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어떤 형태로든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존심이란 자신을 자신일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일지도 모를 만큼 우리네 삶에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그런 자존심에도 차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차원이라기보다는 수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합당할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자존심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느냐에 따라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손님으로 탄 택시기사와 운전대를 잡은 택시기사가 운전 실력을 두고 언쟁을 벌이다 주먹까지 주고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은 경찰에까지 끌려갔지만 서로 처벌을 원치 않아서 훈방되었다는데, 한 마디로 저급한 자존심의 대표적 예다.
저급한 자존심이란 누군가와 비교하여 나 잘났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누구나 어떤 면에서든 자신이 남들보다 잘났다는 자부심이 있게 마련이겠지만 그 비교우위를 가늠하는 개념 자체가 저질이라는 뜻이다. 이런 자들일 수록 자신과 비교하는 상대는 고마고마한 도토리 키 재기에 기준을 두게 되어있다.
예컨대 초등학교 아이들은 같은 학급, 같은 학년, 같은 학교 아이들끼리 우열을 비교할 뿐, 대학생을 상대로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택시기사가 같은 택시기사에게 운전실력을 놓고 우열을 가리다가 주먹싸움으로까지 발전한 것과 같은 현상이다.
9급 공무원이 대통령과 자신을 비교하겠는가. 아니면 기관장과 자신을 비교하겠는가. 말하자면 상대성 비교우위를 가늠하며 벌이는 자존심이 저질인 이유는 그 출발부터 도토리 키 재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비교우위에 의한 자존심이 나이를 먹으며 점차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상사 부딪치며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접지 않을 수 없는 한계가 원인이 된 피동적인, 즉 체념일 경우와,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의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은 그 누구에게도 침범 당하지 않으니 우열이란 근본적으로 없음을 알게 됨으로써, 비교우위 개념을 기초로 형성된 자존심이 유치함을 깨달아가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열등감이 만들어지고 후자의 경우는 겸손이 만들어 진다고 할까.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은 어느 경지에 오르면 자신을 높이는 자존심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자존감으로 발전한다.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는 이미 비교우위 여부를 따지는 자존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다.
존재로서의 자존감이라 해서 대단한 건 아니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일 뿐.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눈앞에 이익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이, 혹은 사회에서 인정하는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한 방법으로 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기에는 스스로의 존재감이 훼손되는 듯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줄어드는 경우 전자이든 후자이든 이런 사람들은 사회에 그다지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문제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도토리 키 재기 식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은 이익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다.
돈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 숙인다는 속성을 잘 알기에 정당하고 부정하고를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자존심은 없고 비교우위에 기초한 자존심만 남아있기에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났다는 대접을 받을 기회만 있다면 과정 따위는 간단하게 무시한다.
우리 고교시절에는 이런 자들의 자존심을 일컬어 ‘똥 프라이드’라고 표현했었다. 이런 자들일 수록 자신이 하는 짓은 멋진 일이요 남이 하는 짓은 수준이하라고 열변을 토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자존감으로서의 자존심을 지닌 사람들이 남을 쉽게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반면 비교우위에 의한 자존심을 가진 자들이 입만 벌어지면 남을 평가하고 비판한다. 진정한 자존심과 하찮은 자존심의 차이라 할 것이다.
인생은 곧 관계라고 말할 만큼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면 살게 마련이다. 어찌 사람끼리만 관계하겠는가. 모든 생명체, 자연환경 등과도 필연적인 솬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듯 관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존적 자존심을 지닌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비교우위에 의한 자존심밖에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반성하기보다 감정부터 일어나고 보복 심리에 빠지게 된다. 예로 들은 택시기사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자존감에 의한 자존심을 지닌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칠십 줄에 들어선 나도, 나름대로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 일과를 반성하는 마음자세로 살려고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비교우위에 의한 자존심이 남아있어서 남에게 터무니없는 평가를 받았다고 느껴질 때면 신경질이 오르기도 한다.
자존감에 의한 자존심을 지닐 만큼의 인격도야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기로 칭찬받을 사람으로 변하거나 혹은 폄훼를 당했기로 폄훼된 자로 변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이성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비교우위에 기준을 둔 저열한 자존심에 묶여 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나처럼 근기가 되지 못하는 중생들은 그저, 금생의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가보다.
과연 대통령을 해먹겠다고 국민을 속이는 후보들의 자존심은 어떤 종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