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란 책이 뒤늦게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경기 광주시 ‘나눔에 집’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에 의해 피소된 여파라고 합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책이 출간되고
10개월간 1500부가 팔렸는데 뒤 2개월 간 똑같이 1500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팔순 넘은 할머니들이 정말 이 책을 읽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할머니들을 돌봐온 ‘나눔의 집’ 측에서
발췌해 읽어준 부분만 보고 격노하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소송 관련 보도를 피상적으로 접한 분들도 감성적으로 할머니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비판을 위해선 일단 문제의 책을 먼저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선행되야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박 교수에
대한 비판의식이 드시는 분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는 이번 소송이 순수한 분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선 책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서평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던
‘나눔의 집’ 측이 1년이 다 돼서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둘째 소송이 제기된 시점이 총리후보자로 나선 문창극 씨의 일본군 위안부 폄훼발언으로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셋째 박유하 교수가 ‘나눔의 집’에 사시는 할머니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박 교수에 동조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소송제기가 이뤄졌습니다. 누군가 박유하 교수를 공격하기 위해 절묘한 타이밍을 계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 그와 맞서 싸우며
뒹굴다가 어느새 변해버린 자신을 확인할 때입니다. 지난해 8월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바로 제가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일본 우익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십니다. 저 역시 이 책의 앞부분만 읽고 살짝 거부감이 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제대로 몰랐던 부분에 새롭게 눈을 떴고 저자의 주장 중 상당부분에 공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에 장문의 서평을 실었습니다.
아래는 그 서평의 일부입니다. 부디 박유하 교수를 일본 우익의 앞잡이라고 쉽게 매도하기 전에 꼭 <제국의 위안부>를 먼적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월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 심포지엄에서 나란히 앉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교수가 박 교수의 주장을 지지한 것을 알고도 과연 박 교수를
'일본 우익의 대변자'라고 쉽게 폄하할 수 있을까?
8·15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를 다룬 책이라고 하면 선뜻 떠오를 통념을 무참하게 깨버린다. 한마디로 위안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잘못된 인식과 접근방식이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울컥했다. ‘뭐야,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매춘부라고 매도하는 가해자 일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건가.’
저자가 그런 천박한 일본 우익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인권침해 범죄의 책임이 일본제국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가난, 가부장제, 국가주의의 복합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를 무조건 일본의 국가범죄와 배상으로 연결지으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영원한 볼모로 잡아두는 짓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 한국인이라면 ‘아니 왜 우리가 연약한 피해자 편에 서서 오만한 가해자를 철저히 단죄하는 데 인색해야 하지?’라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작 우리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은 외면하고 일본에게 불리한 내용만 확대 재생산하는 기억의 조작으로 이뤄진 것이라면? 그래서 이해와
화해가 아니라 분노와 적대의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다면?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와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라는 책을 쓴 저자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일문학을 전공한 세종대 일문과 교수이다. 한마디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런 저자의 문제의식은 1990년 초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가 왜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는가에서 출발한다. 한국인들은 이를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린다. 저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던 문제를
키워놨고, 이로 인해 일본 우익뿐 아니라 이 문제에 죄의식을 느끼던 일반 일본인까지 염증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나름의 사죄와 보상을 했다. 일본
아베 내각이 들어선 뒤 그 존재가치가 새삼 부각되는 고노 담화(1993년)는 “군의 관여 하에서,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인정하면서 “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했다.
당시 무라야마 내각은 한발 더 나가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해 위안부 1인당 200만 엔의 보상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보내고 7억엔 규모의 의료복지사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직접적 강제연행까지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 ‘구조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또 강제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자민당 의원이 세 배나 많은 국회를 통한 의원입법이 불가능했기에 민간참여를 앞세우긴 했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 돈(10년간 1000억 엔)으로
기금을 마련한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말로는 보상금으로 번역된 ‘쓰구나이’란 일본어 표현에는 죄를 씻는다는 속죄의 의미가 담겼다.
2003년까지 지속된 이 사업을 통해 필리핀 대만 한국의 위안부 285명이 속죄금을 받았다. 한국에선 모두 61명이 이를
수령했다(수령을 강력 거부하는 위안부 할머니의 숫자와 비슷하다). 이 기금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의 90% 가까이가 일본정부 국고에서 지출됐다.
일본군 위안소 입구에 붙은 격문. 왼쪽은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의
서비스’, 오른쪽은 ‘성전에서 대승한 용사를 대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야마토 나데시코는 ‘아름다운 일본 여성’의 대명사라는 점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결국 일본인 위안부의 대체제였음을 보여주는 한편 그들에게 신체적 위안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 요구했음을 보여준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문제는 갈수록 권력화하는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의 이런 속사정은 모른 채 ‘국회입법에 의한 국가배상’만
요구하면서 사태가 크게 꼬여버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를 과거 일본제국의 사과와 반성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우익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는 일본 진보진영의 ‘냉전적 사고’가 더해지면서 일본 우익의 내면에 잠들던 ‘악마’를 깨웠다는 것이다. 즉 당초 국민기금 설립에
반대하지 않던 자민당과 요미우리신문이 종전 입장을 번복하고 적극 반대로 돌아선 배경에는 일본인의 피로감과 반감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진짜 민감한 대목은 지금부터다. 저자는 위안부들의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일본군의 잔학성에 균열을 가하는 증언’들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들을 속여서 전쟁터로 끌고 가 학대와 착취를 일삼은 주체는 대부분 동포인 조선인 민간업자였다. 조선인 위안부는 19세기부터 등장한 일본인
위안부(가라유키)의 대체재로서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 위안부와 달리 특별취급을 받았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이 패망의 순간까지 보호하려 한
‘군수품’이었다면 다른 나라 여성은 마음대로 강간하고 죽여도 되는 ‘전리품’이었다. 상당수 위안부들은 역시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끌려와 죽음을
눈앞에 둔 일본군 병사에게 동병상련을 느꼈고 사랑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평균연령은 25세의 빈곤층
여성이었다.
