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을 다녀온 소회[所懷]
존경하옵는 조 상현 선생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저도 일전에 우리 “논객넷” 모임에 참석을 했다가 내려오는 날, 조 선생님과 만나서 저녁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해 올리려고 생각했었지만, 일정이 워낙 빠듯하여 사실 서울 강남에 있는 자식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애들이 모르게 살 작 다녀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우리 모임에는 저는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원래 회원 중에도 대표 격인 논설위원들의 전체 모임이었는데, 절반도 모이지 못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 회장님은 제주도에서 바쁘신 대도 비행기 타고 오르내리는 고행길이고, 더군다나 일박 이틀의 일정이 잡혀서 사무국장님과 같이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각자 자기의 생업을 미루고서, 일 년에 단 한 번식 모이는 어려운 만남의 시간인대도 전체의 회원들 대부분이 생업에 매진해야 하는 생활환경 때문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고, 더욱이 한 분은 행사전날 식중독으로 고생을 해서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고,
어떤 분은 직장 때문에 잠시 시간을 내어서 당일 날, 모임장소에 잠시 얼굴만 보이고 가신 분들도 두 어분 계셨고, 또 한분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셔서 연락이 되지 않아 행사장에 도착하지 못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동에서 출발 할 적에 안동의 특산품인 45 도의 안동 소주를 한 병 배낭에 넣어갔고, 혹시 술을 못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포도주는 자실 것 같아서, 포도주도 두병 챙겨서 허리는 노 무현이가 고장을 내어서 구부러진 허리에 삼 겹의 보호대를 허리에 두르고서
배낭에 잡쓰레기를 넣은 것을 20 키로가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배낭의 무게가 적으면 저의 허리가 35 도로 굽어지기 때문에 무거운 중량의 배낭을 짊어지고 완전군장을 한 채로 안동 버스 역에 가기 위해 집에서 택시를 타고 안동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이미 저가 타고 가야할 시간대의 버스는 예약이 완료된 상태였고, 임시버스로 그것도 제일 마지막 끝 자석인 맨 뒷자리에 간신히 승차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통 멀리 원행을 할 적에는 사전에 물 한모금도 입에 되지 못합니다.
물이나 음식을 먹었다면,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원행 길에는 가급적 음식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날도 아침 여섯시에 안동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첫차와 두 번째 버스까지 놓치고, 7 시 51 분차로 서울 경부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바로 10 시 40 분이었습니다. 약속시간은 12 시 정각 구파발 2 번 출입구에서 맞은 편 00 커피숍 이었습니다. 저가 강남 터미널 경부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막상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하니 저의 왼쪽다리가 역시 노무현의 잔당들에게 당한 사고 후유증으로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고, 보철을 뼈처럼 만들어서 의족처럼 넣어둔 다리가 자칫해서 삐끗 하는 날에는 십년 전처럼, 또다시 휠체어나 목발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에 계단이 많은 굴곡진 경사도에는 저가 가급적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남 터미널에 내리면서, 터미널 입구에 있는 가판대에 가서 가판대 주인을 보고서 여기서 구파발까지 택시를 타면 어느 정도의 요금이 나오는지? 저가 공손하게 물어 보았더니, 특정지역의 말투를 쓰는 가판대 주인이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한다는 말인즉,
나 한태 그것을 왜 물어 보느냐? 그것을 택시기사한태 물어 보면 될 것이 아닌가, 하면서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에 저는 지극히 당황했습니다. 나는 구파발 가는 택시를 처음 이용하는 것이고, 시간이 대충 얼마가 걸릴 것이고 약속시간대에 도착이 될 것인지를 물어 보는 것임에도 가판대 주인은 나를 보고서 오히려 대답 대신 나에게 역정을 내는 것에 나는 정말 기가 질렸습니다. 역시 서울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가판대 주인은 나에게 이런 대답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저도 이곳을 떠나 본적이 없고, 구파발 까지 택시를 이용하지 못해서 정확한 것은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의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해드리지 못해서... 하면, 저도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참으로 그날 모처럼 일 년에 한두 번 서울에 나들이를 하는 저에게는 그날따라 왠지 서글퍼지더군요. 비록 우산이지만, 지팡이에 의지하고 허름한 옷에 장애인 노숙자처럼, 그분에게 보였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 번 인생의 무상함과 서울인심의 야박함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아무리 각박한 도시 인심이라고 해도, 역시 서울은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눈알까지 파내어 간다더니 다시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의 모임이 끝이 나고 집에 오는 길에, 우리 “논 객 넷” 논설위원이신 노변담화님과 아침 이슬님, 정문선생님, 비바람 회장님과 같이 그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저는 20 년 만에 전철을 타보게 된 것이고, 처음 강남 터미널에서 구파발까지 갈 적에는 택시비가 27,000 이 들었지만, 내려오는 강남 고속터미널까지의 전철에서는
교통비가 단 일원도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5 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승차요금이 전혀 없더군요. 이제는 좀 힘이 들더라도 정확한 목적지의 노선만 알고, 전철을 이용한다면 서울을 가도 왕복 버스비만 지불하면, 서울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기회를 이번에 포착한 것이 이번 논객넷 모임의 크나큰 소득이라고 보여 집니다. 물론 우리 모임의 행사에 대한 각론[各論]은 여기서는 접어 두겠습니다. 다시 한 번 조 선생님께 죄송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일기 불순한 이때, 건강 각별히 유념하시길 빕니다. 충성!
존경하는 이 동환 선생님, 박 종만 선생님, 이정숙 선생님, 세분께서 저의 글에 오랜만에 찾아 주셨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세분의 말씀에 단 한마디만 요약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박 근혜는 정치가로서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통치가로서는 실패한 정치인입니다. 저도 한때는 노무현 졸개들에게 목숨 걸고 박 근혜를 지지하고, 그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진 꼴 박이였지만, 이제 보니, 박 근혜는 정치에는 무뇌아였고 아랫도리 구멍 숭숭 뚫린, 고 영태와 최 순실의 실험 도구였을 뿐입니다. 자세한 것은 저가 올린 글을 모두 참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꼴박[滑朴] 종박[從朴] 광박[狂朴]소린 듣지 말아야 하겠지요. 세분의 방문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충성!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