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달았더니 짤려서 여기에 올립니다.
퍼온 것입니다.
산의 영혼/프랭크 스마이드 著, 안정효譯
이 책은 영국의 프랭크 스마이드가 쓰고 안정효가 옮겨 쓴 『산의 영혼』이다. 도시의 북적거리는 경쟁시대에서 이책을 읽는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자연적 감성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등산을 흔히 생각하는 도전이나 운동으로 보지 않고 ‘명상을 위한 산책’으로 설명한다. 등산을 생활로 삼고 이를 통하여 깨달은 몸철학으로 자연과 내통하는 삶을 이루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연이라는 심려를 의식하면서 활자라는 매체를 통해 산과 자연이 지닌 자세한 의미를 가감없이 전달해 준다. 누구든 산을 찾을 수 있게 깊은 영감을 수려한 문장으로 살펴준 것이다. 산에 오르며 느끼는 많은 경험을 인생과 비유하며 성찰을 갖었고, 자연이 인간에 주는 안락과 평온함을 밋밋한 감성으로 표현해 내었다. 최근 이 책이 회자된 이유라면 작고하신 법정스님 때문이다. 돌아가실 무렵의 스님 책상 위에 두 권의 책이 있었는데. 프랭크 스마이드의 『산의 영혼』과 팔데 갸초의 『가둘 수 없는 영혼』이다.
스님께서는 등산을 운동이나 도전으로 생각하지 않고 '명상을 위한 산책'으로 승화한 '스마이드'를 산을 걷는 명상가로 극찬하였다. 『산의 영혼』은 자연이 인간에게 쓴 한 권의 철학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있고 사색적이다. 삶이 무기력하고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낄 때 이 책 한 권을 들고 가까운 숲이나 산에 오른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무심하게 놓치고 있었던 자연이 주는 무언의 선물을 가득히 품고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책을 장식하는 327페이지 문장들은 모두 주옥같았다.
띄엄띄엄 몇 줄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등산인의 격언이다. 빨리 가면서 자주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계속해서 천천히 전진하는 쪽이 더 좋다. 기술이 훌륭한 등산가는 느긋하게 산을 올라가고, 그는 풍경을 즐기면서 올라갈 수 있는 속도를 항상 유지한다. 너무 빨리 가면 그는 등산과 경치, 어느 쪽도 즐기지 못한다.
걸어갈 때는 두 다리가 모든 일을 다 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산을 걸어 올라갈 때는 두 다리가 몸에 의해서 작동되는 지렛대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다리에게 맡겨 모든 일을 다 하도록 시킨다면 다리는 곧 지쳐버리고 만다. 다리의 움직임과 체중의 분배를 담당하는 것은 몸통의 아랫부분이다. 산을 잘 걷는 사람의 걸음새는 대개 다리 뿐 아니라 몸으로도 걷기 때문인지 걸음걸이가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군대식으로 성큼성큼 행진하는 걸음걸이가 표본적인 자세로 받아들여지게 만든 것은 오직 습관과 전통 때문이다. 성큼 걸음은 겉보기론 당당하고 씩씩해 보이지만 쉽게 피로 당한다.
등산은 누가빠른지 능력을 겨루는 경쟁적인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산 사이의 행복한 관계 이상의 어떤 경쟁적인 요소도 개입되지 않는 소의적 활동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는 그 관계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에 있어서 단련이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다.자연과의 접촉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인 기쁨과 이성의 자극, 신체적인 건강, 탁 트인 대기,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 그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인간들 사이의 투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전쟁은 산에서 꾸며지는 것이 아니고, 도시의 악취 한가운데서 생겨난다. 전쟁이란 오물과 질병의 한가운데서, 길거리와 뒷골목에서, 회의실과 사무실의 답답한 반위기에서, 기계의 소음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 암시의 산물이다.
정상적인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산에서 마을이 흩어진 평야를 둘러보고는 첫째로, 우리들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숭고하며, 둘째로, 그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수많은 미사여구를 끌어다쓴 어휘라할지라도 기껏해야 한가지 양상을 보여줄 따름이고,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서 바탕을 이루는 정신적인 진리를 겨우 엿보게 해 주는 이상의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질 못하다. "당신은 왜 산을 오릅니까?"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오직 구체적인 경험과 그런 경험 속에 스며 있는 관념들의 표현에 입각해서만 대답할 수가 있으며, 햐얀 빛이 사실은 여러 빛깔로 이루어졌듯이 그 경험이 많은 부분으로 엮어졌으며 명상적인 양상을 띄게 될 때는 그 아름다움의 작은 한 조각이라도 언어로 해석한다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고생과 난관과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려는 충동에 있어서 사람들은 지극히 복잡한 동기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이 동기들은 하나의 초점을 이루기도 하는데, 아름다움이 바로 그 초점이다.
등산은 아름다움의 탐구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어디에나 아름다움이 존재하고,우리들이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그만큼 더 많은 아름다움을 우리들은 파악한다.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이 음식과 물이나 마찬가지로 필수품이다.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정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문학이나, 철학이나, 종교, 그 어떤 형태일지라도 인간은 아름다움을 누려야만 한다.
산들은 아름답다, 산은 그 선과 형태와 색체에 있어서 아름다우며, 그 순수함과 소박함과 주유로움에 있어서 아름답고, 산은 우리들에게 안식과 만족감과 건강을 가져다 준다.
등산에서는 경험이 두려움을 제거해 줄 수가 없다. 만일 경험이 두려움을 제거할 수 가 있었다면 경험이 많은 등산인은 아무도 살아있지 못할 것이다. 두려움은 등산인의 체질에 있어서 본질적인 한부분을 이루는데, 이 두려움은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되는, 통제할 수 있는 두려움, 신중함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 두려움, 경험과 맞서는 대신 합리적으로 합류하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다. 등산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등산은 결코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등산은 정복이라는 어떤 애매하고 물질적인 동기에 이끌려 행하는 고달픈 일로서가 아니라, 대 자연과의 행복한 관계로서 즐겼노라고 말해야 한다.
자연(自然)
비가 많이 와서 탈이 나는 지방이 있는가 하면
비가 오지 않아서 어려운 지방도 있습니다.
하늘이 하는 일에
사람이 왈가 욀부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면서도
여기저기서 불평은 있기 마련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연은 우리들로 부터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훈련으로 정복되어야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한 부분이며
만물에 이어진 아름다움과 장엄입니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 자연에서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배웁니다.
그래서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調和)를
실현(實現)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영국의 등산가 <에프 에스 스마이드>의 말입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이 등산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날의 계획중 한가닥 황금의 실일 뿐이다.
마치 군인들이 일찍이
다른 군인들이 점령한 도시를 짓밟듯이
정상을 짓밟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방문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문재인 정부에게 일러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군인들이 점령한 도시를 짓밟듯이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정권을 안겨 준 국민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잘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2017.08.01.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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