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님들께서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하실 이야기를 해야겠다.
친구로부터 보신탕파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이 추위에 무슨 보신탕이냐고 말했더니 보신탕 마니아들이 계절 따질 것 있느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한다는 소리가 어쩌다보니 친구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는 것이었다.
하긴 서울에 살고 있는 재경동문회 친구들이 가끔 보신탕파티로 모이는 일이 있었으니 비록 1월 중순이지만 지금 보신탕 모임을 갖자는 것도 그다지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이 친구들의 속셈은 하루 2만보를 걷는 등, 암 투병을 하고 있는 내가 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자는 것일 테다.
나는 개고기를 즐겨하지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개고기 나름대로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난했던 것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입에 달고 사느냐 하겠지만 우리가 개고기를 먹게 된 동기에 가난이 한 몫 하는 건 아닌지 싶어서 내가 처음 개고기를 먹었을 때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었던 청소년시절을 거쳐 해병대에 지원입대하게 된 나는 함께 입대하는 고교동기동창 녀석과 병무청에서 내준 기차표를 쥐고 경춘선 열차에 타고 있었다.
내가 입대했던 1966년 6월, 단선으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경춘선을 타고 장장 3시간에 걸쳐 청량리에 도착하여 버스 편으로 서울역에 도착했으나 부산행 완행열차가 출발하는 밤 여덟 시를 기다리자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80여 킬로미터에 불과한 거리를 3시간이나 달려야했던 당시 교통편이 우습기는 하지만 그나마 비포장도로가 태반이었던 당시로서는 제법 빠른 교통편이 열차였었다.
“배고프지? 저녁 먹자.”
이미 저녁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국수를 말아 아침이라고 드는 둥 마는 둥 점심까지 걸러버린 내가 어찌 배고프지 않을 리 있을까.
아니, 나로서는 늘 배고픈데 길들어 있었기에 두 끼니 정도 넘기는 것이 당연했었기에 군에 입대한다고 어머니가 주신 아까운 500원으로 감히 식당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나에게 친구 녀석이 밝게 웃어 보였다.
“임마, 나 용돈 후히 받았어. 우리 꼰대가 꼴 보기 싫은 차남이 군대 간다니까, 에라 잘됐구나 싶었던지 용돈을 왕창 주더라고. 재수 없는 돈이니까 빨리 써 버리자고.”
그러고 보니 이 친구도 차남이었던가?
비교적 부잣집 아들인 친구 역시 부모에 대한 불만이 많았었건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장, 차남차별로 대학진학 길이 막히면서 반항아가 되어버린 녀석이 아니던가.
그러나 나와 중․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었던 녀석이었기에 입대하는 길이라지만 여전히 나의 주머니가 비어 있으리라 짐작 못할 바 아니었으리라. 우리 시대의 친구들이 그러했듯 녀석도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일지언정 가난한 친구의 주머니를 감싸줄 만한 아량정도는 지닌 그릇이었다.
“야, 고기나 한 사발 하자. 수육 어때?”
친구가 잡아끄는 대로 들어간 음식점에서 난생처음 수육이라는 것을 먹어 보았었다. 명절 날, 그것도 운 좋으면 건더기 구경하기 어려운 기름기 둥둥 뜨는 고깃국 얻어먹는 게 고작이었던 내 처지에서야, 수육이 뭔지 이름이나마 들어보았겠는가.
고교를 갓 졸업한 주제에 언제 배웠는지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거뜬히 해치운 친구가 다소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너, 개고기 먹을 줄 아냐?”
“아니. 내가 개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그런 걸 어떻게 먹어?”
안면 근육을 심하게 실룩거리던 친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야, 짜샤, 하하하…, 너 날 웃기냐? 지금까지 맛있게 처먹고는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뭐……? 이게 개고기란 말이야?”
불룩해진 포만감으로 만족스러웠던 뱃속에 마치 인육이라도 먹은 듯 메스꺼움이 일었다. 그야말로 토할 수 있다면 토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모처럼 느껴지는 포만감을 포기하기 어려웠었다.
그 때, 나는 나름대로 판단했던 것이 있었다.
고기가 귀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하던 농민들 처지에서 영양가를 보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는 판단 말이다.
