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꽤나 춥다.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한데
그 추위로 하여 두 가지가 생각난다.
북한과 장진호 전투이다.
북한은 원래 춥지만 더하여 추운 이유가 있다.
난방용 땔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골은 그런대로 땔감을 구할 수가 있지만
평양 같은 도시는 한겨울에 난방 없는 겨울을 나야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6.25 전쟁 때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은 중공군과 싸웠지만
더 큰 적은 중공군이 아닌 추위였다.
1950년의 겨울로 돌아가 본다.
추위와 싸운 장진호 전투
살아있는 것을 모두 얼려버릴 것 같은
1950년 대한민국의 겨울,
美軍 해병 제1사단은 유엔군의 북진 때 元山항으로 상륙하여
서부전선에서 北上 중인 미 제8군과 合流하려고
장진호 계곡을 따라 江界 방면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진군 서하면 유담리와 신흥리 일대에서
중공군 7개 사단으로부터 포위,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지역은 높이 2천m 이상의 높은 산들이 남북으로 뻗어
낭림산맥을 이루고 있고 興南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깊은 협곡(峽谷)을 이루고 있어
철수작전이 매우 힘든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海兵은 추위를 무릅쓰고
40km 거리의 협곡지대를 돌파하여 철수에 성공했다.
그 당시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장진호전투를 진주만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敗戰이라고 혹평할 정도였다.
전투 결과만을 본다면 장진호전투는 중공군의 승리이고
미군의 패배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인 占領을 승패의 기준으로 본 것이다.
피해상황을 보면 미군이
전사 3937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이지만
중공군은 5만여 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진호 전투의 처참했던 상황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美 해병1사단은
부상자 대부분이 凍傷 환자였다.
당시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는
高度 천 미터 이상의 산악지형이어서
낮기온이 영하 20여 도, 밤기온이 영하 30여 도였다고 한다.
무기와 차량도 계속 가동(稼動)시키지 않으면 모두 얼어버렸고
부상자 치료를 위한 링거나 모르핀도
다 얼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전투식량도 녹여 먹을 수가 없어서
얼음 상태로 먹었기 때문에 전투기간 내내
병사들은 심한 장염과 설사에 시달렸다.
밤낮으로 계속 되는 전투 때문에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는데
적의 기습에 대비해
침낭의 지퍼를 잠그는 것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 장진호전투는 영화 “혹한의 17일”로 제작될 정도로
한국전쟁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투였다.
또 신념 있는 지휘관의 용기와
이를 믿는 부대원들이 함께 이룩한 전투여서
미 해병1사단은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고 평가된다.
[참고] 작성자 : 독립영웅
흥남철수작전은 왜 기적이라고 불리는가?
美軍이 중공군의 人海戰術에 밀려 흥남으로 이동하던 중
그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흥남부두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美軍은 10만여 명에 달하는 군 병력과
50만 톤의 장비 및 물자를 실어나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고
거기에 피난민을 태우는 것은 無理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美軍의 이 결정을 바꾸도록 만든 사람이 현봉학 박사였다.
현 박사는 6·25전쟁 당시 민간인 身分이었지만
미국 유학파로 英語에 능통해 미군 통역장교로 參戰했다.
그는 피난민 구출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알몬드 장군의 부참모장인 포니 대령을 만나 도움을 청했다.
포니 대령은 현 박사를 美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에게 소개했고
현 박사와 포니 대령은 알몬드 소장에게 피난민 구출을 호소했다.
알몬드 소장은 두 사람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을 돌렸고
배에 싣고 있던 군수품 대신 피난민 수송을 지시했다.
1950년 12월 12일,
세계 전쟁사에서 길이 남을 "흥남철수작전"의 序幕이 올랐다.
당시 피난민 구출을 위해 동원된 선박은
민간인 商船까지 합쳐 193척에 달했다.
어렵게 흥남항을 떠난 14만 명의 피난민은
현 박사를 은인(恩人)으로 불렀다.
현 박사가 살린 것은 피난민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빛을 기다리던 5명 태아(胎兒)의 목숨도 구했다.
1950년 12월25일,
거제도를 향해 항해 중이던 흥남철수 작전의 마지막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7600t급)에서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문재인의 祖國은 어디인가?
문재인의 부모는 흥남철수 때
미국의 商船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월남했다.
그리고 3년 후 문재인을 낳았다.
6.25가 끝난 후 대한민국은
눈부신 성장을 해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
그리고 문재인은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어느 좌담에서
자신의 祖國이 북한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조국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萬一을 가정해서 그 날,
美軍이 흥남철수를 하면서
피난민을 배에 태우지 않았다면
문재인의 조국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정치 지도자를 하고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을까?
미국은 그에게 어떤 존재인가.
反美의 대상인가?
親美의 대상인가?
그래서 문재인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美國보다 北韓을 먼저 가겠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에게 本籍(?)이니까...
그가 북한에 가는 것을
말리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그러나 딱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가거든 거기서 눌러 살아라!
제발!
너의 祖國은 그곳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