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내 고향 淸州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다.
主題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없는
평창을 규탄하는 내용이다.
여러 연사가 나와서 연설을 하고
마지막 행사로
金正恩이 그려진 人共旗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행사장 뒷편에는 언제 왔는지
소방 지휘차와 물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上部의 지시를 받고 왔을 것이다.
김정은이 그려진 인공기에 불이 댕겨지자
소방관들은 태극기 집회자와 몸싸움을 벌이며
불타는 인공기에 분말소화기를 쏘고는 물러갔다.
나는 동료 집회자들과 타다 남은 인공기에
불을 다시 붙여 끝까지 태우고 재는 발로 짓이겼다.
主敵의 국기를 불태우는 것이 왜 禁忌사항인가?
만약에 태극기를 불태우면 소방차가 출동할까?
이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치솟는다.
어쩌다 나라가 이 모양이 됐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몸싸움에서 부상자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태극기는 무엇인가.
1950년 6.25로 돌아가자.
인민군이 進駐하고 우리집은
그들의 밥 먹는 장소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精米所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쌀이 있었고 마당이 넓어 그렇게 되었단다.
뱃속에 나를 가진 어머니는
晝夜로 밥 짓는 일을 했고
그 일이 얼마나 고됐는지
손톱에서 피가 났다고 한다.
미국과 유엔군이 參戰하여 전세가 逆轉되었다.
인민군이 물러가고 국군이 進駐했는데
피난을 가지 못한 附逆자를 색출하여
處刑하는 慘劇이 벌어졌다.
당시 30세의 아버지도
꼼짝 없이 처형자의 신세가 되었다.
이때를 위하였는지 몰라도
할아버지는 책임자급 국군 上士를
뒷뜰 장독대로 인도하여
그 밑에 油紙로 싸서 감추어 두었던
얼룩진 태극기를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奇蹟적으로 처형자 신세를 면했다.
대신 北進하는 국군을 따라 勞役夫로 참전하셨다.
그때 아버지가 처형되었으면
나는 평생 한 많은 遺腹子로 살았을 것이다.
그 얼룩진 태극기는 지금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2008년 2월 10일 밤에 숭례문이 불탔다.
범인은 채종기(당시 69세)라는 初老의 남자였다.
나는 TV로 화재 현장중계를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國寶 제1호라고 했다.
그것이 불타 없어지는 것은
내 가슴에 있는 祖國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숭례문이 나라는 아닌데 말이다.
나는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
그 사건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이제는 복구되어 더 멋진데 말이다.
숭례문은 태극기와 더불어
모양이 다른 마음에 있는 조국이다.
그래서 그것이 훼손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인공기는 조국을 배반한 天人共怒할 북녘의 國旗이다.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세계사에 우뚝 선다.
비록 한 민족이지만
그들은 지도자를 잘못 세워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더하여 핵폭탄으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백성은 먹지 못하고 한 겨울에 벌벌 떨며 사는데
소위 지도층이란 자들은 好衣好食하며 뱃살만 늘어난다.
6.25전쟁 때 그들은 수 백만 명의 死傷자를 냈고
국토는 焦土化가 되었다.
바로 그들의 국기가 인공기이다.
그러한데 인공기를 태우면 안된다고라?
그렇다면 묻는다.
현 정부의 문재인은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북쪽인가? 남쪽인가?
태극기를 태우면
소방서에 진화하라고 명령을 내릴 것인가?
집히는 바가 있다.
문재인은 어느 私席에서 그의 조국은 북한이라고 했다.
그의 本鄕은 地理적으로 북한이 맞지만
조국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조국은 땅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었으면서
그만한 常識도 없어서야 체면이 서겠는가?
참으로 寒心無知로소이다이다.
미안하지만 평창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조국을 모르는 대통령이 날뛰니까 말이다.
평창을 보면서 태극기의 푸대접에 눈물이 난다.
이것도 나이가 드는 현상인가?
아니면 철이 드는 것인가?
또 아니면 둘 다인가?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다 걸며 잠시 눈시울을 붉힌다. *

< 문재인, 미국 펜스 부통령에게 낭독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