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정착한 평창 700고지 우리 동네에서 6년 간 반장을 했었다.
이사한지 4년여 지난 다음 동네 주민들이 반장을 하라는데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정부 조직 상 가장 하위직(?)이라 할 수 있는 반장을 하라고?
뭐,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50대 후반이어서 자존심이라는 것이 남아있었는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었는데,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겠는가.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든 지금 이 순간은 연금으로 먹고사는 이 동네 주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과거에 연연하여 오늘 이 순간의 나를 부정한다면 현실이 아닌 허상을 사는 것. 지금 내가 반장을 할 차례라면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맡게 된 반장 노릇도 쉽지는 않았다.
우리 동네에 펜션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펜션 수입이 제법 짭짤하다며 우리 집에서도 집 몇 채 지어서 펜션을 해보라고 권하는 아주머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반장이나 이장 입장에서는 아주 골치 아픈 분이다. 요구사항이 많은 것이다.
문제는 아주머니의 요구사항이 주민으로써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인지, 터무니없는 요구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거다.
경치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지만 언덕 위에 펜션을 짓고는 500m에 달하는 길에 포장을 해달라고 반장, 면장, 이장, 군수 할 것 없이 달달 졸라서 골 아프게 하더니 여름에 펜션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며 밭에 냄새나는 거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분이다.
명색이 반장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따지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여기는 영농지역이기에 도로포장은 농로부터 해 주는데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해주는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가장 늦게 이사 오셨으니 순서가 아직 많이 남았어요.”
“우리 집은 펜션영업집이잖아요. 특별히 배려해줘야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은 원칙으로 보면 되겠어요?”
“펜션은 농업이 아니죠. 개인 사업이잖아요? 도로포장이 되지 않아서 손님이 오지 않는다면 아주머니가 포장하는 것도 사업투자네요.”
“어머머머! 저도 세금 내는 국민이에요. 농로는 포장해 주고 펜션은 포장해주지 않는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거예요?”
이렇게 시작되면 나와 아주머니의 설전은 끝 간 데를 모른다.
“농사를 짓는 걸 뭐라 할 수 없지만 냄새나는 거름은 좀 삼가 줘야하지 않나요? 우리 손님들이 항의하잖아요.”
“농촌이 그렇다는 걸 모르고 이곳에 펜션을 지었어요? 조상대대로 이곳에서 농사짓던 분들이 새로 생긴 아주머니네 펜션 때문에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가요?”
“누가 농사짓지 말랬어요? 냄새나는 거름을 쓰지 말라는 거죠.”
이럴 땐 너무 기가 막혀서 대답조차 하지 못한다.
금년겨울에는 눈 치우는 일 때문에 허루 건너 전화질이다.
“우리 펜션 교통 두절됐어요. 길 좀 치워줘야지 어쩌면 이럴 수 있어요?”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트랙터가 눈을 치워줄 겁니다.”
“우리 집은 주차장도 치워줘야죠. 주차장을 치워주지 않으면 손님 차는 어쩌라고요?”
“서울에서도 자기 집 마당은 자기가 치웁니다. 펜션 마당은 그곳 사람들이 치워야지 동네 사람들이 펜션직원들입니까?”
“우리 집에 무슨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세요?”
“우리 동네에는 사람이 있습니까? 펜션을 운영하시려면 이렇게 큰 눈이 왔을 땐, 스스로 장비를 부르던지 하셔야지 어떻게 사업하는 분이 그런 것까지 동네에 의존하십니까?”
“정 그러신다면 이, 반장에게 주는 수고비 금년부터 못 드려요.”
“그러세요. 수고비는 동네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으는 거지 강제로 모으는 세금이 아닙니다.”
동네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아주는 수고비는 우리 동네 세대수대로 다모와 봐야 60만원이다.
그중 20만원은 이장에게, 30만원은 반장에게 주는데 그 돈 30만원 받아봐야 반장노릇 하느라 1년간 전화비에 심부름할 때 끌고 다닌 자동차 연료비에도 턱도 없이 모자란다.
그걸 줄 수 없다는 거다.
까짓것, 받아봐야 동네년말모임가질 때, 음식장만 하는 돈으로도 부족한 걸, 준들 어떻고 안준들 어떻겠는가.
주민들의 화합을 일궈야할 반장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동네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해줄 수는 없다. 이런 말을 여과 없이 했다가는 동네주민화합은 물론이요, 자칫 도시에서 이주해온 모든 주민들까지 욕을 먹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장이라니 많은 부분 참아야 한다.
가능하면 아주머니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만 내가 부자라 내 돈 가지고 눈을 치워줄 수도 없고 집집마다 4륜구동트럭을 가지고 있어서 웬만한 눈 정도는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동네사람들에게 펜션 눈 쓸어주자고 동원할 수도 없다.
이장이나 면장에게 얘기해 봐야,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할 터이니 알아듣게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아주머니나 무슨 헛소리냐는 눈으로 처다 보는 이장이나 도무지 해결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펜션 아주머니만 말썽을 부리는 건 아니다.
무슨 도를 닦는다는 젊은 녀석은 미신을 타파한다며 동네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당제사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장이 그런 사람 좀 타일러야지 내버려두면 되겠어요?”
동네어르신들께서 반장에게 근엄하게 한 마디씩 하시기를 잊지 않지만 반장이 무슨 끗발이 있다고 남의 종교의 자유마저 구속하겠는가. 그건 대통령 끗발가지고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가끔 생각을 해본다.
반장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 철따라 감자씨, 농협퇴비와 비료 등등, 동네 농민들의 신청을 받아 이장에게 넘겨주는 일과 년 1회 동네 서낭당에 고사지내는 일, 동네 수도水道관리하는 일, 동네 주민들을 동원하여 개울 등에 버려진 농약병 수거, 청소와 농로 옆으로 무성해진 잡초 제거하는 일 등에 불과하다.
그런 별 볼일 없는 반장노릇하면서도 이렇듯 동네사람들 화합을 이끌어내기가 힘겨운데 나라일은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큰일 하는 분들이 많이 힘들겠구나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문재인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거 같다. 어찌 그리도 머리에 떠오름과 동시에 정책으로 실행하는지 말이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든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배짱이나 무조건 원전부터 폐기하겠다는 독선, 군대가 무엇을 하는 집단인지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듯 보이는 인사 등등, 어떻게 나라 일을 공깃돌 놀이하듯 멋대로 휘두르는지 어이없을 따름이다.
그래도 반장자리에 앉아있는 동안의 나는 ……, 작은 일일지라도 혹시라도 내 기분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처리를 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기를 개을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비록 할 일은 많지 않더라도 내가 동네주민들의 심부름꾼임을 단 한 시도 잊어본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뭐, 지금은 다른 분에게 반장자리도 인계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