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스라엘Israel과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전쟁이 있었다.
2차 대전 직후 UN의 결의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이 지역에 전운戰雲이 가신 적이 없었다.
1948년 5월 14일 유대 국가건국위원회 의장 ‘벤 구리온’이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아랍연맹에서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킨 이래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킨 것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영광의 탈출’은 레온 유리스Leon Uris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스파르타카스’의 달톤 트란보Dalton trumso가 각색하고 오토 프레밍거Otto preminger가 감독한 이스라엘 건국 당시를 그린 영화다.
유대인들의 수천 년에 걸친 비원이 러닝타임 212분에 걸쳐 담겨있을 만큼 깊이 있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영화가 미국국민들이 친이스라엘로 돌아서는데 크게 기여했고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랍 국가들이 주연을 맡았던 배우 폴 뉴만Paul newman을 입국금지 시켰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단한 작품이다.
주제곡 "더 엑서더스 송The Exodus Song"도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했으며 14주 동안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1947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혼란스러운 국제정세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박해迫害를 받던 유태인에게 건국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영국은 이스라엘 건국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아랍 국가들의 정책을 무마하느라 키프로스Cyprus 섬에 수용소를 설치하고 팔레스타인을 향해 몰려드는 유태인 난민들의 발을 묶어 놓는다.
어느 날 키프로스 섬의 유대인수용소에 유대인 지하조직 ‘하가나’의 간부 ‘알리폴 뉴먼Paul newman 분’가 잠입潛入한다.
알리는 영국군 유태인 이송移送증명서를 위조하여 백주에 600여명의 동포를 탈출시켜 미리 준비한 여객선 '엑서더스Exodus호'에 승선시킨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영국군은 황급히 엑서더스 호에 정선명령을 내리지만 모든 유태인들은 알리의 지휘아래 전원 단식 투쟁을 시작한다. 마침내 영국군은 들끓는 세계 여론에 정선명령을 취소한다.
인간은 어떤 과정을 통해 과격해 지는가?
영국은 아랍의 반대에 부딪치자 정치적인 이유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유대인들을 키프로스 섬에 강제 수용한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 테러비밀결사대 ‘이루군’에 가입하려던 ‘도브’는 필사적인 탈출을 기도하지만 영국군 병사들에게 체포된다. 아우슈비츠에서 동족의 학살을 경험하며 천행으로 살아나온 도브에게는 폭력투쟁 외에 선택할 길이 따로 없는 셈이다.
수용소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만난 유대인 고아 ‘카렌 한센’을 구하느라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수송하려다 억류된 배에 승선한 미국인 ‘프리먼트 부인’의 항의에 이스라엘 비밀조직 ‘하가나’요원 ‘알리’는 이렇게 말한다.
“난 유대인을 살리려는 거예요.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심은 없나요?”
“고작 유대인 아이 목숨하나에 내가 흥분하리란 기대는 하지 마시오. 당신은 10년이나 늦었소. 200만 유대인 아이들이 동물처럼 학살당했소. 그들은 우리들을 원치 않았소. 미국도 그 어떤 나라에서도 말이요. 아무도 유대인 생존자를 원치 않소. 유대인 고기는 싸다오. 쇠고기나 생선보다 싸요. 당신의 생명에 대한 견해는 잘 들었소. 아이를 찾아서 동의하면 데려가도 좋소.”
처절한 사투를 벌여보지 못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영국의 선박억류에 엑서더스 호의 모든 유대인들은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단식투쟁이 위험하다는 ‘알리’ 말에 어느 유대인이 내뱉은 절규다.
“팔레스타인에 가든지, 아니면 여기서 죽읍시다. 유대인 죽는 건 일상사가 아닌가? 그게 뭐 새삼스러운 건가?”
고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끊임없는 노예생활과 핍박을 받아오는가 하면 급기야는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고난을 겪어온 민족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많은 아랍국들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적의 공격에 가차 없이 응징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생존본능은 그들의 역사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타협妥協아니면 패배뿐이에요.”
“절대 패배하지 않소. 영국이 우릴 놔주면 우리는 이긴 거고, 이 안에서 아사餓死해도 우리는 이긴 거요.”
“이들의 생명은 생각하지 않나요?”
“보다 많은 유대인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요.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죽을 각오뿐이오.”
영국과 유대인간의 타협을 위해 승선한 ‘프리먼트 부인’과 ‘알리’의 대화다. 배에 승선한 모든 유대인들을 병사로 보는 알리다.
어린아이들의 어머니들마저 철조망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밖에 나온 아이들을 다시 철조망 안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하선을 거부할 만큼 조국을 건설하고야 말겠다는 피맺힌 각오가 유대인 모두의 일치된 염원이다.
