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모기향으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잠자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총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하는 慘事가 발생했다.

< 화재 참상 >
金大中 정부 初期에 난 이 사고는
아이를 둔 엄마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수련원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客室을 만든 임시건물로
준공허가가 나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청소년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도 부적합한 구조물이었다.
수원검찰청과 화성경찰서는
씨랜드 대표와 화성군청 관계자 등을 소환했고
수련원 준공과 사업허가 경위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 유족들의 오열 >
그러나 수사는 拙速으로 진행되어
덮기에 급급한 채로 끝났다.
遺族들은 이에 반발하여
당시 국무총리였던 金鍾泌을 찾아가 所願을 하였으나
사건은 많은 의문을 남긴채 終結이 되었다.
만일 그 사건이 박근혜 정권 때 났더라면
제2의 세월호가 되었을 것이다.
좌파 세력들은 金大中 정권이라서 조용했던 것이다.

<뉴질랜드에서의 김순덕 가족 >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 여자 하키 선수 김순덕은
이 사고로 長男(김도현)을 잃었다.
씨랜드 참사 이후 4개월 만에 일어난
인천 상가 화재 참사를 보고 미련이 남지 않는다며
모든 勳章과 메달을 국가에 返納하고
"한국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 밝힌 뒤
남편 김성하, 작은아들 김태현과 함께 뉴질랜드로 移民을 갔다.
떠나기 전 김종필 국무총리가
이를 만류(挽留)하기 위해 面談을 요청했지만
김순덕은 이를 뿌리치고 끝내 이민길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