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朝 仁祖 14년에 거란족 淸이 쳐들어 와
임금과 大臣들은 남한산성에 待避를 했다.
즉 丙子胡亂이다.
淸軍은 산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다.
大臣들 중에 金尙憲과 崔鳴吉이 있었는데
김상헌은 끝까지 싸우자는 主戰派이고
최명길은 협상을 하자는 主和派였다.
그 때 산성에는 50여일 분의 食糧이 있었다고 한다.
一見에는 김상헌은 忠臣이고 최명길은 奸臣처럼 여겨진다.
여기서 名分과 利害가 충돌한다.
김상헌의 주장은 최후의 一人까지 싸우다 죽자는 것이고
최명길은 싸움에 勝算이 없으므로
協商을 통하여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다.
나는 김상헌 주전파들에게 묻는다.
그렇게 王과 臣下가 싸우다 壯烈하게 모두 죽으면
나라는 어떻게 되는가?
敵將이 당신들의 義氣와 忠誠에 감격하여
軍兵을 철수하고 本國으로 돌아가는가?
내가 어제 "5.18을 역사에 묻자"라는 글을 올렸다.
분기탱천한 댓글이 달렸고 失望했다는 글도 올라와 있다.
아마도 "역사에 묻자"라는 것을
그냥 양보하고 사건을 덮자는 뜻으로 해석한 것 같아 안쓰럽다.
역사란 사실의 羅列이 아니고 그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다.
나도 心情적으로는 5.18세력을 싹 도려내는 것이 시원하다.
또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正義롭기도 하다.
그것은 이것과 같다.
강도가 나쁜 짓을 하고 도망을 가는데
"저 놈 잡아 죽여라!"하며 소리 친 자는 속이 후련하다.
"5.18세력을 一擧에 척결하지 않고 무엇하느냐?"
이것도 듣기에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만원 박사는 남들이 이렇게 소리를 지를 때
그는 事實과 眞實을 파헤치려 목숨을 걸었다.
그쪽 세력들로부터 공갈협박과 신체적 고통을 받는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12년 동안 證據를 찾기 위하여 산더미 같은 서류를 파헤치고
그들이 제기한 告訴에 대응하느라 心身이 枯渴되었다.
그가 그렇게 죽을 고생하는데
여기 논객 중에 그를 도운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
물론 나도 그를 돕지 못했으므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는 말하지 못한다.
"5.18세력을 잡아 죽이지 않고 무엇하느냐?"
이 말을 지 박사가 들으면 심정이 어떠할까?
기쁠까?
슬플까?
내가 지 박사라면 죽고 싶을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또 묻는다.
"그 작업을 누가 합니까?"
그의 대답은 뻔하다.
"나는 의견을 開陳하였으므로 그 작업은 누군가가 하겠지요."
그것은 이것과 같다.
"빈대가 미우므로 초가삼간이라도 태우자."
어제 올린 짧은 내 글의 意圖는 이것이다.
1. 광주시민은 延高大생 6백 명은 북한군이 맞다고 인정해라.
2. 5.18사태는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북한군이 사주(使嗾)한 군사반란이다.
3. 5.18유공자는 그 혜택을 자발적으로 국가에 반환하라.
4. 5.18단체는 지만원 박사에게 잘못을 사과하라.
이렇게만 하면 그들을 잡아 죽이지 않아도 된다.
謝過를 하고 容恕를 하자는 것이다.
그것으로 5.18을 역사에 묻자.
사건을 덮자는 것이 아니고 역사에 묻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感情이 아닌 和合으로 수정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