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5-02-04 10:11:38
나는 5공화국 시절에 원로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평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柳達永 전 서울농대 교수는 1965년 제2한강교 준공식에 참석했었는데 박 대통령이 “앞으로 한강에 이런 다리를 열 개쯤 더 만들어야 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너무도 황당해 도저히 믿기지 않더라고 했다. 그렇지만 지금 한강에는 당시의 제2한강교보다 더 큰 교량이 10개가 넘게 건설되어 있다. 1982년 당시 국정자문위원이었던 許政 전 내각수반은 경주와 포항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야. 혁명한 군인이 어떻게 그런 안목이 있었는지 모르겠어. 도로, 항만, 도시, 산업시설, 문화재 보수 등 해놓은 사업을 보면 우리보다 훨씬 나았어.”
나는 노 정객의 이 말씀을 나름대로 사색해보곤 했다. 군인이 국가경영의 안목을 갖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는 전투를 낭만적으로 표현해서 오케스트라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가 지휘자의 지휘대로 일사불란한 연주를 해야 훌륭한 심포니가 될 수 있듯이 전투에 있어서도 각 병과가 주어진 임무를 오케스트라처럼 철저하게 수행해야 승리가 돌아오는 것이다.
[허정 전 내각수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필자]
전투시 고지를 점령하려면 먼저 포병의 포탄세례로 적진을 교란시키고 고지를 향해 전진하는 보병을 위해 공병이 교량과 도로를 개설하며 병기부대가 탄약과 무기를 지원하고, 병참부대가 유류, 식량, 피복 등을 보급하며 수송부대가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등 각 병과가 작전상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해야 전투의 승산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군에서 뛰어난 작전통이었다고 한다. 나는 박 대통령의 탁월한 군 작전 지식이 5·16 후 경제건설에 긍정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가산업 발전이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철(鐵)을 먼저 생산해야 되고 다음으로 석유화학공업을 육성해야 하며 생산물의 물류 이동을 위해 고속도로를 만들고 농업발전과 전력생산을 위해 다목적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식의 구상이, 관념이 아닌 경험의 실체로서 마치 군사작전 계획처럼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해 왔다.
우방 선진국이 경제건설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문가와 학자들이 개발계획을 구체화하는 데 참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최고 결정권자의 머릿속에 그 같은 구상과 청사진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지도력과 역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곽상훈(郭尙勳) 전 국회의장과 박순천(朴順天) 야당 총재가 말년에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데 대해 오해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름대로 깨끗하고 소신 있는 정치를 해온 이 나라 정통 야당의 두 거목이 개인의 이해관계나 사리사욕으로 그런 변신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청렴결백하고 성격이 대쪽 같아 ‘한국의 간디’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던 곽상훈전 민의원 의장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내가 5·16때는 일본에 있었어. 그때 나는 민주당에 대해 실망하고 있었는데 5·16이 나자 주변에서 귀국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귀국했어. 귀국하자마자 우석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 그래서 만났는데 그분이 열의를 갖고 혁명을 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말하는 표정이 진지하고 믿음직했지. 특히 그의 눈이 나를 사로잡았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지.”
박순천씨는 육영수 여사 사후 추모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일했는데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과 이야기하다가 육 여사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었다. 박 이사장이 육 여사의 고상한 자태와 특히 긴 목이 학처럼 매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그 학 같은 목이 1㎝만 짧았더라도 총탄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박 이사장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대통령이 얼마나 아내를 생각했길래 그런 이야기가 나오겠는가”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74년 8월 19일 육영수 여사 국민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박순천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 등 장례위원 일행을 8월 21일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베풀고 감사를 표했다.]
법무부 장관과 대한적십자 총재를 지낸 이호(李澔)씨는 1973년 8월에 김대중씨가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하여 납치되었을 때 일본 주재 한국대사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얼마나 시달리고 마음고생을 했던지 서울로 귀임했을 때 박 대통령을 귀임 인사차 찾아가 “각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했습니까”라고 다그치듯 말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대사, 내가 정말 몰랐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이야기 합니다”라고 하더란 것이다.
이호씨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김대중 납치사건에 박 대통령이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언제든지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고 했다. 신현확(申鉉碻)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은 만날 때마다 커 보이는 인물”이란 표현을 했다. 어떤 국정문제에 대해서도 한수 위에서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 총리가 옳다고 건의한 것을 박 대통령이 거부하면 ‘나보다 경륜과 정보가 나으신 분이니까 다른 배려가 있시겠지’하는 생각에서 승복하게 되더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사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감동시키기도 했다. 어느 해 박 대통령이 무역진흥확대회의에 참석한 기업 대표들과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효성그룹의 사장과 악수를 하면서 “조홍제 회장께서 입원해 계시다면서요. 꼭 안부를 전해주십시오”라고 했다. 병상에서 대통령의 말을 전해들은 조 회장은 기분이 좋아서 “적자를 봐도 좋으니 수출량을 늘리라”고 지시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효성물산의 사장으로 일했던 李忠善씨로부터 직접 들었다. 한때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었던 저명한 철학자 고 박종홍(朴鍾鴻) 서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을 지인들에게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내가 박 대통령과 일을 해보니 천재라고 하면 아부가 될 것이지만 그분은 적어도 수재는 넘는 분이야.”
출처-[J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