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兩面性이 있다.
그것의 혼란을 二重性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에 오해를 하기도 한다.
양면성은 陽地에 있고 이중성은 陰地에 숨어 있다.
옛날 어른들은 엄했지만 속에는 눈물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를 아끼지 않는 것은
사랑의 발로(發露)이고 그것은 부모의 양면성이다.
그러나 가출(家出)한 자식을 겉으로는 슬퍼하면서
속으로 기뻐하는 것은 이중성이다.
< 문재인의 이중성 >
문재인에게 느끼는 것은 어느 것일까?
나는 그에게 양면성은 없고 이중성만 느낀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서
광주5.18과 노무현 추도식에서 행한
그가 보여준 면모에서 이중성을 짙게 느낀다.
광주5.18은 아직 역사적 심판이 남아 있다.
그들은 그것을 민주화운동이라지만
드러난 증거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산을 이루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은 절대로 義롭지 못하다.
밝혀진 명백한 증거는 뇌물사건이다.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택한 죽음이 本質이다.
당시에 문재인은
한겨레신문과의 對談에서 그렇게 증언했다.
문재인은 대통령의 자격으로
광주5.18에 가서 축사를 했고
그 정신을 헌법前文에 넣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봉하마을을 찾아
그를 지키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무엇으로 그를 지켜야 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뇌물 먹고 자살하면
지켜야 할 도덕성이 생겨나는 것인가?
성완종은 뇌물을 주고 자살을 했다.
그의 도덕성은 노무현과 어떻게 다른가를 묻고 싶다.
< 문재인의 이적성 >
문재인은 머리는 明哲하지만 가슴은 덥지가 않다.
내가 느끼는 것이 그렇다.
가는 테의 안경 넘어로 보이는 그의 눈은
이성적이기는 하지만
따듯함을 느끼기엔 너무나 거리가 말다.
그의 말투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말(馬)걸음 같다.
그의 주걱턱도 마음을 주기에는 편치가 않다.
그런 이미지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확 변신을 시도한다.
영부인도 그와 합세하여
온갖 제스쳐로 언론을 도배한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나댄다는 별로 좋지 않은 표현을 쓴다.
아마도 그 언론사들은 어떤 손해가 닥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생각이고 문재인의 이미지를 봐서
그렇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두환이 싫다고 한다.
그는 독재자의 典型이라고 해서 그렇게 느낀단다.
그러나 나는 그와 정반대이다.
나는 그에게서 진한 인간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도자라는 인간미의 속살은
그 기준이 個人을 넘어 國家에 있다.
그는 개인적인 비난을 감수하며 나라를 지켜냈다.
그가 아니었으면
박정희의 偉業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며
광주사태에서 비롯된 혼란을
그가 政局을 틀어 쥠으로
국가 변란(變亂)의 사태를 막아냈다.
그래서 나는 그의 功績을 致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지도자라는 인간미를 짙게 느낀다.
내가 박정희를 칭송하는 것도
다름 아닌 인간미의 기준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 저 웃음이 언제까지 지속돨까? >
다시 문재인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發言을
시시때때로 바꾸는데 이력이 나있다.
불리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린다.
그는 혁명이나 소멸(燒滅) 같은 무서운 말로
상대에게는 추상(秋霜) 같으나
자신의 편에는 한 없이 부드럽다.
그래서 親盧와 親文세력이
활개를 치며 국정을 농단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서
인간미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부르지 못하는
나와 處地가 같다.
이것은 내 개인의 불행이자
나라의 손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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