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오일팔의 진실을 이제는 밝혀야 한다!
양 광래씨는 광주오일팔에 대한 진실을 답해 주시오.
양광래(pa****)2017.02.1910:24:19 | 공감 0
안동촌노 보시게 무식하기 그지없는 황당한 주장이요광주5ᆞ18 민주화운동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난 사안인데 문제를 제기하려거든 당사자들이재심청구를해야하는사항이고 국민투표대상은 더더욱아니고 ,특검해체는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법으로만들어진 결과무로서 이역시도해체니 탄핵이니하는 주장은 무식하기그지없는 그야말로바보천치들이나 하는소리일세. 그대를 능지처참하자는걸국민투표에 붙이자는 논리와 똑같은 주장이야.민주주의의 최고의가치는 법치의 공정한집행이고인권과 자유의실현이란걸 부인할건가?
김성복(qhrr****)2017.02.1923:05:05 | 공감 0
양 광래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저의 글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광주 오일팔 민주화 운동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사안인데 문제를 제기 하려 거든 당사자들이 재심청구를 해야 하는 사항이고, 국민투표 대상은 더더욱 아니고 특검해체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으로 만들어진 결과물로서, 이 역시도 해체니 탄핵이니 하는 주장은 무식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바보 천치들이나 하는 소리일세. 그대를 능지처참하자는 걸,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논리와 똑같은 주장이야. 민주주의의 최고의 가치는 법치의 공정한 집행이고, 인권과 자유의 실현이란 걸 부인할 건가 ? 라고,
저의 글에 긴 장문의 댓글로 반론의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님 의 글에 저가 상세하게 답변 올려드리겠습니다. 먼저 광주오일팔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신 것에는 저는 절대 그런 문구를 사용하시는 것에 반대를 합니다. 민주화 운동이란 이름을 붙이자면, 그것은 무장을 하지 않은 채, 힘이 없는 민중들이 맨손으로 시위를 하는 것이 바로 민주화 운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고, 국가의 법을 정당하게 지키면서 시위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 시위이고 운동입니다. 즉 우리가 일본에게 침탈당해서 맨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일본 통치에 반대하면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일으킨 3,1 독립 운동이 바로 민주적 운동입니다. 또한 자유당 이승만 독재에 맞서서, 불의를 타도하기 위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4,19 혁명을 우리는 일컬어서, 역사적으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로 무기를 들지 않고 힘 있는 권력에 대항하여 민중들이 봉기를 해서 성공한 것을 바로 민주화 운동내지 혁명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주 오일팔 민주항쟁은 바로 정상적인 민주화 운동이 아닌, 내란이고 사태이고 전쟁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 최규하 정권에
대항하여 야당의 대표인 특히 특정지역의 야당 정치지도자인 김대중을 석방하라! 김대중을 대통령 만들자!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광주지역 한 부분에서 민간인들이 무기를 들고서, 합법적인 대한민국 최규하 정권에게 대항하여 소요를 일으키고, 관공서를 습격하고 경찰관서를 불 지르고 경찰들을 인질로 잡고, 국가 공권력에 대항한 범법자들이고,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폭동이고 내란의 성격을 띤 전쟁입니다. 아무리 최규하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일부 수천 명의 민간인 신분의 폭도들은 경찰관서의 무기고와 심지어는 일급 군 방산 업체의 무기고를 피탈하여
중무장을 하고 탱크까지 탈취하여 광주 도청을 점거하고 그곳을 본거지로 삼고 최규하 정권에게 대항을 하면서, 광주를 정부의 공권력은 물론이고 정부의 통치가 불가능한 광주해방구[光州解放區]로 만들어 놓고서, 심지어는 국가의 중범죄자들을 구속한 광주교도소까지 습격을 수십 차례나 시도한 것이고, 최규하 정부군에 총질을 하고 군경들을 죽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지금 지 만원 박사가 주장하는 광주사태[光州事態]당시에 북괴 특수부대 일개 대대병력이 침투해서 장갑차까지 몰고 작전을 지휘했으며, 그 당시 북괴군 특수부대원으로 광주에 급파된
북한 특수부대원 출신이 지금 탈북을 해서 우리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이 그 당시의 침투경위를 상세하게 기록한 수기까지 이미 책으로 나와 있고, 자기가 그 당시 광주폭동에 가담했다가 북으로 귀환해서 영웅칭호까지 받은 사실을 증언했음에도, 광주오일팔 유족협회에서는 그에 대한 반론조차 전혀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님의 말씀대로 광주오일팔이 진정 민주화 운동이 맞고 민주항쟁이 맞다 면, 무엇 때문에 지 만원 박사가 그토록 공개토론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광주오일팔 항쟁에 대한 진실을 밝히자는 공개토론 요구에 아직까지