“팔레스타인에 가면 ‘이루군’에 가입할 거야. 영국 놈들이라면 모조리 죽이겠어. 죽이고 또 죽여서 씨를 말릴 거야.”
“무조건 다 나쁘진 않아요,”
“다 썩은 놈들이야. 영국 놈, 소련 놈, 폴란드 놈.”
“덴마크는 빼주세요.”
“놈들도 같아 토 달지 마.”
‘이루군’에 가입하려는 ‘도브’와 ‘카렌’의 대화다.
그야말로 극단으로 흐르는 것이다.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종족의 시체에서 머리와 금이빨을 채취하는가 하면 독일군들의 여자대용 노리개가 됨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던 어린 ‘도브’에게 남겨진 것은 자신들을 박해하던 타민족他民族들에 대한 적개심敵愾心뿐이다.
‘하가나’의 ‘알리’에게 ‘이루군’의 ‘하키바’가 했던 말이 이렇다.
“첫째, 정당성이란 현실성 없는 개념일 뿐이다. 둘째, 정당성과 유대인을 함께 논하는 건 논리적으로 틀려. 셋째,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주장의 정당성을 논하듯 아랍인 권리주장의 정당성도 논할 수 있는 거야. 넷째, 지난 10년 간 유대인은 충분히 불의의 피해를 당해왔다. 그래서 다섯 번째는 다음번 불의는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해야 해.”
이 또한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수세기에 걸친 핍박으로 얻어진 극단적 사고방식이다.
극단적으로 변하는 건 과격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나와 텔아비브의 병원에 입원한 ‘카렌’의 아버지가 주위여건에 일체 반응하지 않는 정신병에 걸려있다.
이는 또 다른 극단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인류의 비극인 셈이다.
지나친 종교적 믿음과 민족주의가 전쟁을 부른다.
프리먼트 부인은 키프로스에서 우연한 인연으로 민족이나 종교의 갈등과 관계없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돕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유대인들에 대해 호감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을 수용하기에는 물자나 의약품, 간호사가 부족합니다.”
“프리먼트 부인은 간호사네. 카라올로스 수용소에서 좀 도와주시겠소?”
“글쎄요, 그들을 잘 모르겠어요. 그들과 함께 있으면 소외감이 와요.”
소외감을 느낄 만큼 좋아하지 않던 그녀가 유대인들을 돕게 된 건 마음을 바꿔 카렌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미국식 사고방식과 행동이라고 생각할 만큼 명랑한 카렌을 미국으로 데려가 딸로 입양시키고 싶을 만큼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민족이나 종교에 객관적 입장에 있었기에 가능한 사랑이다.
그러나 카렌은 독일 수용소에서 사망자 명단에서 빠진 아버지가 혹시라도 팔레스타인에 살아 있을지 모르기에 포기할 수 없다.
결국 ‘프리먼트’ 부인은 팔레스타인으로 가려다가 억류된 엑서더스 호에 승선하여 간호사로 참여 한다. 카렌을 매개로 만난 알리와 유대인들의 신념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 ‘프리먼트’ 부인과는 달리 아랍인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스라엘 건국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移住가 급격히 늘어나면서부터 아랍인들에게 형성되던 반反이스라엘 기운이 ‘하키바’의 영국군 형무소 탈주사건을 계기로 집단적인 폭력사태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유대인들과 가깝게 지낸 아랍인 ‘타하’가 형무소 탈주 사건으로 부상을 당한 ‘알리’를 돕는 한편 대對유대인 테러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동족 아랍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수천 년 동안 자신들이 살던 땅에 유대인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거다.
이는 아랍인들의 또 다른 생존투쟁이다.
그만큼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결속이 단단하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건국이란 상식 밖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타하’는 ‘알리’집안과는 피로 맺어진 관계다.
‘타하’의 집안이 시리아인들에게 살해당할 때, ‘알리’의 아버지가 구함으로써 두 사람은 형제처럼 자란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알리’의 심장이 멈췄을 때 이를 치료하는 ‘프리먼트’ 부인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대사 한 마디 없이 긴장된 눈으로 그 표정의 변화를 살피며 ‘알리’의 생사를 가늠하는 ‘타하’의 표정연기는 압권이다. 종교적 갈등은 그런 인간적인 관계까지도 훼손毁損한다.
그러나 회교경전回敎經典 코란Koran에서도 모세오경五經까지는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을 만큼 유대인과 일부 아랍인들의 뿌리는 같다. 물론 하느님이라는 존재 역시 유대경전이나 코란에 나오는 하느님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수천 년 전 야훼하느님이 신앙의 전통성을 인정한 부족과 갈라선 일부 분파分派가 아랍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야훼가 우려했듯 갈라선 부족은 신앙에서도 오염됐다고 해야 할지.
