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건만 우리 집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온 거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이 방 저 방을 날아 오가는 새를 잡으려는 딸 녀석과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새가 집안을 온통 운동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뜻하지 않은 상황에 두려움에 떠는 작은 새의 마음이 느껴진다.
"춥더라도 참으라고."
작은 새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모두 열어주었다.
"복덩어리가 들어왔는지도 모르는데 놓아주려고요?"
"그럼 기를래?"
"못 기를 것도 없죠. 뭐."
딸 녀석과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작은 새는 열린 창문으로 자유를 찾아 날아가고 말았다.
우리 집이 산중에 있어서인지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딸아이가 작은 새를 복덩어리로 보고 싶을 만큼 우리 집 사정이 어려웠던가 싶어서 다소 씁쓸하다.
누구나 복을 얻길 바라는 건 마찬가질 거다. 앞으로 다가올 설날이면 너나 할 것 없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복 받으라는 인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불행은 바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의문이 있기에 그렇다.
73년간의 삶을 통해 경험한 바에 따르면 복이란 운명에 의해 들어오고 나가는 게 아니었다.
행복이라는 것도 그렇다. 복이든 행복이든, 아니면 저주든 불행이든 세상에 널려있는 것이고 그걸 불러오고 내보내는 건 새 한 마리의 들락거림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거다.
추운 겨울 날, 먹이를 찾기 위해서든 따듯한 기운에 이끌려서든 사람이 사는 집에 작은 새가 들어온 건 자연스런 흐름에 불과하다. 자연스런 에너지의 흐름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붙여 묶어 두려함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것.
새는 창공을 날아야 새다. 조롱 속에 갇힌 새는 이미 새가 아니다.
내 복을 얻자고 창공을 날아야할 새의 자유를 구속하는 건 순리를 거스름이요 오히려 복을 내쫓는 일이다.
그렇게 믿고 있음에도 끝내 탈출한 새를 아쉬워하는 둘째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적당한 욕심, 적당한 바람, 적당한 집념을 지녀야할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욕심과 희망 또한 삶의 도구인데 어쩌겠는가. 자연과 삶을 관조하고 삶의 비밀을 이해하느라 애쓰기에는 딸아이가 아직 젊다고 할까. 그 나이에는 세상에 내 것이 없다는 걸 이해라기 어렵다. 명예든, 재산이든, 세상사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그저 관리하고 이용할 뿐, 내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음이 우주의 섭리임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라는 거다.
어차피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 그나마 관조하는 삶은 나이 육십을 넘기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가는 요즘 세태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록 아는 척하는 나의 부족함을 드러냄일지언정 적당한 욕심과 집념은 지니되 그 욕심과 집념의 노예만큼은 되지 말라고.
작은 새를 풀어준다 함은 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풀어준 나 자신의 자유를 얻은 것.
누군가를 지지를 하되 지지하는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음이니 자신을 스스로 묶은 대가로 얻은 사시를 진리로 착각한데서야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살만큼 살다가 천수(天壽)를 다하여 세상을 뜨는 노인네들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어림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깨우침을 얻은 증거가 아닐까.
그건 인격도야(人格陶冶)에 애쓴 사람들에게 오는 자연스런 보상인 셈이니 생각의 노예 되는 어리석음만큼은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이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 해주는 스스로의 충고다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