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정 광주오일팔이 님의 말씀대로 민주화 운동이나 민주항쟁이 맞다 면, 망서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님께서는 이미 대법원에서 조차 확정된 사안이고 하니, 광주오일팔은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했는데, 사실 광주 오일팔 폭동이 일어나고 광주 시내가 무려 30 일간 무정부의 상태였고, 광주의 폭도들이 통치하는 광주만의 해방구였습니다. 그래서 최규하 정권은 광주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그 당시 광주인근에 주둔한 정 웅 소장의 00 사단 병력을 광주에 긴급 투입했으나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정 웅의
예비사단 병력을 광주폭동 현장에 긴급 투입했지만, 폭도들과 광주반란군에게 결국은 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최규하 정권은 그 당시 주 영복 국방부장관의 건의 하에 잘 훈련된 공수특전사 병력을 광주에 투입했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외곽에 머물러 있으면서, 소요가 진정되길 기다리면서 광주상공에 전단지를 뿌린 것이고, 선무공작으로 들어갔지만 오히려 무고한 시민들의 살상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우리 공수특전사의 총기는 그 당시 엠 식스 틴 이 었는 데, 나중에 광주사태가 진압이 되고난 후에, 광주사태 사후처리를 광주시민 대표들과 군경합동조사반이 조사한 바로는
그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 중에는 폭도들이 군경무기고에서 탈취한 칼 빈 총에 상흔을 입은 사상자가, 무려 전체 사상 중에 80% 가 넘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광주사태 민 관 군 조사위원회에서 정밀 조사를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칼 빈 총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하게 죽였을 가요? 우리 공수특전사 군인들입니까?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봅니다. 무고한 민간인을 칼 빈 총으로 사살한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그들의 정체가 누구입니까? 분명이 광주시민들은 아닐 것입니다. 성난 광주시민들을 폭동의 현장에 불러낸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뒷전에서
총을 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무고한 부녀자들의 시신 중에는 뒤 쪽에서 총을 맞은 흔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현역 정부군들이라면, 분명히 앞쪽에서 민간인들을 정지나, 그렇지 않으면 투항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폭동으로 오인 받은 민간인들이 겁이 나서 도망가다가 엉겁결에 군인들이 오인 사격을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뒤로 총을 맞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거의 민간 폭도들이 무장한 칼 빈 총에 사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 광래 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나에게 대답 하실 겁니까? 그래서 저는 아직 미완의 광주사태를 지금이라도 다시 재조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물론 억울하게 희생된 광주시민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정부차원에서 보상을 해 주는 것은 맡다 고 보여 지지만, 일단 내란이나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된 분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 차원에서 그분들에 호국정신에 따라서 정당한 보상은 있을 수 있지만, 국가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정부의 계엄령 법도 위반하면서, 국가공권력에 대항하여 민간인 신분에 국가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현역 군인들처럼 완전군장을 해서 총기를 들고 정부군에게 총을 쏘고 저항 한다는 것은 역적이고 내란입니다.
폭동이고 내란이고 전쟁이고 역란인 것을 민주화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권당시에, 김 대중이가 정치를 못한다고 시위를 하면서, 경찰관서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민간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면? 그것도 민주화 운동이고 민주항쟁입니까? 무얼 알고서 저의 글에 반론을 하여 주십시요. 나는 광주사태 당시에 저가 직접 현장을 신문으로 방송으로 보고, 모든 실황[實況]을 지금 기억 속에서 이글을 쓰는 것입니다. 광주사태의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이상한 소릴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 광주사태가 성공하였다면, 아마 지금 대한민국이 김대중의 왕조가 되었거나 김일성의 왕조가 되었을 겁니다.
-- 안동 촌노 --
전창린(cljeo****) 2017.02.20 11:32:00 | 공감 2
5.18 은 분명히 밝혀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도 그때를 신문을 통해 기억하고 있지만, 그 변란을 민주화운동이라 하면서 내 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그곳에 가서 참배하는 것과, 고 영태 같은 놈이 유공자라고 들이 되는 것이 정말 싫네요.
정삼영(csy****) 2017.02.20 10:10:14 | 공감 1
광주 5.18은 확신 하건데 폭동 이였고 반란 이였다. 결코 민주화 운동이 안이였다. 그 당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았다면, 북의 침투로 월남전 양상이 될 번한 사건 이였다. 전라도 사람들은 신중하게 처신하고 반성 할 점이 너무 많이 있다.
