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욕심은 생명체가 살기 위한 자연스러운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자신의 존재의미存在意味를 파괴한다. 더구나 그 욕심이 남의 희생까지 강요할 만큼 크다면 오히려 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있음을 모르는 존재가 사람이다.
아무리 많은 먹이가 평야에 넘쳐나도 배부른 사자는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먹이를 쌓아두는 동물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서‘탈출기’에는 하느님이 내려 주는‘만나’까지 저축을 하려다가 썩혀 버리는 인간의 속성까지 나올 정도다.
바로 이런 인간의 욕심을 신랄辛辣하게 경고警告해준 영화가 ‘프랭크 다라본드Frank Darabont’ 감독의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이다.
촉망囑望받는 은행 간부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슨Tim robbins분’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교도소 쇼생크에 수감된다. 간수장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개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폭압 속에 동료 죄수들에겐 강간强姦까지 당하는 등, 짐승보다 못한 수형생활受刑生活이 시작된다.
어느 날 간수장의 세금을 면제받게 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간수들의 비공식 재정자문財政諮問으로 일하는 한편 끈질긴 노력 끝에 주정부에서 자금을 지원 받아 최신식의 도서관을 꾸민다. 교도소 소장은 죄수들을 이리저리 부리면서 부정하게 돈을 긁어모으고 앤디는 이 돈을 세탁하여 불려주면서 관리해준다.
어느 날 교도소에 수감된 신참‘토미’를 위해 앤디는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레드 모간 프리먼Morgan freeman분’에게 앤디의 죄명을 들은 토미는 전에 있던 교도소에서 진범과 함께 있었다며 진범에 대해 증언한다.
앤디는 소장에게 이 얘기를 하지만 소장은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기꺼이 증언하겠다는 토미를 무참히 사살한다. 소장은 부정한 돈을 관리하는 능력을 지닌 데다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앤디를 석방시킬 수 없다.
독방獨房에서 토미의 죽음을 전해들은 앤디는 친구 레드에게 암시暗示를 남긴 채 20여 년 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탈옥을 감행한다.
앤디는 소장의 돈을 관리하면서 만든 가명계좌에서 부정축재한 모든 돈을 찾고, 교도소의 비리를 낱낱이 폭로한 서류를 신문사에 보낸다. 살인 간수의 구속, 소장의 자살, 그는 이제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자유를 만끽하며 태평양으로 향한다.
40년의 복역을 마치고 가석방된 레드는 사회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못 이겨 죽음을 택하려하나 앤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둘만의 약속장소를 찾아본다. 그곳에서 발견한 앤디가 쓴 ‘희망의 메시지.’
레드는 태평양으로 향하고, 드디어 앤디와 극적으로 재회한다.
인간의 판단력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교만하다.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쇼생크에 수감된 앤디가 자신의 부인과 부인의 정부를 살해했다고 확신하기까지의 정황情況이 그렇다. 미국 법원은 배심원제다. 그 많은 배심원들도 앤디가 유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감독은 관객들조차 앤디가 진범이라고 생각할 만큼 지능적으로 이 영화를 끌고 간다.
교도소에서 사귄 앤디의 친구 레드의 가석방假釋放 여부를 심사하는 심사관들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라도 빨리 석방되기를 바라는 레드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석방을 포기한 레드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자 가석방을 승인한다.
“교화敎化? 그건 정치가들이 만든 말이죠. 진짜 알고 싶은 게 뭐요? 내가 지은 죄를 뉘우쳤냐고?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소. 옛날의 나를 돌아보지요. 젊은 바보 녀석이 끔찍한 죄를 저지른 거야. 그놈과 말하고 싶소.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지. 그 젊은 녀석은 오래전에 없어지고 이 늙은이만 남았거든.”
표현이야 어떻든 레드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죄를 뉘우쳤음에도 심사관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은 그 어떤 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앤디가 세금을 탕감하도록 서류처리를 해준 대가로 간수장이 제공한 맥주를 동료들과 마실 때 레드의 생각이 이렇다.
