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을 앞세워 드디어 남한에 남침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며 남한을 무력침공을 한다는 선언이다.
그럼에도 남한의 국민들은 6·25 직전과 다름없는 혼란한 국가위기에 낙관론만 펼치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상황에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무슨 지원을 하겠다며 주접이다.
문재인과 이 나라 국민들에게 내가 읽었던 소설을 권하고 싶다. 그 소설 중에 6·25 작전의 상황을 그린 장면을 발췌해서 올린다.
6․25 동란 직전에, 당시 육군 소위였던 귀철은 이미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투에 영일이 없었다. 미군 측에서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도발을 근거 없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최전방 국군들로부터 들어오는 보고는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인민군의 무장 수준이 국방군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해져 있음을 적지 않은 적진침투 정찰을 통해 귀철은 알고 있었다. 국군이 소지하고 있는 개인화기라야 2차 대전 때 쓰고 버린 일본군의 99식 소총과 M-1 고물 소총들이었으니 북한의 병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어린아이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나마 귀철이 소속된 특공대에 특별히 배려해서 지급된 개인화기가 고작 M-1소총과 M-2카빈, AR자동소총 등에 불과했으니 일반 국군의 무장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방 중사, 준비됐는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방진호 중사는 평안도 혜산 출신으로 20이 갓 넘은 젊은이였다. 이부대의 살림꾼으로, 같은 이북 출신이라고 해서 귀철을 무조건 형님처럼 신뢰하며 따르는 부하였다.
그 날이 1948년도 막바지에 이른 12월 말. 새벽 한 시였던가, 귀철은 북한 인민군의 이동상황을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곱 명의 대원들만 선발, 인솔하여 3․8선을 넘었었다.
겨울은 역시 정찰하기에는 좋지 않은 계절이었다. 엄폐물이 마땅치 않고 눈 위에 흔적을 남기게 되어 적의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3․8선 고지의 겨울은 서울보다 훨씬 빠르게 오고 있었다. 벌써 산야는 창녀들의 얼굴처럼 하얗게 눈으로 분칠했고 미처 숨기지 못한 흉터처럼 시커먼 바위들을 군데군데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고향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눈 쌓인 산야를 보는 감정이 그러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 때는 자연의 변화가 너무나 당연해서 아름답다거나 정겹다는 식의 감상 자체가 없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산야는 있는 그대로가 귀철의 일부였다. 두만강 물이 풀렸을 때에는 멱을 감고 물고기며 뱀장어를 낚아 올려 지글지글 끓여 먹던 놀이터였고 얼었을 때에는 얼어 있는 그대로 썰매타기, 얼음낚시로 신바람을 일으키던 곳이었다. 더구나 이 또래 악동들에게는 조선이든 만주든 국경 개념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름이면 여울목 얕은 곳을 이용하여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두만강을 넘나들었고, 겨울이면 만주 쪽 강변에서 모닥불을 피워 손발을 녹였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봄, 가을을 가릴 것 없이 푸짐했던 고향 산천, 그 속에서 하나 되어 살았었고 그러했기에 자연에 대한 감상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오히려 귀철에게 알 수 없는 고독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자연과의 괴리乖離였다.
아무 느낌도 없었던 눈이나 비, 나무, 꽃, 그리고 험준한 산악, 그 모든 것들이 최근 들어 귀철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거나 방해가 되는 존재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계視界확보를 위해 수백 년 묵은 나무를 미련 없이 베어버리기 다반사요, 심지어 계곡을 틀어막아 물꼬를 인위적으로 터 내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평생 생각해 보지도 않은 인생의 의미라는 것을 되돌아보고 있음이었다.
3․8선을 넘어온 뒤 한 시간이 지났을까 말까 한 새벽 두시쯤, 이 시간까지 별다른 상황을 발견하지 못한 귀철은 이제 귀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대장님, 산등성이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갑자기 안개 속에서 윙윙거리며 여러 대가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대원들을 사주경계 시키고 방 중사는 나를 따르라.”
산등성이로 올라 건너편 계곡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귀철은 몸이 얼어붙는 것을, 아니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귀철의 망원경에 포착된 것은 끝없는 전차부대의 대이동이었다.
그날 확인한 전차들은 그날부터 한 달 후인 1949년 1월 인민군 2개 전차사단으로 편성되지만, 그것을 알길 없는 귀철과 방 중사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차마다 소대병력의 보병들을 거느리고 우렁찬 엔진의 굉음을 발하며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망원경을 방 중사에게 넘기고 벌렁 드러누운 귀철의 시야에 하늘의 먹구름이 보였다. 때는 12월, 겨울은 깊어가고 있었고 밤 또한 이슥해져 있었다.
‘도대체, 저 많은 탱크가 왜 필요한 것인가? 미국에서는 북한의 전면 남침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남한에서 전쟁을 일으킬까봐 군비확장을 막고 있지 않던가. 저 탱크들이 왜 동경의 맥아더 사령부에는 보고되지 않은 것일까?’
귀철이 우려하듯 동경의 맥아더 사령부가 북한의 전비확장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미 2개 사단의 전차부대를 창설할 수 있는 탱크가 북한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일찌감치 입수 해둔 터였다. 분명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상황을 놓고서도 미국의 정치가들과 맥아더 사령부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은 어찌 된 연유일까.
귀철은 겁에 질려 있는 방 중사를 일깨웠다.
“촬영해 둬.”