“영국과 우리가 결별하는 시간은 명예롭게 이뤄지길 바랍니다. 영국군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 정부의 가혹한 정책을 연민을 가지고 수행했음을 우린 기록해야 합니다. 영국 해병대가 그들의 목숨을 무릅쓰고 유대난민을 구한 기록은 많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내의 아랍대중들에게 청원합니다. 그랜드 머프티는 여러분에게 유대인을 모조리 없애든지, 집과 나라를 떠나 망명길을 택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바라건대 여러분의 집과 상점을 지키세요. 이스라엘 자유국가에서 평등하게 같이 일합시다!”
UN에서 이스라엘 건국이 결정되던 날 국가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이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평화공존平和共存보다는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선택한다. 아랍인들과 유대인들 간의 피의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목적을 이루는 과정은 여러 가지다.
키프로스 섬에 밀항하여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빼내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킨 온건파 ‘하가나’의 조직원 ‘알리’와 그의 삼촌 ‘이루군’ 지도자 ‘하키바’가 추구하는 방법은 반대개념反對槪念이다.
UN에서 이스라엘 건국 승인여부투표承認與否投票에 정치적 영향을 미치려고 유대인들을 대규모로 이주시키려는 정치적 성향의 ‘알리’와 테러로 나라를 찾겠다는 ‘하키바’ 간에는 깊고 넓은 강이 가로막혀있다.
‘도브’ 역시 마찬가지다.
온건파 ‘하가나’를 입방아나 찢는 멍텅구리로 평가절하하고 만다. 오직 싸우는 ‘이루군’만이 이스라엘의 생존에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방법의 차이요 다른 과정의 선택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고아학교孤兒學校 ‘간달프나’는 ‘이루군’이 아닌 ‘하가나’가 세웠다. 이스라엘 건국 기반을 닦는 것이다. 테러행위로 이룰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알리’의 주장이다.
“엑서더스 건은 네게도 이루군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네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말해볼까?”
“그러시죠.”
“이르군은 영국군시설을 너무 많이 파괴했다. 손님에게 무례한 짓이지. 해서, 하가나지도부는 오랜 토의 끝에 결정을 내렸지.”
“UN이 분할에 찬성하면 아랍 전체와 맞서게 되요. 유일한 희망은 ‘이루군’과 ‘하가나’가 동맹을 맺는 길뿐이죠.”
“싸우기 위한 동맹? 그거 좋지 ‘하가나’가 싸움에 동참한다면 동맹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어.”
“우린 방어나 주요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싸우지만 ‘이루군’의 공격은 테러예요. 폭파, 살인은 UN에서의 우리 입지를 손상시켜요. 1년 전 우리는 세계의 동정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 얘기는 온통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졌어요.”
“역사상 우리만 그런 건 아니잖니? 예나 지금이나 폭력으로 탄생치 않은 나라는 없다.”
“인구人口야말로 건국할 수 있는 근거가 되죠. 인구도 없이 어떻게 UN에 정당한 결정을 하죠? 테러로 인구가 느나요?”
‘알리’와 ‘하키바’의 대화다.
의견이 갈리는 폭이 넓고 깊은 만큼 같은 유대인 비밀조직임에도 서로 경계하고 합쳐지지 않는다.
‘이루군’ 같은 성격의 유대인 비밀결사대는 로마시대에도 있었다.
핍박받는 민족에게는 오직 사랑을 외쳤던 예수와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위해 참혹한 살상을 명령했던 야훼가 공존하는 게 당연한 것일까.
핍박받은 자들은 자신들 외에는 쉽게 믿지 못한다.
알리가 유대인들을 키프로스 섬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키프로스인 ‘만드리아’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믿지 못해 동지에게 하는 말이 이렇다.
“그래도 ‘만드리아’ 같은 놈들에게 너무 놀아나진 말게. 우릴 위해 일하고 600만 유대인이 학살당한 게 가슴 아프다고 떠들지만, 결전의 순간엔 언제나 우리뿐이야. 저치도 우릴 팔아넘길 걸? 우리들 외엔 친구가 없다는 걸 명심하게.”
오랜 세월 민족적인 박해를 받아온 사람들이 지닐 수 있는 확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간달프나’를 건립하라며 땅을 기증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아랍인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에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믿을만한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간달프나’의 땅을 기증했던 가문의 아랍인 ‘타하’는 엑서더스 호에서 새로 들어온 유대인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 제즈릴 골짜기에서 우리는 친구로 살아갑니다. 화평하게 사는 게 당연합니다. 우린 말도 거의 같잖아요.”
그런 ‘타하’를 무참하게 살해한 건 유대인이 아닌 그의 동족 아랍인들이었다. UN에서 이스라엘 건국이 확정되자 동족에게 배신자로 찍혀 살해된 것이다.
