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유족들에게 속죄하지만 나는 두목이 아니다』
사형수번(死刑囚番) 6501. 부산 구치소 면회실 유리벽 건너편으로 왼쪽 가슴에 붉은색 사형수번이 새겨진 명찰이 달린 죄수복을 입은 자그마한 키의 사형수(死刑囚)가 모습을 드러냈다. 뿔테 안경을 쓴 사내는 쾌활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사형이 확정된 해인 1997년 말, 그곳 구치소에서는 사형수 4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해 겨울을 포함해 네 번째의 겨울을 맞을 때까지 살아서 면회객을 맞고 있다. 그를 면회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늘 한결 같다. 이번 면회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한 집착을 버렸습니다.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어머니와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랄 뿐입니다』
그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지금도 선상(船上)반란 사건에서 죽은 사람들과 유족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천(全在千). 중국 국적의 조선족인 그는 호적상으로는 1958년 生이다. 실제로는 1952년 生이다.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나이를 줄였다고 한다. 쇠는 나이로 마흔 아홉 살인 것이다.
全씨는 1996년 8월2일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페스카마 15호 船上에서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중국 조선족 범인 6명 가운데 두목으로 지목돼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 대기중이다. 나머지 조선족 범인 5명은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로 감형돼 대전교도소 등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범인 6명 가운데 全씨에게만 사형이 선고된 이유는 간단하다. 全씨가 두목격으로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全씨 자신도 검찰조사 과정은 물론이고 재판과정에서도 자신이 범행을 주도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全씨는 『그 사건 당시 나는 두목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 구치소 면회에서 全씨는 『나는 상황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사건에)가담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나까지도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목의 위치에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모의하고 실행을 지시한 게 아니라 자신도 다른 범인들처럼 상황에 휩쓸린 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全씨의 변론을 맡았던 문재인 변호사는 『그 사건에는 두목이 없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고 전제하면서 『다만 중죄를 받을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나이나 학력이나 경력이나 페스카마호에서의 지위로 볼 때 全씨가 지목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두목이 있었다면 全씨가 그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사건은 우발적 충동에 의해 시작됐다는 견해다.
페스카마호에 승선한 중국 국적 조선족은 全씨를 포함해 7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이 범행에 가담했고 1명은 이들에 의해 살해됐다. 全씨는 호적상 나이로도 페스카마호에 승선한 다른 조선족들보다 10여 세 많다. 학력에 있어서도 다른 조선족들의 최고 학력이 고졸인 데 비해 천진사범대학교를 나왔다. 직업도 다른 조선족들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던 데 비해 10여 년 간 중국 길림성 소재 조선중학교에서 음악과 한문을 가르친 교사였다. 페스카마호에서의 그의 위치는 2등 항해사로 사관선원(자격증을 가진 간부선원)이었고 나머지 조선족들은 막일을 하는 선원들이었다. 全씨는 이전에도 일반 선원으로 乘船(승선)한 경험이 있었지만 나머지 조선족들은 페스카마호 승선이 처음이었다.
두목을 꼽으라면 全씨를 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런 배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全씨는 수사과정에서 자기가 두목임을 인정하면 다른 조선족 범인들은 물론이고 자신까지도 빠른 시일 內에 중국으로 추방될 것으로 믿고 스스로를 두목이라고 인정하고, 다른 조선족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족들이 船上에서 저지른 범죄의 끔찍함 여부를 떠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두목이었다는 이유로 범인 중 유일하게 사형 선고를 받은 全씨로서는 다른 범인들과 비교해 형량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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