방 중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소형 카메라로 인민군 전차부대를 촬영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귀철은 침투보다 귀환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침투와 철수 통로를 바꾸어 3․8선에서 1킬로미터도 남지 않은 지점까지 철수했으나 이미 인민군에 의해 퇴각로가 차단되고 있었다. 인민군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자신들의 침투를 감지한 것이 분명했다.
“2개조로 분산한다. 방 중사가 두 명을 지휘하여 A루트로 진입하라. 본관은 세 명을 지휘, K루트로 퇴각하겠다. 신속하게 움직여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 중사는 대원 두 명을 이끌고 A루트로 진입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방 중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귀철은 나머지 대원들을 이끌고 K루트를 향해 소리 없이 움직였다.
갑자기 방 중사가 진입한 산등성이 너머에서 콩 볶는 듯 요란한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류탄 폭발음과 더불어 M-1과 AR자동소총 소리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귀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인민군들에게 커다란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은 총소리가 터진 것과 거의 동시였다.
이 틈을 놓칠 수야. 귀철과 대원들은 산등성이를 향해 몸을 일으킨 인민군들에게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앞으로!!”
귀철이 선두로 뛰기 시작했다.
인민군들의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순간, 귀철의 뒤를 따르던 이 일등병이 튕기듯 허공으로 튀어 오르더니 뛰고 있는 귀철의 앞쪽 계곡에 굴러 떨어져 처박혔다. 적탄에 명중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엎어지듯 달려간 귀철은 하체 부위가 부러져 겁먹은 눈동자만 희번덕이는 이 일등병을 발견했다. 이 상황에서 이 일등병을 업고 탈출할 수는 없는 일, 결론은 뻔했다.
“친구. 먼저 가거라.”
귀철은 냉정하게 M-2 카빈의 총구를 이 일등병의 머리에 조준했다. 이것이 특공대의 불문율임을 이 일등병도 익히 알고 있을 터.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부하를 죽인다는 것은 내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고통이었지만 두고 간다 하더라도 인민군의 고문에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으려니와 어차피 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해야 될 일,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을 지휘관인 내가 아니면 누가 대신해줄 것인가.
억울하게도 머슴들 손에 무참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원수를 갚자고 30이 다 된 늙은 나이에 육군사관학교를 입학했고 장교가 되었다. 지금, 그 원수들을 쏘아야 할 총으로 금쪽같은 내 부하를 쏘고 말았다.
귀철은 울면서 정신없이 계곡을 건넜다.
아군 지역에 들어서면서 엄폐물을 이용하여 뒤따를 부하들을 엄호하기 위해 자세를 잡은 귀철의 시야에 최노성 하사의 날쌘 움직임이 들어왔다. 최 하사의 모습이 점점 확대되어 오면서 귀철은 울부짖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계곡 통과에 성공한 최 하사는 귀철과 함께 엄호사격掩護射擊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권 하사의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가 싶었던 순간, 귀철은 그의 모습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있었다.
“소대장님! 권 하사는 전사했습니다.”
짐승같이 울부짖는 최 하사의 외침에 귀철은 언젠가 자신도 부하들과 더불어 저렇게 산하에 흩어지게 될 것임을 비로소 실감하고 있었다.
3․8선에서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반사로 일어나던 국지적인 충돌은 귀철에게 수없이 많은 전투경험을 안겨주었고 6․25 동란 중에 기억할 수 없을 만큼 계속되는 전투에서 살아남았음에도 60이 다 된 지금까지 내 손으로 부하를 쏘았던 기억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그 날, 부하 두 명을 잃고 혼자 귀환한 방 중사와 함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말없이 들이켰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지 않은가.
소련군 점령지에서 수없이 자행되었던 부녀자 겁탈과 양민 학살, 북한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인민재판, 어느 날 갑자기 붉은 완장을 팔뚝에 두르고 어제의 상전을 때려죽이던 머슴들. 이것들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일이었다면 납득할 수 없는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 참상들을 경험했기에 결코 재현되어서는 안 될 것이 전쟁이라고 확신해 왔었다. 공학도였던 귀철의 무딘 감성으로도 전쟁터에는 인간들이 어디까지 잔혹해지고 추해질 수 있느냐의 문제만 있었을 뿐, 인간성은 물론이요 불성佛性이니, 신성神性이니 하는 따위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가끔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들을 하지만 그것은 얻고자 하는 자들이 내심으로 지니고 있을 밀림의 법칙에 다름 아니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뒤바뀜이 개혁이요, 사람들이 주장하는 새로움이라는 것이었다.
개혁만이 진리라 믿는 자들은 그 와중에서 겪고 가야 할 자신의 타락을 모른다. 오직 광란만이 난무하는 전쟁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개혁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우리 인류는 전쟁으로는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 자기가 이해할 수 없으면 틀린 것이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나쁜 놈으로 치부해 버리는, 옳고 그름이 총을 가진 자의 논리에 의해 수시로 바뀌는 전쟁터에서 휴머니즘 따위가 존재할 리 없었다.
전쟁을 막으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명언이 있다.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전쟁이다. 핵전쟁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시를 말릴 것이다. 핵폭발에 직격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방사능 낙진 등으로 결국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면 모조리 죽이겠다는 김일성 일가의 미친 짓을 모를 리도 없건만 여전히 대화타령에다가 인도적인 지원 운운하며 우방국들을 배신하는 문재인이 제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