우리 어머니는 불교를 믿으셨다. 가끔 절에 가서 사주 같은 걸 물어 오시는 걸 봐서는 불교신자라기보다는 미신을 믿었던 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지 모르고 먹었을지언정 다시는 개고기를 입에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황이 그리 돌아가 주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고 실무부대에 배치되면서부터 시작된 수색훈련, 상륙훈련, 공수훈련, 기동훈련 등등, 끊임없이 계속되는 훈련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의 해병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일병이 되기까지 각종 특수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그중, 생존훈련을 받으면서 다시금 개고기와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안 되는 일이었지만 스스로 먹을 것을 충당해야하는 생존훈련 중, 죄 없는 멍멍이들이 우리들의 주린 배를 채워줬었다.
그럼에도 개고기는 가난했기 때문에 먹게 된 것이라는 내 인식은 수정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나는 그 인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분대장님이 워낙 개고기 마니아였기 때문이었다.
군대 밥으로나마 굶주림을 면함과 동시에 개고기와 상대도 하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비록 C-레이션이지만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칠면조고기에 이르기까지 고기라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베트남 병영에서 굳이 개고기를 찾을 건 뭔가 싶을 만큼 한 달에 한 번은 보신탕을 끓여야 했었다.
그 놈의 보신탕은 된장을 풀어야 한다나, 한국에서 된장까지 공수해올 정도였으니 우리 분대장님도 참으로 어지간했던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제대후 오랜만에 청룡 5중대 전우회에 참석했더니 그 분대장님께서 스님이 되어계시더라는 거다.
내가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쭤보았다.
“분대장님. 보신탕은 여전히 좋아하세요?”
“짜식아! 돌중 된 후부터 입 근처에도 모시지 않았다. 뭐, 좋아하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려고 말이야.”
먼 훗날, 내 나이 50이 넘던 해였던가.
군 제대 후 입학한 대학에 다닐 때, 영양보충 하느라 남의 집 개를 슬쩍해서 잡아먹은 후, 단 한 번도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신탕집을 찾았었다.
큰 사업을 끝낸 뒤풀이였기에 책임자라는 사람이 빠질 수도 없었고 모든 직원들의 열화 같은 성화에 견딜 재간도 없었다. 그래도 개고기를 입에 대는 것이 찜찜해서 닭백숙을 시켰더니 직원 중 한 녀석이 씩 웃으며 개고기를 권한다.
“이거요, 그냥 음식이에요. 고마운 줄 알고 드시면 되거든요?”
그 말에 뭔가 삥 하고 오는 것이 있었다.
고마운 줄 알고 먹어라?
어린 시절부터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가 하신 말씀, ‘개고기는 안 돼.’라는 인식의 노예가 되어있는 나를 발견했다는 거다.
그 순간 내가 지닌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그것이 타락의 전조인지는 모르겠으니 아예 먹어보지 못했던 고기도 아니고 굳이 티내느라 애쓸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맛이 있었다니…….”
직원들이 초보자인 나를 위해 양보해준 부위, 특히 껍데기의 졸깃한 육질하며, 부담 없이 넘어가는 감촉이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지금 내가 정착한 평창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중복 때면 어김없이 개를 잡는다. 꼭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선조로부터 내려온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동네잔치를 하는 식으로 잡는 것이 아니라 개고기를 즐기는 주민들끼리 추렴해서 모인다는 거다. 나는 도시출신이라 개고기를 먹지 않으리라 짐작해서인지 한 번도 보신탕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다.
나 역시 개고기를 찾아다니며 먹는 타입은 아니라 굳이 끼어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도 굳이 보신탕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신탕파들과 거리를 두지도 않는다. 내가 앉은 자리에 보신탕이 있으면 그냥 먹는 것이다. 학교 동창들이 보신탕파티를 하자고 원하면 일 년에 한 번쯤은 우리 집에서 보신탕을 끓여 친구들을 영접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놓고 가는 돈이 개를 잡느라 들어간 경비보다 늘 상회하는 건 물론이다.
옛날 내게 개고기를 권하던 직원이 했던 말을 나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거요, 그냥 음식이에요. 고마운 줄 알고 드시면 되거든요?”
그래도 나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여전히 찜찜하다.
하긴 술안주로 가끔 먹을까, 고기조차 일 년 내내 밥상에 올리지 않는 식성인데다가 삼겹살은 혐오식품으로 취급하니 개고긴들 즐길 리가 있겠는가.
내가 고기를 멀리하는 것은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냥 식성이 그런 거다. 하긴 젊었을 때에는 그리도 맛있던 고기가 나이 먹어감에 따라 싫어지는 건 쪼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에는 개고기를 먹어야할 것 같다. 친구들의 애타는 마음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