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거룩할 것 같아 보이는 종교계가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썩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비판을 받는 사이비성직자들이 종파를 막론하고 많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분란이 있는 곳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시커먼 사제복을 입은 신부들과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가 하면 타종교 비하에 열 올리는 개신교 목사들, 종파宗派 내 권력을 잡으려고 깡패들을 동원하는 조계종 스님들, 이들은 종교적 신앙의 힘을 이용하여 민초들의 정신을 혼란시키는 사이비성직자들에 다름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이들은 차라리 자신들이 오랜 세월 행해온 종교인답지 못한 행적이 드러나 있음으로 우리 모두 정신만 차린다면 능히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치 활연대오豁然大悟라도 했다는 듯 민초들의 가치관을 흔드는 착각도사들의 혹세무민 행각이다.
착각도사들은 원초적으로 옳고 그름이 없다고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 자신들의 이기적利己的 행보에 대한 합리화논리다.
그들의 논리를 듣다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밤은 악惡이요, 낮은 선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식이다. 나처럼 형편없는 중생衆生조차도 한 때, 그리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사님들의 그런 깨우침에 반감을 지니고 있다.
그건 도사들에게만 반감을 지닌 것은 아니다.
선승禪僧들이라 할지라도 ‘깨우치지 못하면 정신장애자나 다름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에게는 역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진실로 도道 닦듯이 나타남의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는 중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깨우쳤다는 도사님께서는 ‘생각 안 해요.’라고 말씀하신다. 또 어떤 도사께서는 술에 취하여 처음 보는 유부녀의 사타구니에 손을 넣어 희롱하고서도 이를 말리는 내게 ‘옳고 그름이 어디 있느냐’며 가르치려 들기도 했었다.
‘생각을 안 해?’
생각 안 한다는 것부터가 생각이라는 걸 모르는 웃기는 도사님이다. 영적 세계가 생각이 없는 제로베이스zero-base의 경지라는 것만 알았지 자신이 그 경지를 깨달을 수 있었던 세상이 중생들의 세계라는 걸 모르는 도사님이다.
물리적 의미에서 생물학적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그 육신이 존속하는 세상이 중생들의 세상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걸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중생이기에 그리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의문은 있다. 자신이 영적공부를 했다면 그 공부의 바탕은 중생들이 살고 있는 나타남의 세계, 즉 생각이 삶의 기본적인 도구道具인 중생계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성희롱을 해놓고도 옳고 그름이 없다?
물론, 옳고 그름이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또한, 세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대가 언제이든, 어느 곳이든, 옳다고 정해놓은 합의점은 있게 마련이다. 깨우쳤다는 선승들, 도사들, 이들도 자신이 속한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바탕으로 참오 하였기에 깨우침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깨우치기 이전의 생각이나 깨우친 이후의 생각이나 차원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생각인 건 다름없지 않은가. 어찌하여 육신을 지니고 있는 자가 삶의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생각이 없다고 하는가.
구한말에 끊어진 우리나라 선맥禪脈을 다시 이은 분으로 알려진 경허스님께서도 초기에는 온갖 기행을 일삼았지만 정작 입적하실 때에는 ‘유학자 신분’이었다고 한다.
깨우쳤다고 착각하시는 도사님들에게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는지 묻고 싶은 말이다.
나는 이를 견성見性과 성불成佛의 차이가 아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든, 무無든, 세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세계라면 어둠 뿐, 빛이 없었을 터. 빛이 있음에 세상이 나타났고 높낮음과 넓고 좁음, 크고 작음 등 상대성이 준거점을 만들어 인식도 생성된 것이 아닐까.
성서 창세기 1장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성서를 기술한 분들도 역시 하나였던 것을 상대성으로 나눠 다름을 만듦으로써 세상이 나타난 것으로 본 것이 아니겠는가.
그 나타남의 이 세상을 중생계衆生界, 또는 현상계라고 한다면 육신을 지니고 사는 한, 중생계의 법칙, 즉 물리적 현상은 따라주는 것이 삶이 아닐까.
그 물리적 현상이라는 것이 문화적 의미에서는 도덕관념이요, 법체계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착각도사님들보다 보는 눈이 없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겠는가.
우주의 섭리를 따라주는 것. 육신의 생리를 따라주는 것.
