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함 납품 비리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최근 국내 대형 무기 중개 업체 중 하나인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을 구속했다. 합수단은 그가 6년 전 터키에서 5100만달러짜리 전자전 훈련 장비 도입을 중개하면서 사업비를 9600만달러로 부풀려 나머지 돈을 챙긴 혐의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2000년대 들어 3억달러 규모의 러시아제 무기 도입을 중개하면서 돈을 벌었고, 이후 학교법인·복지재단·연예기획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1980년 경찰학교 간부후보 과정을 수료한 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다 옷을 벗었다. 그런 그가 무기 중개에 뛰어들어 부와 명성을 얻은 것이다.
-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무기 중개상은 무기와 군사기밀을 다루는 특성상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언론에 등장하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주목을 받는다. 사람들은 우선 그들이 주무르는 돈의 규모에 놀라고, 정권 실세나 군 고위 간부 연루 소식에 혀를 내두른다. 검찰 관계자는 “무기 중개상의 세계는 첩보 영화처럼 사람의 관심을 끄는 묘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巨額, 그리고 권력
무기상이 활동하는 곳엔 엄청난 돈이 굴러다닌다. 무기는 곡물, 석유 등과 함께 국제 무대에서 가장 진하게 돈 냄새를 풍기는 시장이다. 첨단 무기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무기 도입 사업 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커졌다. 항공기와 함정 등 초대형 무기 사업은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한다. 당연히 무기상이 받는 돈 봉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수수료만 몇백억, 몇천억원이라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무기 중개상이 받는 수수료 수준은 얼마나 될까.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리베이트만 없애도 무기 도입 비용의 20%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기상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고 한다. 한 방산 전문가는 “수수료는 전체 거래액의 3~7%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조건이 천차만별이라 1%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30%를 훌쩍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대형 무기 중개 업체 대표는 “사업 규모가 1조원대인 경우 수수료는 2%를 넘지 않고, 항공기 등 초대형 사업은 1% 이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상의 세계에선 비싼 것만 좋은 게 아니다. 중저가 무기라도 꽤 실속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방산 관계자는 “무기는 도입 이후 30~40년 정도 부품·소모품 조달, 훈련 장비·시스템 제공, 장비 업그레이드 등 후속 사업이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한 번 팔아놓은 무기 덕에 평생 먹고살 걱정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무기 가격이 때와 장소에 따라 또는 상대방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라진다는 점도 무기 중개상이 능력을 발휘해 더 큰 수익을 올리게 하는 요인이다. 무기상의 수완으로 1억원짜리 무기를 2억원에 팔았다면, 수수료가 더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 세계의 돈거래 방식은 ‘후불’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약속된 수수료를 받는다. 그때까지는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로비 비용 등을 모두 자기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업이 잘 안 되면 ‘쪽박’을 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무기상은 “무기 거래는 성사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동안 쓰는 비용이 엄청나다”며 “경조사비나 각종 협찬 등으로 나가는 돈은 아예 계산서에 넣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무기 중개상은 권력 핵심과 친해지려는 것이 ‘본질적 속성’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재미 무기 중개상 조풍언씨나 이양호 국방장관과 연서(戀書) 스캔들로 유명했던 린다 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기 도입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사업 성공에 결정적 열쇠이다. 그를 통해 실제 사업권을 따낼 수도 있고, 고급 정보를 얻어 계약 추진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수수료 일부가 이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이유다. 한 무기상은 “사람 관리는 우리에겐 숙명이자 지상 과제”라고 말했다.
- (좌)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 (우) 린다김
방위사업청은 “현재 공식 등록된 무기 중개 업체(공식 명칭은 무역대리점)는 모두 870여개”라고 말했다. 등록되지 않은 업체도 50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실제로 돈을 버는 곳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상위 10여개 업체가 전체 거래 금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무기 세계는 엄청난 첩보전과 공작이 판치기 때문에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내 편하고만 거래한다.
국내에 무기 중개상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로 추정된다. 해군 관계자는 “자주국방이 추진되고 전력 증강 계획인 율곡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무기 중개상의 활동 폭이 크게 넓어졌다”고 말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이들의 규모와 조직, 전문성도 커졌다. 이들의 존재가 뚜렷하게 부각된 건 1993년 율곡 비리 감사가 계기가 됐다. 무기 중개상 1세대로 평가되는 정의승·김영완 등의 이름도 그때 나왔다.무기 중개상은 ‘이 세상에 무기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존재’라는 평을 받는다. 무기를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이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무기 생산 업체엔 무기를 내다 팔 시장을 개척해주고 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한 무기상은 “생산업체가 초기 정보를 얻는 단계부터 모든 일을 직접 한다면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며 “에이전트(무기 중개상)를 활용하면 비용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무기상은 거래 초기 단계에 불거질 수 있는 외교적 마찰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무기는 거래가 무르익기 전까지 사고파는 당국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 중개상이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꼬리 자르기’를 통해 탈출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한 무기상은 “주변국이 긴장할 무기를 도입할 때 초기에 소문나면 사업 자체가 힘들 수도 있는데, 이때 정부가 아니라 무기상 수준에서 나온 얘기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언어와 이질적인 문화 등을 대신 해결해주는 것도 장점이다.
수입국 입장에선 군인이나 공무원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성능을 가진 무기가 필요하고, 어떤 업체가 생산하고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모두 파악해주기 때문이다. 한 무기상은 “전 세계 모든 무기 수출 업체가 에이전트를 쓰는데,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국제시장에선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와 국제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지역 등이 무기상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된다. 예전엔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첨단 무기를 사고파는 비중이 높았는데, 최근엔 한국·이스라엘·중국 등 신흥 무기 수출국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공격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것도 새롭게 나타난 트렌드다. 한 방산 업체 관계자는 “국제 무기 전시회 등에 나갈 때면 현지의 능력 있는 에이전트를 물색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무기 중개상이 수입국 실세나 관료, 군인 등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군사기밀을 빼내는 사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무기 거래가 이뤄지는 패턴과 관행이 외국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세계적인 무기 중개상 아드난 카쇼기는 한때 미국 두 개 주(州)의 땅 15%를 소유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거대한 부를 일구기도 했다.
한 무기 중개상은 스스로를 ‘교도소 담장을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언제 어디서 군사기밀과 세금 문제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검경과 감사원, 국세청 등은 이들의 움직임과 돈 흐름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무기 중개상은 예비역을 노린다
무기 중개상이 정보를 얻고 인맥을 관리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가 예비역이다. 주로 장성급이나 영관급 장교 중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영입한다. 이들은 ‘고문’이라는 직함을 받는다. 정식 직원이 되고 월급을 받으면 연금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보수도 철저히 현금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일부 예비역은 군에 있는 선·후배를 만나 정보를 얻고, 자기 업체가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로비를 벌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맥이 잘못 활용되는 경우엔 엉터리 무기를 구입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쓸모없거나 수준 이하 무기를 구입하게 하거나 필요 이상의 고가 첨단 무기를 구입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전력 증강 계획 수립 초기부터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이미 마련된 계획과 일정을 바꿔놓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전문가 사이에선 “무기 중개상을 없앨 수 없다면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방사청은 말썽의 소지를 없애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0만달러 이상 무기 거래는 원칙적으로 무기상을 쓰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 군이나 무기 획득 관련자들은 무기 중개상을 만나지 말라고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군이 도입 무기 결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2년만 근무하고 전역할 장성을 무기 결정을 좌우할 핵심 보직에 앉히는 인사 운영 등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예비역이 현역에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진정한 전문성을 갖춘 중개상이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