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불경과 성경을 자주 읽게 된다. 7-8년을 틈틈이 읽어온 덕분에 글자로만 인식認識되던 말씀들의 의미가 더러는 이해될 때도 있다. 물론 그 이해수준이 한심하지만.
이해력의 한계 때문인지 훌륭한 고승高僧들의 법문法文을 읽다보면 너무 젊어서 깨우치는 것이 꼭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인다. 물론 깨우치지 못한 내 시각으로는 알아차릴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그럴 것이다.
SF영화 서레니티Serenity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서 외계행성을 개발하여 사람을 이주 시키는 시대가 배경인데 정부에서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격한 감성억제제를 가스gas로 개발하여 변방우주邊方宇宙에 위치한 행성의 주민들에게 시험적으로 살포한다.
그 가스를 마신 주민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유형은 감성이 억제되기는 했지만 아울러 욕심, 의욕, 사랑하는 마음마저 상실해버린 경우다. 욕심과 의욕이 없어진 주민들은 일할 생각은 물론 심지어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두 번째 유형은 의지와 생각이 없어짐으로써 살육의 본능만 남아 인육을 먹는 난폭하기 작이 없는 인간의 탈을 쓴 맹수로 변화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지닌 욕심과 집착執着은 지나칠 때가 문제이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두려움이나 불만은 욕심과 집착, 의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일을 행함에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삶이 두렵거나 고통스러울 까닭이 없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루지 못할 때 불만과 갈등이 만들어지는 것.
욕심과 집착을 완전하게 버리면 편안해지기는 할 터. 문제는 영화 서레너티에서 말하듯 그런 삶은 이미 삶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놀러왔던 후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당장이라도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들 말한다.
그 때마다 해주는 말이 있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지을 각오가 아니라면 나이 55세 이전에는 하던 일을 하라고 말이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생각 없는 세계로 몰입해 들어가는 것은 세상살이 할 만큼 하고 인생을 정리할 즈음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충고를 하게 되나보다.
욕심을 가져보지 못한 자, 불만이 있어보지 못한 자, 남을 미워해보지 못한 자, 슬픔에 겨워 흐느껴보지 못한 자, 실연失戀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자, 남들에게 경멸을 받아보지 못한 자, 삶의 쓴 맛을 골고루 맛보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내지 못한 사람은 전원생활 역시 해낼 수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쩍이나마 생각 없는 세계를 경험했던 사람은 정치나 사업, 공무원 같은 일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투지鬪志와 욕구가 그만큼 흐려지고 다툼이 덧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던가.
그래서 제대로 된 스승 없이 그런 공부 잘못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하기 딱 좋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도사道士님을 만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