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우파가 되었나?
<나라사랑푸르게>
사실 나는 초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김대중의 신봉자였다.
역사 교과서에선 그가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분단이후 최초로 구체적인 통일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배웠고 들었으니까 그랬다.
그가 평양에서 김정일과 손잡고 웃는 모습은
항상 교과서에 칼라사진으로 인쇄되어 있었고
경의선 철도, 금강산 개발, 개성공단이니 뭐니 하면서
김대중의 업적이라고 칭송하며 배웠다.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나는 중학생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받기도 힘든 노벨상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받아? 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고 우리나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김대중인 줄만 알았다.
심지어 김대중이 죽었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세종대왕 같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 돌아가셨다고 말이다.
김대중이 대통령 하던 시절에 연평해전이 났다는 뉴스를 봤다.
하지만 나는 북한이란 존재가
이제 조금 있으면 통일이 될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북한이 우리를 적대한다는 사실,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 때로만 한정되는 줄 알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연평해전이 났을 때에
나는 집에서 한국팀을 2002 월드컵을 보면서 응원하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배웠던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작된,
죽 국정교과서로 전부 저렇게 배웠다.
이승만은 단순히 3.15 부정선거를 한 독재자로 배웠고,
박정희는 군사독재자이며 그의 임기에
우리가 폭발적으로 경제성장을 한 건 한강의 기적이라고 배웠으나
박정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배우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때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뀌었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명박 정부에서 북한과의 사건이 참 많이 터졌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1차 핵실험이 났던 것은 그 당시 나는 몰랐다.
그러나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실험을 시작한 건
노무현이 퇴임하고 난 이후 였으므로
자세하게 알았던 건 이명박 정부 때였던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 초기 때도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같은 것이 잘 진행되고 있었고
북한에 대한 인식은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갖고 있던 것이랑 같았다.
그렇지만 금강산에 여행 갔던 우리나라의 여자 관광객이
북한 군인한테 총을 맞아서 죽고
우리 해군의 천안함이 북한한테 피격당하고
우리 영토인 연평도에 북한이 직접 대포를 쏴서
북한이 말하는 불바다가 내 조국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환상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말하던 평화라는 것이 이렇게 보상받는구나?
나 자신도 평화가 올 것이다라고 되뇌이던
내 이성이 순식간에 부숴져서 혼돈스러웠다.
또한 2009년에 노무현이 불미스러운 일(측근, 가족들의 뇌물사건)으로
검찰에서 조사받다 자살한 사건이 터졌다.
나는 그 당시 고등학생 이어서
노무현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세히는 몰랐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정확히 알았지만.
그렇지만 나는 결국 그는
그의 잘못을 자살로서 회피한 것으로 인식했다.
허나 세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실제 노무현은 이명박에 의해 타살당했다?,
사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다? 라는 말이 돌았던 것이다.
노무현이 자살하고 나서 국민장이라는 이름으로
검은색 리무진의 장례차로 시신이 운구되는 것을 보고
아니 왜 저런 인물을 국민장을 치뤄주지? 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의 비리를 조사하던 검찰과 현 대통령이 욕을 먹고
진짜로 잘못했는지 안했는지는 조사받다가 밝혀지기도 전에
죽은 사람이 칭송하던 인간들이 정말 이상했다.
그 후 노무현의 고향 봉하마을은 영웅이 태어나고
자살한 신성한 곳처럼 여겨지는 것에 참 인지부조화를 느꼈고
그가 뛰어내린 부엉이바위는 하나의 관광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그 현상이 심해졌다.
그렇게 고교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가고 육군으로 입대했다.
그러던 도중 해군 2함대를 안보견학차원에서 방문했다.
거기서 연평해전 때 교전을 벌였던
총탄의 구멍이 뻥뻥 뚫린 녹슨 참수리 함정을 봤고
어뢰에 의해 두동강이 난 상태의 천안함을 봤다.
거기서 다시 한 번 나는 북한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절대로 북한은 대화를 할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김대중, 노무현이 떠들던 평화가
이런 것으로 보답받는다고 다시 생각했다.
그 2함대를 방문했던 날,
대전 현충원에서 당시 천안함 사건 때
수몰당한 군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활동을 펼치다 순직한 해군 UDT출신 고 한주호 준위의
무덤앞에서 참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나라의 영웅은 바로 이 분이라고 느꼈고
정말 존경을 담아서 참배했다.
제대 후에 나는 완벽한 반북주의자가 됐다.
햇볕정책같은 일명 '친북'이란 것에
신물이 날 정도로 단련이 된 전사가 됐다.
