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제96주년 3.1절이다.
日本이 1868년 明治維新으로 개혁하고
西洋文物을 받아드려 눈부신 발전을 했다.
反面에 조선은 儒學으로 門戶에 빗장을 걸고 스스로 孤立되었다.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서 1910년 朝鮮은 일본에게 먹힌다.
그리고 9년 후인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일본은 조선을 먹기 위하여 1894년 淸日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마침내 1905년 大國 러시아도 물리치고
1910년에 조선을 병탄(倂呑)한다.
일본은 러시아의 極東함대를 쳐서
이에 격분(激奮)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명령으로
북유럽 발트海에 있는 거대한 '발틱艦隊'를 發進시킨다.
당시 발틱함대는 스페인의 '無敵함대'에 비견(比肩)하는
세계 最强의 함대로 꼽혔다.
1904년 10월 全艦 38척을 거느리고 발진한 함대는
1905년 5월 激戰地 대한해협에 當到한다.
무려 3만 7천㎞를 7개월동안 巡航했는데
지름길인 스웨즈運河를 영국의 반대로 건너지 못하고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함대는 이미 지칠대로 치쳤다.
그 당시 영국과 일본은 '英日同盟'을 맺은 동맹국이다.
불과 이틀간의 전투에서
발틱함대는 궤멸(潰滅)하고 단 2척만 살아서 歸還했다.
전사자 5천 명, 포로 6천 명을 남기고.
일본은 어뢰정 3척만 침몰하고 전사자는 7백 명에 불과했다.
승리의 장수는 일본의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入朗)' 提督이다.
이 전투의 패배로 러시아는 혁명의 導火線이 되었고
제왕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處刑당하고 王政이 붕괴되었다.
이 혁명은 社會主義 혁명으로 러시아에서 共産主義가 胎動되었다.
도고 제독은 국민적 英雄이 되었고
西方기자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는 逸話가 있다.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인정하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의 비교는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우수한 군함과 용감한 군대, 충분한 군수보급을 받았으나
이순신 장군은 최악의 불리한 전황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내가 어찌 감히 이순신과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나?
이순신이 장군이라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逸話가 있다.
발틱함대에는 軍資金을 실은 '돈스코이'함이 있었는데
그 배는 금괴와 골동품 등을 싣고 도망 가다가
東海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沈沒했다고 한다.
그동안 傳說로 내려 오다가
1999년 10월에 동아건설이 引揚을 시도했다.
그 당시 IMF로 어려웠던 동아건설은 이것으로 回生을 시도했고
실제로 株價가 많이 올랐다고 한다.
결국은 失敗하고 다음 해 11월 不渡처리되어 최종 마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