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보면 원치 않은 불가피한 상황을 다반사로 만나게 된다.
때로는 전후좌우前後左右가 꽉 막힌 듯 느껴져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된다. 저 정도면 살만한 여건인데 싶은 사람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걸 보면, 그런 상황에 빠졌기에 삶을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전후좌우가 막히는 일은 없다. 다만 우리 인간들이 막혔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우화다.
당나귀가 샘이 말라버린 우물에 빠졌다.
농부는 당나귀 구출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궁리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농부는 당나귀가 나이가 들었고 어차피 우물도 메우려 했으니 차라리 당나귀를 그대로 묻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물에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당나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잠시 후,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우물 안을 들여다 본 농부는 깜짝 놀랐다. 당나귀는 쏟아지는 모든 흙을 한 발 한 발 밟아 발판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농부와 이웃들이 흙을 계속해서 퍼 넣었고, 당나귀는 우물에 떨어지는 흙을 다져밟고 올라서기를 반복한 끝에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당나귀 입장에서는 우물에 빠진 것만으로도 암담暗澹한 상황이었을 터.
자신을 생매장生埋葬하느라 퍼 붙는 흙을 발판으로 살아나온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의 운명을 오히려 삶의 디딤돌로 삼은 것이다. 당나귀의 기지奇智가 생매장하려던 주인의 마음을 바꾼 셈이랄까.
이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온갖 함정과 흙더미를 집어던지지만 그걸 절망으로 포기하느냐, 기회로 삼느냐는 개개인 당사자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자연에게 그 누군가를 위하거나 해치려는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은 오직 인간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생각일 뿐이다. 이를 희망으로 바꾸는 것 역시 생각이다. 그래서 자연이 냉혹하다는 말도 인간의 생각일 뿐,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이 자연이라는 거다.
하느님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신 거다. 일일이 간섭하고 예뻐하거나 미워할 바엔 자유의지 따위는 주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느님 맙소사!’라는 비명은 인간의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사회에는 절망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초에 자체 개헌안을 확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반 국민과 당원,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 주위 지인들 중 어느 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양동계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북한 김정은에게 올인하는 문재인 정권의 개헌안이 어떨지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이런 정권을 탄생시킨 국민들을 보면 촛불만 들면 1등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저 절망스러울 뿐이다.”
말했듯 자연의 섭리에서는 절망이란 없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절망을 하고 희망도 가진다.
그러나 문재인 같은 자가 득세하는 걸 보면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더러운 생물이 인간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평생 자유대한민국 국민이었던 나로서는 김정은에게 읍소하는 이런 정권을 탄생시킨 이 나라 국민들의 본질을 깊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전교조의 폐해로 왜곡된 역사를 배운 이 나라의 주역들을 보며 절망을 느낀다.
내게는 내 위장에 있는 암이 절망이 아니라 문재인이 인정한 촛불국민의 존재가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