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은 C급이고, 수저(가정 형편)는 B급이야.”
이게 무슨 말일까.
지난달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데, 동급생 서른 명이 서로의 외모·성적·집안 사정·끼를 두고 '서열 매기기' 놀이를 한 것이었다고 한다.
담임 이모(40)씨는 이렇게 말하다.
“친구들끼리 서로 비하하는 말을 하거나 '등급 매기기 놀이'를 하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지도하지만 그때뿐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하위권'으로 분류된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
낮은 순위를 받았다는 학생의 얘기는 이렇다.
“나에게 낮은 순위을 매긴 친구에게 화를 내면 오히려 '팩폭을 당해 발끈했느냐'며 놀림 당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팩폭'이란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와 폭력을 결합한 단어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뼈아프게 지적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이런 망할 놈의 놀이가 최근 각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졌기 대문이라는데, 학생들이 친구들의 외모·성적·끼·집안 사정의 순위를 매겨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아이돌 학교' 등은 유행에 민감한 10대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데, 이 프로그램들은 출연자의 외모부터 인성·실력·기획사 영향력까지 평가하며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시청자 문자 투표로 탈락자와 승리자를 가르기도 하는 이런 식의 '서열 정하기'가 놀이 형태로 교실에도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친구들의 외모를 품평한다는 건 가장 저급한 행동이다. 사회가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어렸을 대부터 어느 정도의 서열화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외모와 소위 끗발 따위에 의해 서열을 정하는 프로그램이 TV에 인기리에 방영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한지 증명한다 하겠다.
그렇다면 어재서 우리 사회에 이처럼 저질스런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또 그 저질스런 내용을 학생들이 따라하는가. 따라한다는 것은 프로그램 내용에 공감한다는 의미인데 왜 우리 학생들이 저질스런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
나는 우리 국민이 이처럼 저질화 되어가는 것은 책을 멀리하고 영상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보도를 보면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서열화놀이를 하지 못하도록 말리는가 하면 그런 류의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대에 TV시청을 막는 등, 그런 놀이의 심각한 문제점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지만 과연 일반화되어버린 놀이가 일부 학부모의 가정교육만으로 잦아들게 될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문제는 영상문화에 휩쓸려 생각을 하지 않고 감성으로 행동해버리는 풍토를 개선하려면 어찌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자라던 5∼ 60년대는 지금처럼 아이들이 방구석에 처박힐 컴퓨터 게임 등의 놀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T·V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라디오가 모두였는데, 라디오를 청취할 만한 시간대에 공부해야했으므로 결국 책을 잃는 것으로 놀이를 대신한 셈이다.
초등학교까지는 그런대로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이웃동네 아이들과 막대기를 칼 삼아 전쟁놀이도 하였고 자치기, 말 타기 등등, 끊임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노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었지만 다소 점잖아지는 중학교 때부터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한국, 세계문학전집, 기초적인 실존주의 철학 책들 정도는 모조리 독파하게 된다. 그런 과정이 남을 배려하는,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해보는 습성을 만들어주었기에 선동에 의연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사람은 사고력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 작가가 제시하고자 했던 주제의식보다 훨씬 높은 이해력을 독자가 보일 수도 잇다는 것이다. 즉,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교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영상예술은 그렇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는 연출자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감상하는데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한 편을 감상한후에 다시 돌이켜 점검할 수는 있지만 읽는 순간 의문이 남과 동시에 깊이 생각하고 나름대로 납득하고 다음 소절로 들어가는 독서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독서세대가 선동이나 공작에 잘 넘어가지 않는 반면, 영상세대는 연출자의 안내에 따르는데 익숙해져서 별 의심 없이 휩쓸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 나이든 세대인 반면, 초불을 든 사람들이 젊은 세대였다는 것이 이를 중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젊은 세대 중에서도 독서를 많이 한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들었을 터이고 나이 먹은 세대 중에서도 촛불을 들었던 자들은 그 반대현상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분명한 건 우리 학창시절에는 외모나 집안형편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경우가 없었다.
글쎄, 우리 시절에도 서열이라는 건 있었는데, 그건 학교에서 정해주는 성적의 서열이었을 뿐, 가난하다고 해서 부잣집 아이들이 우습게보거나 외모가 잘생겼다고 해서 못생긴 친구를 갈보거나 하는 짓은 꿈속에서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워낙 가난한 집안의 자식인데다가 외모조차 못생겼던 내가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친구대접을 받지 못한 기억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독서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전국적인 감상문대회를 열어 우수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들에게 시상과 더불어 대학입시 점수에 반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라도 독서풍토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TV나 컴퓨터게임 이상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기풍을 만들어 주기만 했어도 미국에 조공을 들고 나가고서도 경제압력이나 받는 덜 덜어진 자에게 표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촛불을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