대학에 복학하고 나서 세월호 사고가 터졌는데
나는 정말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저런 젊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 그런 사고를 당했으니
누가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 슬픈 것도 한 일 년이 지나니까 꺼져버렸다.
세월호 관련자들이 광화문에서 벌이는 반정부시위가
연례행사처럼 열리고 그들의 노란색 천막은
서울의 중심마당의 상징이 되어 버렸고
정치인들이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노란 리본은
태극기보다 더 봤을 것이다.
세월호 특례법이란 말도 안되는 법이 통과되고
세월호에서 살아 남은 학생들에게 대학 입시에서
그들만의 특별전형을 만들어 혜택을 준다는 것에 분노했다.
과연 세월호 사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슬퍼하던 그 해상참사는 반정부시위의 대명사가 되었고
난 더 이상 세월호에 대해 슬픔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이들의 진상은 밝혀질 것이라 여긴다.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도 야당의 떼법과
온갖 사회적 압박들을 못 이겨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도 박근혜에게 한 표를 줬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 이었고,
김대중, 노무현의 후예들이 너무 싫었다.
그녀라면 우리 사회를 균형 있게 맞춰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부 아래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자니
박근혜의 정책은 제대로 진행 되는 게 없고
오로지 야당을 업은 일방적인 특정집단이 정국을 주도했다.
앞서 말한 세월호가 정치적인 사건으로 변질되는 것도 그렇고
테러방지법 때도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점령해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되지 않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수많은 경제활성화 정책은 귀족노조로 불리는
민주노총 등의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데모와
야당의 동조 등으로 어느 것도 제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법 하나 손 보려고 했을 때
얼마나 광화문 등지에서 공무원 노조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했는가?
실질적으로 연금법의 개정은 했지만
사회적인 비용과 에너지 등이 비슷한 사례들로 매우 많이 소모되니
나는 우리사회가 무엇이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유야무야 시간이 흘러가다 내가 처음 찍은 대통령이
국회에 의해서 탄핵됐다는 것을 경험했다.
처음에 손석희의 보도가 나왔을 때
대통령 본인이 아닌 내가 무력감을 느꼈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이었던 최서원이란 여자한테
놀아났다고 인식될 정도였으니까.
손석희의 보도는 사실확인의 단계도 거치지 않고
폭포수처럼 밀려나왔고 온갖 언론들이
다 손석희의 논조에 동화되어 하나의 큰 집단을 이뤘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최태민이라는 자하고 성관계를 맺었다느니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지 웬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왕이랑 궁녀랑 눈이 맞아 불륜을 저질렀다는 정도의 뉴스가
온 사회를 도배하니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불장난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번지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온갖 언론의 선동질은 하나하나 검증에 의해서 진실을 찾아갔고
손석희의 보도조차도 허점 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위의 참여가 이뤄지는 날이었다.
광화문에서 데모꾼들이 자신들의 폭력 불법데모를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칭송하며 선동할 때
속으로 코웃음 치던 내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가서 시위에 참여할 줄은 몰랐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의 증거가 언론기사들로 채워졌다는 것을 알고
헌법재판소에선 대통령 변호인단이 재판을 이끌어 가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보는 것이 하루하루의 일과였다.
내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들끓었다.
난 그것을 발산하지 못해 안절부절했고 홧병이 걸릴 정도였다.
그러다가 결국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내가 지지하던 중요한 대들보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아아! 내가 뽑은 첫 대통령이
이런 불명예 속에서 매장당하는구나 라고.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위해 흘린 눈물 중에
정말 그 타인을 대신해 감정이입해서 억울하여
통한의 눈물은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 후 말 같지도 않은 대선을 통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이 되었고
학교를 다녀도 다닐 맛이 나지 않았다.
내가 보았던 사회의 진실은 전부 부정되는 듯했고
우리나라의 한 국민이라는 것이 싫었다.
폭격을 맞아 초토화된 폐허란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렇게 내게 폭풍우 같은
하나의 역사의 순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그나마 조금은 나아졌다.
시간이 지나니 혼이 나갔던 이성은 돌아왔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나 자신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속에서 느껴졌던 분노는 내 정신이 성장하는 데 쓰일
고마운 양분이 될 것이라 믿으며
나는 내 생활에 충실하고 힘을 기를 것이다. *
출처 : 조갑제/나라사랑푸르게
*나는 조갑제마당에서 보석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復學을 한 현 대학생입니다.
그 나이로는 보수가 되기는 아직 이른 나이지만
그는 현실을 파악하는 이성적 眼目을 가졌습니다.
문재인 당선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힘에 겨운데
나는 이 글을 보고 눈이 확 떠지며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런 젊은 세대가 확산이 되면
대한민국은 所望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름을
여러분과 함께 共有하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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