼굴에 마마의 흉터자국이 선명한 애들만 해도 두 사람이고, 세 사람만 제대로 본 모습을 갖춘 얼굴로 홍역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저도 네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은 기억이 있고, 나중에 부모님들께 들은 얘기로는 저가 워낙 심하게 홍역을 앓고 기진맥진하여 수일간 깨어나지 못하고
숨도 쉬지 않고 맥이 갇힌 상태에서 저가 죽었다고 해서, 부모님께서는 그냥 포대기에 둘둘 말아서 마루 한 모퉁이에다가 두고서 차마 땅에 같다 묻지는 못하고, 며칠 동안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의 집안 사정이 사실은 자손이 귀한 집이었고, 저의 조부님과 부친의 대에서는 2 대 독자로 내려온 고적[孤寂]한 집안이다가 보니, 자식들에 대한 애착심이 부모님께서는 강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은
2 대독자의 외로운 집안에서 딸은 없고, 아들만 내리 8 형제를 두셨던 것이고, 나의 바로 위에 형님이 역시 두 살 전에 홍역으로 이 세상을 떠났고, 저의 동생 역시 첫 돌전에 역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애착심이 워낙 강하신 분들이어서 그런지 이미 숨이 끊어진, 저의 육신을 그래도 며칠간 산에다가 묻지 않고 인정에 이끌려서 집안에 둔 것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저가 며칠 만에 산에 갖다 묻으려고
저의 시신을? 옮기려고 하는 차에, 저가 깨어나면서 물 달라고 하는 소리에 포대기를 열어보니, 저가 눈을 빤히 뜨고서 목이 말라 하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기뻐하셨고, 저는 구사일생으로 다시 기사회생을 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저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남들이 맞지 못하는 냄새도 맞으면서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이상한 물체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생각하기로도, 그 당시 역병인 홍역을 심하게 앓으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어 온 것이 저의 정신세계에 그 어떤 이상한 변화를 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를 가기 전 부터 이상하게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虛想] 나도 모르는 이상한 말소리가 나의 귀에 들리고, 어떤 할아버지의 지게위에 어떤 낯모르는 사람이 덩그렇게 지게에 타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고, 또한 어떨 적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연세 많은 할아버지의 얼굴만 보고도, 어 ~ 저 할아버지 며칠 있으면 죽을 것인데, 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입으로 무심코 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저를 두고서 하신 말씀이 너 가 홍역을 심하게 알아서 헛것이 보이고, 너의 어머니가 몸이 약해서 젖도 재대로 먹지 못하고 동냥젖으로 간신히 살아났고, 모든 것이 기[氣]가 약해서 헛것이 보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함부로 남의 어른을 보고서 며칠 만에 죽느니?
하는 방정맞은 소리는 하지 말아 라! 하는 엄한 꾸지람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대도 나도 모르게, 나의 귀에는 이 세상의 말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와 음률이 나의 귀를 자극하는 것도 모자라서, 어떨 적에는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오장 육부가 환히 보이는 순간도 여러 번 체험을 하고서는 저는 비록 어릴 적 이지만, 그것은 나의 모든 생활에 불편함도 많지만 두 세상을 한 거번에 경험해야 하는 그 생활이 엄청 지겨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이상하게도 학교 공부가 그렇게도 싫더란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월사금이 밀리고 사친회비도 제때에 납부하지 못하니까, 선생님들께 만날 수업 중에도 교무실로 불려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학교를 가기 싫고 공부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입니다.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공부를 복습과 예습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소를 몰고 들판에 나가서 소를 배불리 먹여야 하고
나의 키만큼 되는 꼴망태를 둘러메고서, 소먹이 풀을 한 망태기 가득해야만 큰 형님들 한태 꾸중을 듣지 않기 때문에, 제일 꼴 지인 막내로서 해야 할 저의 일상이고, 공부는 하고 싶어도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사실 학교 공부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2 학년 당시에 학교 가기가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로, 다섯 달을 결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2 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여러 번 저의 집을 방문하셔서, 저의 부모님과 저를 설득해서 저가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한 것이고, 저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학교 성적은 전체 학급에서 항상 꼴지를 오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성적표를 보면 학교 다닐 적에, 저가 학교 성적표 중에 수[秀]를 맞은 것은 육 학년 동안 단 한 개도 없고, 도덕과 미술만 우[憂]를 몇 번인가 맞았고, 그 외에는 거의 미[美]나 양[養] 가[可] 심지어는 불가[不可]를 맞은 적이
저의 육학년 정규 교육 중에 유일한 성적입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조차 어렵게 학업을 마치었고, 그나마 늦게 육학년 졸업 당시에 부모님 모르게 큰형님 모르게 시험 준비를 해서, 중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는데 다행스럽게도 합격은 되었지만, 부모님과 큰형님께 꾸중만 심하게 듣고서 상급학교 진학의 기회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가 깨달은 것이 바로 학교의 공부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절감을 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말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 당시 안동읍 구 시장에 거주하는 함석기공사[하도급 건설업체]에 함석공으로 취직을 한 것이고, 그때만 해도 월급은 단 한 푼도 없었고 일 년에 추석 설날 명절 때면, 기 것 떡값 정도인 몇 푼의 돈이 저에게 지급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낯에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밤이 깊도록 열심히 책을 보고 즉,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저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그만 돈이 생기면, 저는 그것을 푼푼히 모아서 헌책방에 가서 닥치는 대로 남들이 보고 버린 헌책들을 사서보면서, 저의 머릿속에 색 여 둔 것이 지금은 그것이 저의 지식의 보고[寶庫]가 된 것이고, 그때 외워두고 배워둔 책의 내용들이 저가 오늘날 역학전서를 쓰면서, 이곳이나 여러 신문에 칼럼이나 글을 쓰는 것에 모든 실체적 자료가 되고, 저가 일흔이 넘는 세월동안 어려운 삶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이 저가 여기에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 = 내일 계속 됩니다 =
[경도 역술원 역학심리상담사]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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