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자기 부친이 얼마나 잘나고 똑똑한 애국지사이기에 남의 소중한 부친을 친일파라 손가락질하며 모욕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재학이는 이에 분개하여, 위키백과를 뒤져서 분석해 보았습니다. 판단은 국민 여러분께서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위키백과에 실린 문재인 부친 분석
유년 시절[편집]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1] 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당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름난 수재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5]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위키백과 사전을 분석해 보면, 문재인 부친 친일 문제는 보다 선명해집니다.
아마 이 정도 상세한 인물 기록은 없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엔 문재인의 학력과 성장과정이 정밀할 정도로 자세히 적혀있더군요.
따라서 위키백과에 거짓정보가 실릴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재인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과 과장임은 분명해집니다.
다만, 그게 일본시절인지
아니면 해방 후가 되는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문재인의 말로
부친이 노동당 가입을 반대하였다면, 더욱 아리송해집니다.
왜냐하면, 노동당 정권에 반기를 들거나 협조를 하지 않은 공무원을
가만히 놔둘 공산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던 시절 아닙니까?
그러므로 문재인 부친이 흥남시정 농업계 행정직 공무원으로서 그 직을 전쟁 때까지 유지 했다면, 노동당 가입을 반대하였다는 것은 아마 거짓일 것입니다.
따라서 최소한 과장 재직을 위해, 김일성에 어느 정도 충성한 것도 추리가 가능합니다.
결론은,
일제시대에 과장을 했다면, 민족연구소 측에서 기준을 세운 친일공무원이 과장급 이상이므로 친일이 분명합니다. 만약 그러나 해방 이후에 과장을 했다면, 그건 노동당에 충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위키백과엔 ‘농업과장을 하다가 전쟁이 발발하자’이렇게 되어 있군요.
따라서, 일제시대 시험에 합격해서 승진을 거듭했다는 반증입니다. 조선인이 그 정도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사무 능력(?)외에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과장까지는 몇 년 걸렸는지 모르나 최소한 7,8년은 걸렸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 부분을 짚어봅니다.
-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의 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당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름난 수재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에 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 -
어떻습니까? 문재인 부친에 관한 뭔가가 분명해지지요?
2015. 10. 31
10월의 마지막날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