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 내림을 받은 것도 아닌데, 문재인의 얼굴만 보면 웬일인지 가증스럽게만 보인다.
그가 지난 세월에 아무리 빨갱이였기로 정당한 방법으로든, 아니던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든 그토록 소원하던 대통령자리를 차지하였으니 여전히 헌법을 위배하고 빨갱이노릇을 할지 알 수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처럼 가증스러운 느낌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상하다.
아마도 나의 옹졸한 심성 때문인가 싶어져서 그야말로 순수했던 우리 시대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게 되는데, 우리세대들 중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세간에서는 이미 잊힌 추억이 가슴깊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유치원부터 과외를 해야 하는 요즈음의 도시어린이들의 삭막함이 아닌 실로 살아 숨 쉬는 어린 시절이었기에, 혹시라도 요즘 젊은이들이 전교조에게 손쉽게 세뇌당하는 이유가 요즘의 소년기 생활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의문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커야지 벌써부터 그래야 돼?”
“요즘 시대가 어떤지 몰라요? 애를 왕따시킬 적정이에요?”
30년 전, 유치원에 들어갈 둘째딸아이를 피아노교습소에 보내겠다는 집사람과 아직은 신바람 나게 놀아야할 나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해결책 없는 언쟁言爭이었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집사람의 주장에 지고 말았지만 지금우리 둘째딸은 피아니스트가 아닌 애니메이션animation작가가 되어있다.
집사람 말대로 내가 시대의 변화에 무딘 사람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인들이 말하는 소위 출세라는 개념에 무심한 나로서는 어린 시절의 추억어린 기억을 떨칠 수가 없었고 자식에게도 그 소중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집 사람 역시 도시에서 자랐기에 나의 추억을 공유하긴 어려웠던 가보다.
하긴 그렇다. 어찌 도시에서 자란 집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나를 키워온 상상도 못할 그 추억을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었기에 6·25직후, 낮밤 없이 시행되던 인사이동에 장교로써 시골로 전출되는 특성상 나의 어린 시절은 자연과 더불어 성장했다할 것이다.
시골에는 인간의, 아니, 생명체들의 삶이 있었다.
봄이면 동네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따먹고 송아 가루를 섭취했으며 소나무 껍질 안에 부드러운 속껍질을 벗겨 먹었었다. 송진 향기와 더불어 혀끝에 느껴져 오는 달착지근한 입맛을 기억하는 자 얼마나 되는가.
여름이면 장마 끝에 동네 논두렁 개울에 족대를 들고 고기잡이에 열을 올렸었다. 붕어새끼랑, 미꾸라지, 심지어는 우렁이까지, 동네 친구들과 더불어 집에서 훔쳐온 온갖 양념으로 매운탕을 끓여먹던 그 즐거웠던 기억을 어찌 잊을 손가.
그 뿐인가. 산으로 올라가면 지천에 널린 게 산딸기였다.
운 좋게 호두나무를 만나거나 머루나무를 만나면 환호성을 지르던 아이들이었다. 오디가 익을 때면 뽕나무를 찾아 원정길에 올랐고 칡 국수를 해 먹는다며 곡괭이를 들고 뒷산을 뒤졌었다.
가을이면 논에 들어가 벼를 쭉 뽑아서는 메뚜기를 잡아 목뒤로 줄래줄래 꿰어 들고 집으로 돌아와 볶아먹었고 물 빠진 논 자락 웅덩이에서 미꾸라지며 우렁이를 잡아 된장 풀어 끓여먹던 그 기억이 새롭기 짝이 없다.
온갖 양념을 다해서 비지와 밀가루를 섞어 풀빵처럼 묽게 반죽하여 소금물에 내장의 불순물을 토해낸 미꾸라지를 함께 섞어 빵 찌듯 쪄내어 먹기 좋을 만큼 썰어내면 이 어찌 별미라 아니하겠는가.
산골 개울에 널리듯 서식하는 가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산골개구리를 잡아 왕소금을 쳐가며 구워먹던 추억도 버릴 수 없는 추억이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계절과 관계없이 우리는 놀 거리가 너무나 많았었다.
겨울이면 시골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게를 둘러매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간다.
비록 신 대위님 댁 아들이라 대접받았지만 나라고 그 신바람 나는 대열에서 빠질 리 없다. 나무하는 외에도 너무나 재미있는 사냥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토끼사냥이다.
나무를 하러갈 때마다 토끼가 다니는 길목을 찾아 올가미를 놓는다.
다음날 가서보면 영락없이 토끼가 잡혀있다. 엄청 재수가 좋으면 고라니가 걸려있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우리가 왕이다. 어른들까지 동참하여 동네잔치가 벌어지는 거다.
지금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야생동물 사냥이 금지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이었던 6·25 직후에는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가보다.
나무하러 가지 않을 때에는 앞마당에 소쿠리를 거구로 엎고 나무작대기로 살짝 들어올린다. 소쿠리 아래 땅바닥에 곡식을 한 움큼 뿌려놓으면 경계심이 많은 참새란 놈들도 결국 곡식을 쪼아 먹게 된다. 한겨울에 배고픈 판국에 참새인들 곡식의 유혹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 때 끈으로 연결된 막대기를 잡아당기면 소쿠리가 참새들을 덮어버린다. 운 좋으면 한 번에 십여 마리는 보통이다.
아이들이 잡아온 참새를 모아 왕소금 뿌려가며 화롯불에 구워먹는 그 맛이야말로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 참새 한 마리와 소고기 한 근 안 바꾼다더니 그 말이 맞는다고 맞장구를 치던 기억을 어찌 잊겠는가.
고구마를, 알밤을 화롯불에 구워먹기도 했고 김장독 옆에 묻어둔 왜무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예습복습을 했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학원에, 피아노학원에, 미술학원에, 컴퓨터게임에…….
요즘 아이들처럼 그렇게 커보지 못했으나 우리 어린 시절, 자치기, 강가에서 발가벗고 헤엄치기, 겨울이면 동네 연못에서 제 손으로 만든 썰매타기, 시시때때로 벌이던 이웃동네 아이들과의 칼싸움 전쟁놀이, 기마전, 말 타기 같은 놀이보다 컴퓨터게임이 더 재미있는지는 알 수 없다.
헤엄치다가 누구 오줌줄기가 더 멀리 나가는지 시합하고는 가장 힘차게 싸갈긴 녀석이 자랑스러워하던 우리 시절의 시골 아이들은 수십 리 오솔길을 뛰다시피 학교를 다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체력이 다져졌던 건 아닐까.
어쩌면 모든 놀이를 함께 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협동정신이 길러지고 함께 서리를 하면서 동질감에 우정이 싹텄을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우정은 변할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추억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우리세대로 끝나는 것이려니 싶어지면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남곤 한다. 그랬기에 요즘 세대들이 그처럼 쉽게 전교조의 세뇌에 넘어간 건 아닌가 싶어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