“아침 10시에 나란히 앉았고 쇼생크 사상 최고로 고약했던 간수가 제공한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 우린 마치 자유인처럼 앉아서 햇볕을 받으며 마셨다.”
이때 비로소 이들에게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자유인으로서의 우정이……. 그 우정이 교도소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살린 것이다.
앤디는 각계로부터 도서실에 기증된 자료 중에 피가로의 결혼 음반을 전 교도소 스피카에 연결한다. 운동장에, 병사病舍에, 작업장에 골고루 퍼지는 아름다운 노래에 모든 죄수들이 넋을 잃어버릴 만큼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음반사건으로 앤디는 2주간 독방신세를 지게 되지만 죄수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인간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은 이탈리아 여자가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채 있는 게 낳을 때도 있는 거다. 난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공간에서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새장에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쇼생크의 벽을 느낄 수 없었다는 걸까. 그건 자유인 앤디의 사랑이었고 그의 사랑이 모두에게 감염感染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익을 얻고자 남을 희생시키는 근성이 있다.
장난으로 연못에 던지는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기준자체가 자기중심自己中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앤디가 쇼생크에 수감되던 날, 죄수들은 신참들 중 누가 먼저 우는지 담배내기를 한다. 뚱보에게 걸었던 죄수가 옆방에서 자극刺戟한다. 결국 자극에 넘어간 뚱보가 아우성을 치자 간수장의 무차별 구타로 병사에서 사망한다. 담배 두개피를 얻기 위해 동료죄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소장의 이기심은 죄수들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악마수준이다.
절도죄로 쇼생크로 들어온 신참 토미는 예전 교도소에서 래디의 부인과 그의 정부를 죽인 진범을 만났다고 알려준다.
래디는 당장 소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바로잡아주기를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그런 래디를 2개월이나 독방에 가두는가 하면 기꺼이 법정증언을 하겠다는 토미 마저 탈옥수로 꾸며 사살해버린 소장이다. 자신의 불법자금을 관리해주던 앤디를 놓치기 싫고 부정부패가 탄로 날까 두려웠을까.
길들여지는 자와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있다.
교도소에도 나름대로의 질서는 있다. 그 질서에 길들여지느냐 정신적으로나마 자유인으로 남아 있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앤디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선배죄수 일당에게 끊임없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배죄수들의 강간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제 내 바지 지퍼를 내릴 거야. 내 것을 빨고 다음엔 루터 걸 빨아.”
“넣기만 해. 잘라버릴 거야.”
“상황을 모르는군. 그랬다간 이 꼬챙이를 네 귀에 쑤셔 넣을걸.”
“갑작스런 뇌 충격이 오면 반사적으로 더 세게 문다는 걸 모르는군.”
선배죄수는 한 달 간이나 병사에 입원할 만큼 폭행을 가하지만 끝내 앤디를 강간하지 못한다. 그토록 끈임 없는 폭행을 당하면서도 추악한 강간에 저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유인으로써의 정신을 상실하지 않은 앤디의 인간적인 자존심이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는 중심이 있는 사람이다. 중심이 서있는 사람은 어떤 여건에서도 자신의 실체를 안다. 간수들의 세금보고를 대행하며 친해졌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앤디다.
“간수들과 친해졌더군.”
“난 재정자문을 해주는 죄수일 뿐이죠. 귀여운 강아지에 불과한…….”
그러나 종신형을 받은 대부분의 죄수들은 오랜 수형생활로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다.
쇼생크에서만 50년을 살아온 브룩스가 그렇다. 가석방이 결정되자 동료죄수를 죽이려 한다. 다시 죄를 짓고 쇼생크에 남아있으려는 고육책이다.
“브룩스는 50년을 여기서만 살았던 사람이야. 그는 바깥세상을 몰라. 이 안에서는 중요한 사람이고 배운 사람이지만 밖에서는 아무 것도 아냐. 이 철책은 처음에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길들여지는 거야.”
