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라디오가 시끄러웠고 신문에는
색안경을 낀 깡마른 軍人이 보였다.
그리고 革命公約이 나왔고 우리는 그것을 줄줄 외웠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 >
그렇게 5.16은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의 집권기에 成長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반대하는 街頭 데모를 하다가
군인들에게 잡혀서 필동에 있는 首警司에 끌려갔다.
거기서 한나절을 머리 박고 기합을 받았다.
主動者를 가려내고 나와 데모대는
장충체육관 광장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하숙집 歸家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승객들에게 박정희의 독재를 소리 높혀 설명했다.
50여 년의 星霜이 흐른 나는
初老가 되어 그를 다시 생각한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가 아니었으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가 이렇게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사는 것은
순전히 그의 德分으로 여긴다.
바로 그 5.16
그날의 새벽이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는 빨갱이 혐의로 死刑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를 아끼는 몇 사람의 도움으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김창룡 특무대 수사관과 정보국장 백선엽이 그를 도왔다.
그들은 박정희를 알았던 것이다.
이로서 박정희는 다시 軍服을 입는다.
4.19는 혁명이 맞지만
그것으로 나라를 바꾸는 데는 力不足이었다.
張勉 정권은 무능하여 4.19 세력에 끌려 나녔다.
外信기자가 장면에게 이렇게 물었다.
"새 나라가 되었는데 국민을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장면은 이렇게 답변을 했다.
"求乞을 해서라도 먹여 살리겠다."
이것이 장면과 그 정권의 生存방식이다.
또한 이것이 박정희를 부르는 端初가 된 것이다.
5월 15일 늦은 밤
육영수는 큰딸 근혜의 숙제를 도왔다.
이때 박정희가 방에 들어와 外出을 알렸다.
그는 근혜의 등을 어루만지고 근영, 지만이의
자는 모습을 마지막 心情으로 바라보았다.
(저 애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육여사는 어둠 속으로 남편을 배웅하고
걷은 빨래를 꼼꼼히 개켰다.
(우리는 내일 새벽을 어떻게 맞이할까?)
그러나 이미 혁명계획이 누설(漏泄)되었다.
30사단 참모들이 다투다가
누군가가 고자질을 한 것이다.
방첩대 감시조가 민간인 복장으로 따라 붙었다.
나이는 6살 아래지만 상급자인 장도영 中將에게
이미 혁명계획을 알린 바 있다.
그것은 協助하거나 默認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장도영은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鎭壓을 명한 것이다.
박정희는 흐트러진 병력을 규합하여
한강 인도교 南端에 섰다.
이미 다리 건너 용산 쪽에는
진압군이 바리케이트로 沮止線을 치고 기다렸다.
박정희가 前進을 하자 진압군의 총알이 빗발쳤다.
擧事가 탄로났다는 소문을 들은 혁명군이 망설였다.
박정희는 목숨을 버릴 각오로
차에서 내려 한강교를 뚜벅뚜벅 걸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兵力은 그를 믿고 전진을 계속했다.
한편 6군단 포병부대가
대포를 이끌고 의정부를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美軍의 검문소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神은 혁명군을 도왔다.
검문소 미군 초병(哨兵)들은 혁명군 통과를
오히려 반기며 교통정리까지 해 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훈련차 出動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강 인도교 총격전에서 진압군의 총알은
박정희를 비껴갔고 혁명은 드디어 성공했다.
피해는 부상자 몇 명을 낸 것이 전부다.
김종필이 KBS를 점령하고
새벽 5시 첫 뉴스를 이렇게 시작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軍部는 드디어 금조미명(今朝未明)에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어서 革命公約 6개항이 방송을 탔다.
나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머리를 숙인다.
김창룡과 백선엽이다.
그 둘이 아니었으면 박정희는 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박정희를 비껴간 총알에 감사한다.
만일 그 때 총알 하나가 그를 맞혔다면
대한민국의 前進의 역사는 中斷 되었다.
의정부 美軍 검문소의 초병들에게도 敬意를 표한다.
그들의 검문으로 擧事가 發覺되었다면
혁명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을 것이다.
國軍이 美軍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5월은 계절의 女王이라며 行事와 記念日이 많다.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가정의날, 발명의날, 광주5.18, 노무현 서거의날 등이다.
그러나 5.16은 아무도 기리지 않는 "무념(無念)의 날"이 되었다.
일부 세력은 지금도 그것을 革命이 아닌 '구데타'라고 우긴다.
最貧國에서 세계 10대 經濟大國을 이루었고
산업화를 지나 전자산업은 세계一流가 되었는데 말이다.
먹고 남는 쌀이 창고에 넘쳐나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그들은 박정희를 공산당 친일파였다고 格下한다.
그것이 뭔 대수인가?
그가 나라를 富强케 하고 공산군을 막았으며
국토를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꾸어 가꾸었고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自信感을 심었다면
나는 그가 공산당 친일파를 넘어
흉악한 强盜라 하더라도 머리를 숙여 존경할 것이다.
나는 그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그가 국민을 운명적 굶주림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나라와 국민을
제 몸과 가족보다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동안 소찬(素饌)을 들었고
군복과 양복은 修繕해서 입었으며 革帶는 낡았다.
그가 生前에 남긴 재산은 낡은 신당동 자택 말고는 없다.
그가 권력을 공고(鞏固)히 유지코자 한 것은
중단 없는 국가발전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죽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
그에 대한 나의 연민(憐憫)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그를 생각만 하면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것은 病이 맞다.
왜냐하면 症勢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도 重病이며 痼疾病이고 不治病이다.
이 병에서 해방되고자 한다면 죽는 길 말고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