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이건 공고이건 당시는 공부를 좀 하는 애들도 많이 갔었고 지금도 그 곳 출신들중 쟁쟁한
분들도 꽤 많지만 얘들은 첫째놈이 날라리 사촌이라 동생들도 얼거덩 덜거덩 따라해서 비숫한,
한마디로 막장 형제들이었다.
군대갔다 온 놈팽이 아들 세명을 직시하고는 하늘이 노래진 이 양반.... (당시 50대 중반)
모처럼(...) 인생에 대해 깊이 고뇌한 후에, '저 한심한 것들이 내가 죽으면 그냥 양아치가 될 터인데 이를 어쩔꼬...'.
배운 게 있나 아니면 기술이 있나, 아니면 성실하기나 한가......
막걸리에 한숨과 눈물을 섞어 마신 후에 결론...'내 시다바리로 들여서 일을 가르쳐야 겠다'
굳은 결심.헌데 단 한가지 신통한 게 있었으니, 아들들이 아버지는 엄청 무서워 해서 명령체계는
하나 확실했것다.
공부하라는 거 빼고는 무조건 "Yes, sir." "As you order, sir!" 군기 하나는 팍!
당시 노가다는 십장이 10~12만원이고 시다바리는 보통 5만원정도였는 데,
아버지가 거느린 군단은 1일 일당만해도 합치면 25만원이라.
당시 대졸초봉이 대기업 기준 40만원 정도였다.
아버지가 집합 및 출동을 명하니, 로마군대처럼 움직이는 데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필 수 있나 아니면 새참으로 소주를 마실 수 있나,
심지어는 오줌보가 터질 지경에도 노래진 얼굴로 일을 열심히 했는 데,
서투른 일도 시간지나면 익숙해 지는 법,
더구나 아버지이자 스승은 일 솜씨가 좀 깔끔했었던 가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는 일 시키면 못 하나 박고 담배 한 대 피고, 삽질 한 번 하고 막걸리 한잔하던
개판 농땡이 판이 노가다 판이었는 데 이유는 일당제였기 때문이었다. (즉 공산당 비슷)
무서운 아버지앞에 그것보다 더 확실한 자살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당일 일당은 모조리 아버지 수중에 들어가고 다음에 무조건 은행으로 입금.
워낙 호랑이 아버지의 지휘로 일사 분란하게 일을 하며, 십장의 명령은 물론
집 주인의 작은 부탁도 눈썹을 휘날리며 뛰머 다니며 해결.....
다른 팀이 3일 할것도 이팀이 하면 하루에 완벽 이상, 아니면 늦게까지도....
끝마무리는 수리를 맡긴 집주인들은 '왜 이제야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꼬'라는 탄식이 저절로.....
그래서 팁도 꽤 받았단다.
일하는 동안에 풍부한 참이 나오는 데, 그것 마저도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는 화중지병이라!
처음에는 공포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나섰으나(목숨도 건져야 하니까) 나중에는 착착 쌓여가는
통장의 돈과 Waiting List까지 관리할 정도의 인기 때문에 일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흔들림 없이 5년간을 얘들을 간수하니 애들은 잘 배운 덕에 근면과 기술을 갖추고
존경(?)과 감사를 받는 몸들이 되었다.
덤으로, 어머니는 늦철난 남편 덕에 여러모로 부유해지는 집 안을 보며 정한수 떠놓고
'천지신명과 조상님께' 환상적으로 손을 비비며 조석으로 감사를 했더라.
* 이야기는 제가 들었던 시기가 5 년이 넘던 해였으며, 여러사람들이 심심풀이로
'그 동안 얼마나 모았을까?'라는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
--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쩐지 대한민국 역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어
여기 소개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