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제작한 2차 세계대전 소재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미국의 영웅주의적英雄主義的 메시지가 강했었다.
그런 미국영화가 반전주의反戰主義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만큼 베트남전쟁의 명분이 약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플래툰’은 다소 독특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반전영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평범한 인간이 전쟁의 광기狂氣에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였기 때문이다.
1986년에 제작된 올리버 스톤Olver Stone 감독의 이 영화에는 영웅이 없다. 전쟁의 광기에 인간성人間性마저 상실하고 살인마殺人魔로 변화해가는 ‘반스(톰 베린저Tom berenger분)’와 애써 인간성을 포기 하지 못한 ‘라이어스(윌리엄 데포Willem dafoe분)’ 사이에서 참혹한 전쟁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크리스(찰리 쉰Charlie sheen분)’의 갈등葛藤이 있을 뿐이다.
크리스는 대학재학중에 베트남 전쟁에 지원한 신병新兵이다.
베트남에 도착한 크리스의 눈에 띄는 건 후송되는 전사자戰死者들을 담은 검은 비닐빽이다. 그는 배속된 소총소대小銃小隊에서 호전적인 반즈 중사와 인간적인 라이어스 분대장을 만난다.
라이어스는 작전 중에 정보를 얻기 위한 협박으로 양민을 학살한 반즈 중사를 작전이 끝나는 대로 군법회의軍法會議에 고발하겠다고 선언하고 반즈 중사는 적의 무차별 공격을 받는 와중에 라이어스를 저격狙擊해 버린다. 크리스는 라이어스를 죽인 반즈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살인마가 되어버린 반즈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
베트남정규군의 급습急襲으로 살육과 포격으로 밤을 보낸 크리스는 부상당한 반즈를 향해 가차 없이 총을 발사한다.
전쟁은 인간을 광인狂人으로 몰아간다.
누구에게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다. 베트남의 군용 공항에 도착한 병사들이 처음 만나는 것이 전사자의 시체를 담은 검은 비닐빽이다.
짐짝처럼 다뤄지는 시체를 보는 신병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비정상적인 심리의 흐름이 시작되는 관문關門인 셈이다.
신병에게는 밀림을 뚫고 나가는 행군行軍조차 고통이다. 전투지역에서 버려진 썩어가는 전사체戰死體를 보고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전투경험이 쌓여가면서 무감각하게 변화되는 존재가 사람이다. 광인으로의 입문入門이다.
“멍청한 자식!”
첫 정찰偵察에서 탈진하여 쓰러진 크리스에게 냉정하게 내뱉는 반즈 중사의 비웃음이다. 그에게는 전쟁터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크리스는 존재가치가 없다.
“지옥은 이유가 통하지 않는 곳이란 말이 있지요. 이곳이 바로 그 지옥 같습니다. 아무도 신병에겐 관심도 없고 이름도 알려고 하지 않아요. 경험 없는 신병의 목숨은 가치가 없으니까요.”
크리스가 할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나가는 전투정찰戰鬪偵察, 끊임없는 참호塹壕파기, 매일 계속되는 야간매복夜間埋伏, 통신감청通信監聽,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이곳이 바로 지옥임을 실감한다. 크리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환경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냉혹하게 변해 가는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견디기 힘든 전쟁터의 병사들은 모처럼의 소강상태小康狀態를 맞이하면 마리화나를 피운다. 베트남에 파병派兵된 미군병사들에게 마약이 널리 퍼졌던 건 당시 보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개척시대의 미국인과 풍요로운 사회에서 자란 미국인의 정신적인 차이라고 할까.
적의 빈 벙커를 찾아내고 인근을 수색하다가 대원을 잃은 소대는 인근 마을을 점령한다. 소대원들은 전우의 주검 앞에 제정신들이 아니다. 반즈는 땅굴 속에 사람이 있음에도 나오라는 지시에 불응하자 수류탄을 넣어 폭사爆死시킨다. 땅굴에 숨어있던 청년을 잡아낸 크리스도 흥분하는가 하면 동료병사가 크리스가 잡아낸 청년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깨 부셔 죽이면서 쾌감을 느낀다. 이건 전투가 아닌 살인이다. 이들 병사들에게는 마치 살인이 즐거운 게임이라도 된다는 듯 죄의식罪意識조차 없다.