장석분(snfl****) 2017.02.20 10:52:04 | 공감 1
광주 5.18폭동은, 북괴 "특수부대"가 개입한 내란폭동사건임이 밝혀졌다. 당시 북괴군 특수부대 신분으로 광주 5.18 에 가담했던 북괴군이 월남 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북괴군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쪽만 모르고 있다 하였다. 월남, 혹은 귀순한 북한 군인들이 국정원 조사받을시, 이러한 사실을 유포 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풀어줌과 만일 이를 위반 시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내용 이란다. 지금은 김대중, 노무현 아바타가 권력 깊숙이 있어 밝히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숨기기에 급급하지만 "보수정권" 들어서면 낱낱이 파해 쳐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에 연관된 종 북 간첩들 역시 잡아 척결해야한다.
안창식(sik****) 2017.02.20 10:59:47 | 공감 1
광주 5.18은 김대중 수하들이 대한민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어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계획된 난동이다. 무기고 탈취가 증명한다.
전창린(cljeo****) 2017.02.20 11:32:00 | 공감 1
5.18 은 분명히 밝혀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저도 그때를 신문을 통해 기억하고 있지만, 그 변란을 민주화운동이라 하면서 내 노라 하는 정치인들이 그곳에 가서 참배하는 것과, 고 영태 같은 놈이 유공자라고 들이 대는 것이 정말 싫네요.
양광래(pa****) 2017.02.20 13:18:54 | 공감 0
란대법원의 최종판결을 못믿는다면 어느누구,어떤 국가기관을 믿는건가? 대한민국의 정치인중 누가 광주5ᆞ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한지? 미국 국무부의 외교문서에서30년 이후공개문서에서도 지만원이나 카더라족 우리가 남이가족이외에 지만원을비롯한 댓글을 다는사람들 이외에는 대법원의 판결을 믿는다는사실이다 초헌법적망상은 국가를 말아먹자는거고 대법원판결을 부정한다면 그대들이 믿는 그대들의TK공화국을 만들든지 아니면 이나라를 떠나야 하는거 아닌가? 국가전복 반란수괴로 처벌받은 전두환일당들이 재심청구를 한다는 뉴스를 본일이없다. 초헌법적 망상은 내란음모죄다
김성복(qhrr****) 2017.02.20 21:43:28 | 공감 0
존경하는 정 삼영 선생님, 장 석분 선생님, 안 창식 선생님, 전 창린 선생님, 그리고 양 광래 선생님, 소생의 잡설에 이처럼 찾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미 저가 어제 양 광래 선생님의 댓글에 여러 개의 답 글을 올려 드렸지만, 무어라 해도 광주민주항쟁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민주혁명이 아닌, 김대중을 대통령 만들기 위한 특정지역의 군중들이 모의 합작 한 폭동이고, 민간인들이 군경의 무기고를 털어서 중무장을 하고, 대한민국의 합법적인 최규하 민주정권에 대한 도전이고 역란[逆亂]이고 내전입니다.
김성복(qhrr****) 2017.02.20 21:49:37 | 공감 0
양 광래 선생님께서는 계속 광주항쟁은 대법원 판결에 의한 민주항쟁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당시에 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광주오일팔 사태의 판결은 내란폭동이고, 이적 죄로 김대중은 전두환 정권의 법원에서 분명히 내란수괴로 사형언도까지 받았다가 옥중에서 김 대중이가 광주사태 발생에 대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자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면서, 자기를 살려 줄 것을 진정한 내용의 서신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것은 그럼 무엇으로 답변을 해야 합니까?