아울러 그 시대, 장소의 도덕과 법 등, 합의된 규율을 잘 따라주면서도 그런 것에 마음으로 매이지 않는 것. 즉 상相에 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감히 선승禪僧이나 도사들이 말하는 깨우침이니 견성見性이니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우친 분들이라면 우리네 중생들의 눈에 추잡하게 보이는 짓 정도는 삼갈 만한 능력은 지녔을 것이 아닌가. 대체 ‘깨우치지 못하면 정신장애자나 다름없다.’ 고 우열優劣을 가리는 세계가 깨우친 세계라는 건지, 영적인 세계 역시 인간들의 중생계와 마찬가지로 그처럼 계급주의 사회라는 건지 얼떨떨할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옳고 그름이 없기로 중생들의 눈에 추잡하다 느끼는 행위를 하면서 어찌 중생을 계도啓導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깨우쳐 아는 건 아니지만 밤이 있기에 빛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악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선을 알아차리는 것.
결국 선과 악은 다르지 않다는 원초적인 인식 정도는 나 같은 한심한 중생들도 모르지 않지만, 어차피 먹고 숨 쉬어야 살고 중력重力에서 벗어날 수 없을 바에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순리에 따라 사는 것.
성서나 불경도 사는 방법을 설파했을 뿐, 죽은 다음에 어찌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다.
설혹 어마어마하게 도를 통해서 음식물을 먹지 않고도 사는 도사님이 있다손 치더라도 음식물 이외의 그 무엇인가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육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원리적으로 보아 먹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중생인 나로서는 당연히 도사님들의 경지를 엿 볼 수조차 없다.
그래서 그분들의 기행이 여전히 혹세무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중생의 눈으로 본 도사님들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중생들과 상대할 때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좋다는 식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지 말고 헷갈리지 않게 중생들의 법에 따라 달라는 거다.
“도대체 깨우치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이렇게 질문했더니 미소로 대답해 주시던 어느 선승禪僧의 말씀이 기억난다.
“같아요. 다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어질 뿐.”
깨우친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중생들을 경멸하는 일이 그들이 하는 일인가? 아니면 중생들을 계도하는 일인가.
후자라면 나 같은 중생들을 계도할 때에는 중생들의 법을 지키면서 해라. 중생들의 법이란 물리적 우주의 섭리를 말함이다.
문제는 요즈음 사사건건 정치적인 운동에 참여하여 종북빨갱이들의 편에서 활동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같은 자들이 있어서 천주교가 결국 이 같은 사이비사제들까지 포용할 만큼 타락했구나 싶어서 안타까워지는 오늘이다.
깨우치지 못한 중생인 내 시각으로는 그런 말종사제들을 수용하는 천주교는 하느님이 아닌 적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조직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우루과이에 있는 어느 작은 성당 벽에 적혀있는 글이라는데 나만의 공간 서재書齋, 가장 눈에 잘 띄는 책상 앞 벽에 걸어두어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해 두었다. 목사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늘 반성하며 눈에 익혀야할 주옥같은 글이기에 그리 하는 것이다.
이건 나만 알고 있는 숨겨진 글이 아니다. 이미 인터넷에도 소개된 적이 있으니 이 글을 아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나의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이처럼 내가 빠져들기 쉬운 이기적 심성의 함정陷穽을 명료明瞭하게 일깨워주는 글도 흔치 않다.
사람은 자신이 가본 곳까지만 이해하는 것일까. 늘 깨어있자고 다짐하면서도 언제나 미망迷妄에 빠져있는 나를 일깨워 주는 글이다. 아울러 이명박이 집권하자마자 정당을 만들겠다며 설치던 정신 나간 목사들과 검은 사제복을 입고 빨갱이들 편이나 들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등, 이런 자들에게 이 글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긴, 읽으면 무얼 하겠는가.
이미 권력의 욕심에 노에가 되어 하느님 말씀조차 자기 식으로 해석하기 바쁜 자들인데 이 글이 글자 이상의 의미로 닥아 오기나 하겠는가.
탄핵을 당해야할만한 죄가 없는 대통령을 대통령 측 배신자들과 더불어 음모를 꾸며 탄핵하고 빨갱이들에게 점령당한 헌재의 불법판결로 파면까지 시키고는 그 기회에 정권을 찬탈한 문재인 같은 자들이 국민의 열광어린 지지를 받는 세상인데, 정신적인 철학이 무슨 소용이랴 싶기는 하다.
과연 빨갱이들이 설치는 이 나라의 혼란에 종교는 무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