갈등이 있다 해도 같은 유대인들 간의 유대는 끈끈하다. ‘이루군’ 지도자 ‘하키바’가 체포됐을 때 감옥을 폭파하며 이들을 구한 것은 서로 경계하고 경원시하던 ‘하가나’와 ‘이루군’의 연합세력이었다.
“아프세요?”
“난 이미 죽어가고 있다.”
“아직 멀었어요.”
“바로 그 낙천주의 때문에 넌 ‘하가나’가 된 거야. 방법론에선 ‘이루군’이고 네 가슴자체는 이스라엘이지. 내 대신 형의 키스를…….”
탈출과정에서 영국군의 총격에 죽어가는 ‘하키바’가 ‘알리’에게 한 말이다. 테러리즘에 빠져있는 동생을 죽은 사람 취급하던 형 ‘알리’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가족을 그리워하는 ‘하키바’의 사랑마저 죽은 건 아니었다. 핍박받는 민족일수록 가족과 민족에 대한 일체감이 강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참으로 기구하다. 아니, 야훼유일신과 함께 해온 유대인의 역사가 기구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게다.
유대인이 발원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길고 긴 유랑 끝에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 것은 약 4,000년 전. 이곳에 정착하여 고대古代 왕국을 건국한 이스라엘이 BC 722년 아시리아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하고 유대 왕국이 BC 586년 신新바빌로니아왕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멸망한 후 1948년 이스라엘을 다시 건국하기까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가 2차 대전 때에는 나치에 의해 무려 육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견뎌온 끈질긴 민족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가뭄과 토착종족의 탄압으로 이집트로 이주했던 유대인 일부 부족이 노예로 전락했을 때 모세의 인도引導로 가나안에 정착한다.
BC 11세기 사울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 필리시티아인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곳에 왕궁과 야훼의 성전을 세웠다.
그 뒤부터 다윗 왕가와 야훼의 성전,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민족적 성지가 되었다.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시대를 이루었으나 솔로몬이 죽은 뒤 왕국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정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데아 왕국으로 갈라서고 말았다.
바빌로니아에 패하여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의 정책적 배려로 귀국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재건했으나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통치 하에 들어갔고 BC 1세기에는 로마의 일개 변방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19세기에 이르러 동유럽 및 러시아에서 유대인에 대한 민족적 탄압이 시작되었다.
유대인들로써는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는 방법이 시오니즘의 정립이었다.
자신들의 조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성지聖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조국을 세워야 한다는 시오니즘은 1887년 오스트리아의 테오도르헤르첼이 스위스 바젤에서 시오니스트 대회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운동화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은 당시 중동에서의 영국군 작전기지 중 하나였던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유혹하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고, 전후戰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조국 건설을 약속하였다.
전후에도 동유럽 여러 국가에서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1930년대에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하여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시오니즘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1918년 영국의 군정 하에 있었으나, 팔레스타인으로의 유대인 이민은 격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박해받는 유대인의 생존문제였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7만 정도였던 필레스타인의 유대인 인구는 이주민의 유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약 40만으로 늘어났다. 유대인 이민의 증대는 필연적인 아랍인과의 대립을 가져왔다.
자신들의 입지상실을 우려憂慮한 아랍인들은 반 영국 · 반 유대 폭동을 일으켰고, 193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39년까지는 전국적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입장에 변화가 있었다. 유대인 쪽이 독립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반영反英 · 반아랍 투쟁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영국은 전략요충지인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위임통치를 포기, 2차 대전이 끝난 1947년 이 문제를 UN에 이관하였다.
UN 총회는 1947년 11월 아랍·유대의 연방화안聯邦化案과 아랍·유대의 개별국가 건설과 함께 예루살렘을 국제관리하國際管理下에 두도록 하는 분할안의 두 안을 상정, 후자가 2/3 이상의 다수로 채택되었다.
문제는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생각이 달랐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분할 안은 유대인 쪽은 찬성하였으나 아랍 쪽은 반대하여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아랍의 게릴라전이 격화되는 요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1차 중동전쟁은 1949년 정전停戰되었지만 그 뒤에도 양 진영의 대립이 계속되어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쟁,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 등 모두 4차례에 걸친 전쟁을 하였다. 물론 이들의 전쟁은 이것으로 중단될 성질이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를 중동으로 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생존권을 놓고 벌이는 해답 없는 쟁탈전이라고나 할까.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아랍,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수천 년 전의 고대 이스라엘 영토를 되찾겠다는 유대인들의 염원과 반대로 수천 년간 살아왔던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 판단기준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도발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그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강력해야할 그 오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어느 쪽도 선뜻 손들어주기 어려운 내 시각으로는 영화 ‘영광의 탈출’을 그저 한편의 영화로만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