레드가 했던 말이다. 레드 역시 쇼생크에 길들여진 사람이었지만.
석방된 브룩스는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그의 유언장과 다름없는 편지를 받은 쇼생크 동료죄수들의 마음이 무겁다. 스스로 자신만큼은 절대로 쇼생크에 길들여지지 않겠노라 자위하면서.
“이런 곳일수록 음악이 필요하죠. 마음속의 그 어떤 건 아무도 빼앗지 못하고 손댈 수 없어요. 자신만의 것이라고요. 희망이요.”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어. 이 안에선 아무 쓸모없어.”
앤디가 음악을 틀어주고 그 죄로 2주일 만에 독방에서 나왔을 때 레드와 나눈 이야기다. 20년 복역으로도 길들여지지 않은 앤디와 40년 수형생활로 길들여진 레드. 과연 앤디도 40년이면 길들여질 것인가. 그런 앤디 역시 일부는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웃기는 건, 난 사회에 있을 때 오히려 정직했다는 거예요. 이곳에서 사기꾼이 됐죠. 덕분에 도서관도 가지고 고교과정 공부도 시킬 수 있었죠.”
허상의 인물이지만 출생증명서와 사회보장번호까지 있는 신분을 만들어 그의 이름으로 등록한 가명계좌假名計座를 이용하여 소장의 불법자금을 돈세탁해주는 일을 하는 앤디가 레드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앤디의 영혼만큼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지나친 욕심은 파멸을 부른다.
죽은 동생에게 3만5천불의 상속을 받은 간수장은 무상증여세로 몽땅 국가에 바치게 되었다며 불평한다. 때마침 레드들과 함께 옥상 칠하기 작업을 하던 엔디는 간수장이 세금을 내지 않도록 서류처리를 해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연말정산 때에는 교도소 간수들의 세무보고를 대행하게 되고 급기야 다른 교도소 간수들의 세금보고까지 해주게 된다.
소장은 부정축재해서 모은 돈의 관리를 맡기기 전에 앤디를 시험하기위해 불시에 감방을 수색한다. 앤디가 탈출용 땅굴을 파는데 쓰는 연장을 숨긴 성서를 들고 소장이 뭇는다.
“좋아하는 성구가 있나?”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마가복음 13장 35절. 나도 그 구절을 좋아해. 하지만 나는 이 구절을 더 좋아하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장 12절.”
소장은 집무실 벽에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라는 글을 걸어 놀 만큼 외견상外見上으로는 신앙심이 깊다.
그러나 그의 사악한 욕심은 끝이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앤디의 무죄를 알면서도 종신형죄수로 얽어매고 무죄를 증언해줄 토미까지 죽이는 신앙이란 도대체 어떤 신앙인 것일까.
결국 앤디는 쇼생크에서 탈옥한다. 탈옥하면서 소장의 부정축재자금을 예치한 은행을 돌며 모조리 되찾고 소장의 비리와 토미를 죽인 사실을 증거를 첨부하여 신문사로 보낸다.
당연한 결말이겠지만 토미를 사살한 간수장은 체포되고 소장은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장 집무실 벽에 걸려있었던 심판의 날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소장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파멸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흑인배우 모간 프리먼Morgan freeman을 좋아한다. 그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출연하는 영화라면 모조리 볼 만큼 어마어마하게 좋아 한다. 그의 연기를 보노라면 표정만으로도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쇼생크 탈출에서도 소름끼칠 만큼 감동적인 장면을 창조했다.
간수장이 준 맥주를 마실 때 그의 표정, 그의 흐뭇해하는 감정표현은 그야말로 말로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심금을 울려준다.
출옥하고 가석방자 수용소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사회에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 앤디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숨겨놓은 돈과 편지를 읽기 전에 혹시나 하며 주위를 살피는 그의 눈망울은 분명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건 결코 가식이 아니었다.
그의 연기는 훌륭하다 못해 아름답다.
쇼생크 탈출을 보며 내내 감동스러웠던 건 어쩌면 모간 프리먼의 연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