김성복(qhrr****) 2017.02.20 21:58:06 | 공감 0
물론 양 광래 선생님께서는 전두환 정권은 군사쿠데타로 집권을 한, 불법 정권이기 때문에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 할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난 수천 년의 모든 역사를 관조[觀照]해 볼 적에는 과연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모든 지난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어떤 정권에도 정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탈취 할 적에는 반드시 민간인들이 정권을 민주 혁명으로 성공하는 예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고, 그 옛날부터 항상 힘 있는 군부의 엘리트들이 민심을 등에 업고서
김성복(qhrr****) 2017.02.20 22:04:46 | 공감 0
군사쿠데타를 성공한 예가 허다했고, 다만 성공을 하지 못했을 적에는 역적이란 굴레와 함께 실패한 쿠데타는 그들의 죽음과 그들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인척 모든 사람들이 멸족을 당하는 것은 바로 필연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 되고 실패한 쿠데타는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적에는 그 누가 무어라 하던 전 두환의 12,12 쿠데타는 분명히 그 당시에는 성공한 쿠데타였습니다. 그래서 전 두환이는 최규하 정권을 그대로 인수를 한 것이고, 그것도 전체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국민투표 법안을 선택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발족하여 전 두환이가 만장일치로
김성복(qhrr****) 2017.02.20 22:11:40 | 공감 0
제 5 공화국의 대통령에 임기 7 년의 대통령직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 두환이가 국민들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강제적으로 정권을 탈취한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사태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조사를 하고, 그 당시 김대중은 내란 음모 수괴 죄로 사형 언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사태는 광주폭동이나 광주사태로 이름이 지어졌고, 그것은 노태우 정권까지 연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김 영삼이가 삼당합당을 해서 정권을 잡으면서, 대통령이 되고난 후에 문민정권이란 이름을 가지고서 과거 최규하 정권당시와 전두환 정권당시에
김성복(qhrr****) 2017.02.20 22:18:33 | 공감 0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은 광주사태 희생자들을 다시 구제하기 위해서 과거사 진실위란 위원회를 발족하여, 대통령으로 광주오일팔 청문회를 다시 국회에서 열게 된 것이고, 그 당시 김대중에 평민당이 여소 야대의 위치에서 광주오일팔을 다시 대법원에 상정을 한 것입니다. 전두환은 이미 백담사까지 갔다 오고, 사형언도까지 받은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때는 이미 대법원도 야당인 평민당의 수족들로 채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이이러니이지요. 쉽게 말씀드린다면, 역적이 다시 충신이 되고 충신이 역적이 되는 악순환이 거듭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는 흐르는 물에 쉼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김성복(qhrr****) 2017.02.20 22:26:46 | 공감 0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적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계속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람쥐 책 박 귀 돌리듯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우리 주변에 강대국들인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의 역사를 보고서는 고무줄 역사라고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무처럼, 오그려 졌다가 늘어졌다고 해서 빈 정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히 역사적 관점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면, 광주오일팔은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역적에게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를 당하고 공화당의 정권이 몰락하고, 박통의 유고시에 최규하 국무총리가 정권을 이어받으면서, 김 대중이가 정권을 잡기 위하여 민란을 주도하였다가 최규하 정권의 군부에
김성복(qhrr****) 2017.02.20 22:34:11 | 공감 0
제압을 당한 불발의 쿠데타란 것입니다. 그래서 김대중을 정점으로 한, 광주오일팔의 민간 폭동과 내란은 사실상 최규하 정권에게 진압된 불발의 쿠데타란 것입니다. 즉, 쿠데타란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무기를 들고 정권을 찬탈한 것을 쿠데타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성공하였다면 그것은 분명히 성공한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 대중이가 일으킨 광주의 쿠데타는 최규하의 정권에게 진압이 되었으니, 이미 그것은 실패한 쿠데타로 불러야 합니다. 광주는 민간인들이 맨손으로 정부군과 싸운 것이 아니라, 정부군의 무기고를 탈취해서 현역 군인들과 같은 무장을 하고 같이
김성복(qhrr****) 2017.02.20 22:41:19 | 공감 0
총을 쏘면서 죽기 살기로 전쟁을 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쿠데타이면서 반역이고 내란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입니다. 만약에 그 당시 김대중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민간인들이 정부군과 같은 무장을 하고, 총과 장갑차를 가지고 전쟁을 해서 성공한 다음에 김대중이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혁명이 맞다 는 것입니다. 이미 최규하 정권에게 진압된 실패한 쿠데타를 가지고서, 김 영삼이가 삼당합당의 편법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대통령이 된 다음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서, 과거의 불발 쿠데타를 가지고서 민주항쟁이니? 민주화니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어불 성설일 뿐입니다.
김성복(qhrr****) 2017.02.20 22:49:14 | 공감 0
양 광래 선생님, 이제 정신이 좀 드십니까?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은 초지일관해야 합니다. 정론직필이 아니면, 이곳 논장에서 이상한 논리로 글 올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에 지인의 부친도, 그분의 삼촌도, 광주오일팔 희생자 가족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 나, 나의가족들이 잘못된 역사에 연류가 되었다고 우리글 쓰는 사람들 마 져, 올바른 역사관으로 글을 쓰지 않는 다면, 그것은 정도가 아닙니다. 저의 생각과 저의 글은 추호도 광주민주항쟁은 민주화도 아니고, 민주항쟁도 아닌 실패한 불발의 쿠데타이고 폭동이고, 내란이라고 저는 정의합니다. 저의 글에 오셔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건승과 건필을 빕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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