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의 심경은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1992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만약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과연 이 나라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변질되었을 것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랄까. 김대중이 아니고 김영삼후보가 지혜롭고 슬기로운 국민에 의하여
1백 4십여만표 앞 선 대통령에 당선되었기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좌경 공산화가
되지 않았으며 이를 대비하는 군부의 또 다른 구테타도 사전에 막을 수가 있었다.
간략하나마 그 당시를 회고하는 집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건의 내막을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1993년 김영삼 정부의 국정모니터가 되어 일주일에 한번씩 국방, 안보, 사회 문화 등
국정운용을 위한 모니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필자 뿐 아니라 여러 체널에서 비서실장이 주관하는 국가경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김영삼대통령 취임 초기 무려 90%에 이르는 국민 여론에 기여하기도 했고 국정모니터들의
활약 또한 대통령이 인정할 만큼 철저한 보안이 뒤 따랐다.
문제의 발단은 1992년 군부의 성급함에 있었다.
당시 김대중후보는 빨갱이란 닉네임을 벗어나지 못했던 만큼 군 수뇌부와 하나회에선
김대중의 당선에 뒤 따른 대책회의가 연일 열렸다는 제보가 있었다.
필자는 이 제보를 향군 조직으로 부터 확인하고 이에 따른 모니터링을 하기에 이르렀고
군 수뇌부 중 필자와 친분이 있었던 하나회의 조직 명단을 포함한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뒤 따른 군부구테타 거사 일정을 국정모니터 입장에서 보고하지 않을 수 었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읽은 후 속전속결 형식으로 하나회 조직에 대한 진상 파악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당시 군부 내 모니터에 의한 사실확인이 있기가 무섭게 국방부를 포함한
하나회의 조직이 뿌리 깊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의 관계이다.
정적인 김대중을 하나회의 진상에 따라 처리할 것이냐, 아니라면 먼저 하나회를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김영삼대통령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김대중에게 전하고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고자 한 것이었지만 좌파 김대중은 잠시 동안이었고
하나회의 척결만이 군부 구테타를 예방하고 종식 시켰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김영삼대통령은 정적인 김대중이 후임 대통령이 되도록 하였을까?
이에 따른 숨막히는 좌파들의 공작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다시 밝히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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