마을에서 다량의 무기를 발견하면서 대원들의 적개심敵愾心이 폭발한 것일까, 반즈는 촌장에게 베트콩의 행방을 추궁하면서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촌장의 부인을 사살하는가 하면 촌장의 어린 딸을 죽인다고 협박한다.
어느 전쟁이나 미쳐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진이 따로 없는 게릴라전은 병사들에게 한국전쟁과는 또 다른 긴장을 요구한다. 그 속에 휩쓸린 병사들의 정신이 온전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과연 적敵은 누구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적은 누구일까. 총부리를 마주하는 베트콩보다 더 두려운 적은 자신의 마음이다.
첫 매복에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경계를 개을리 한 고참병사 때문에 큰 피해를 입는다. 크리스가 목에 경미한 부상을 입었고 한 명이 전사한다. 그럼에도 신병 크리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고참병사다. 억울함을 참아야 하는 크리스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이 놈 꼴을 잘 봐둬. 기억해두란 말이다. 적과 교전하다 실수하면 이 꼴로 가게 되는 거야. 여기선 한 순간도 긴장을 풀어선 안 돼! 다시 한 번 근무 중에 잠자면 죽여 버리겠어.”
반즈가 크리스에게 경고한다. 이런 누명은 차라리 애교다.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다 보면 피아구분彼我區分이 모호해진다.
촌장 부인을 죽이고 어린 딸마저 협박의 도구로 이용하는 반즈의 살인행위에 격분한 라이어스는 반즈를 군법회의에 회부할 것을 중대장에게 건의한다.
작전이 끝나는 대로 조사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소대는 적에게 강력하게 대처하는 반즈를 지지하는 병사와 살인행위를 단죄하려는 라이어스를 지지하는 병사로 갈린다.
급기야 적의 대규모 침공이 시작되고, 피아를 가릴 수 없는 혼전混戰을 틈타 반즈는 적과 총격전을 벌이는 라이어스를 사살한다. 인간적인 문제해결 보다는 차라리 죽여 버리는 편이 합리적이 되어버린 반즈다.
크리스 역시 다를 바 없다. 월맹정규군의 대규모 공세로 밤새 치열한 전투를 벌인 그날 새벽, 아군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부상당한 반즈를 사살해 버린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린, 적이 아닌 우리 자신과 싸웠습니다. 적은 우리 안에 있었죠. 전쟁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겁니다.”
병원헬기로 후송되면서 크리스가 독백한 말이다. 피아의 구분조차 모호해질 만큼 처절한 전쟁의 한 단면이다.
그래도 사랑이 있기에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첫 정찰을 나선 신병 크리스는 더위와 전투장비戰鬪裝備의 무개를 감당하지 못하고 탈진하고 만다. 대학생답게 책까지 들고 온 크리스의 불필요한 짐을 버리며 라이어스는 웃는다.
“짐이 너무 많군. 반은 쓸데없는 거야. 버리는 걸 내가 도와주지. 다음엔 먼저 나와 상의한다. 알았나?”
전쟁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돌아서던 반즈 중사와는 또 다른 라이어스의 인간성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환경이라도 적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신병 크리스를 세심하게 돌봐주는 라이어스에게는 전우애가 있고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다.
반즈의 양민살인행위를 고발하는 라이어스의 마음 역시 인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비록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 왔지만 그나마 나름대로의 질서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전 언제나 특별대우를 받았지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국가에 봉사하고 싶었어요. 여긴 대부분이 하류층 사람들인데 고등학교 중퇴에 운 좋으면 살아서 돌아가 공장일이나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죠. 가난하고 바라는 것도 없지만 사회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최고의 사람들이에요.”
라이어스와 마찬가지로 크리스 또한, 그의 생각이 이렇듯,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자존심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전쟁터에 내몰렸어도 사랑과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광기狂氣에 휘말릴 수 없다.
반즈의 총을 맞고 낙오한 라이어스가 탈출하다가 적탄에 난사亂射당해 죽는 참혹한 장면은 인간의 사악함이 어디까지일까, 스스로 몸서리치게 만든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의 허망한 광기를 얘기하고 싶었을까.
베트남 전쟁은 명분이 약했던 만큼 미국 병사들에게는 정신적 갈등이 깊었던 전쟁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반전反戰시위가 끝일 새 없었고 귀국해서도 전쟁영웅 칭호稱號와 환영퍼레이드는커녕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視線에 당혹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플래툰’은 베트남전쟁의 본질本質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수작秀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