하지만 우리 기억 속의 위안부는 ‘일본군 군홧발에 짓밟히는 가녀린 열다섯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다. 일제가
14세~25세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해 여학생들 중심으로 모집이 이뤄졌던 정신대와 혼동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묻는다. 착종된 이 이미지가 일본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면서 정작 동족을 팔아먹은 우리의 죄에 대해 눈감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 우리
대신 싸움을 벌이는 팔순 할머니들 뒤에 숨으려는 유아의식의 발로는 아닐까. 저자의 이런 도발적 주장에 수긍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을 매섭게 노려만 봐온 우리 자신의 모습도 한번쯤 거울에 비쳐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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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의 위안부> 표지 |
| ⓒ
뿌리와이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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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은 늘 자유롭지만은 않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때론 제한한다. ▲ 진실이 아니거나 ▲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면 무조건 자유를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 일부 내용이 이 세 가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책의 34군데를 삭제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다만 '박 교수 등의
접근·취재를 막아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일본문학을 전공한 박유하 교수는 2013년 8월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가 이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 ▲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묘사하고
▲ 일본의 법적책임은 없다고 서술하는 등 54곳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판매를 금지해달라고 지난해 6월 17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8개월 동안 심리한 끝에 재판부는 그들의
주장을 상당수 인정했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 채 성적 쾌락 제공을 강요당한 '성노예'에 다름없는
'피해자'"라는 대전제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문제의 34곳에서 묘사하는 위안부의 모습이 이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삭제 대상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19쪽 : 센다는 '위안부'를, '군인'과 마찬가지로, 군인의 전쟁
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중략)… 어떤 책보다도 위안부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32쪽 : '가라유키상의 후예(19세기 후반 해외 성매매에 종사한 일본
여성을 가리키는 말).'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265쪽 :
조선인 위안부는 같은 일본인 여성으로서의 동지적 관계였다(기자 주 - 일본군의 동지라는 의미).박 교수는 이 표현들이
자신의 학술 연구 결과며 개인 견해라고 말해왔다. 또 일부 문구가 아닌 전체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명예훼손으로 지적된 54항목에 대한 답변서'에서 가라유키상의 후예라는 표현의 경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 본문에 많은 근거 자료를 기술했다고
해명했다.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동지였다는 서술은 사실이라며 "이 역설을 인정해야 그 피해를 바로 볼 수 있다"고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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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지난 17일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일부 내용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모두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판매 등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는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삭제를 거부했고, 이 책은 '금지도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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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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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문구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사실을 부정한데다 그들이 피해자라는 "본질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 내용들이 진실하거나 공익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결국 해당 대목들을 삭제하지 않은 채 <제국의 위안부>가 계속 판매·배포된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가 훼손당할 우려가
있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란 말이 집단을 가리키긴 하지만, 정부에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는 238명, 현재
생존자는 53명인 점을 볼 때 피해자는 특정된다고도 판단했다.
그런데 왜 일부분은 삭제 대상에서 빠졌을까. 재판부는 해당 문구들은
앞뒤 맥락 등을 볼 때 대부분 박 교수의 의견 표명이라고 봤다. 박 교수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책임을 일본 국가에 물을 수 없고, 1차적으로는
매춘업자 등에게 지워야 한다고 서술한 부분 역시 그의 견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지만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안에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자유로운 토론' 대신 결국
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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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
| ⓒ 박유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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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견해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재판부는 결정문 끝에서 '시민사회 스스로의 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기대와 달리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법원 안에 있다.
당장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 박유하
교수가 삭제 결정을 거부함에 따라 자연스레 '금지도서'가 됐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21일 페이스북 글에서 "책의 일부를 삭제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자주적으로 '금서' 상태를 선택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34개 항목이 명예훼손 우려가 있으니 일단 판매금지요청을 받아들여 둔다는
것이고 명예훼손이라고 최종결론이 난 것도 아니다"는 이유였다.
공은 다시 사법부로 넘어갔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해 가처분 신청과
함께 박 교수 등에게 위자료 2억7000만 원을 청구했다(관련 기사 :
위안부 할머니들 "세종대, 박유하 교수 파면하라"). 이 손해배상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3월 2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표현은 끝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한 번 자유롭지 못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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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村幹 팬 되기 기무라 간, 일본 고베대 대학원 국제협력연구과 교수
'제국의 위안부' 출판 금지는 바람직한 일인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교수님, 한국에 가도 괜찮아요?"
한국 정치를 연구하고 있으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한국은 반일감정이 강한 나라니까, 일본인이 가면 피해를 당하지는 않겠냐는 취지일 것이다. 대학원생 때부터 25년 이상 연구 등으로 한일 간을 오가며 몇 번 장기 체류 경험도 있지만, 적어도 그때 일본인이라고 해서 갑자기 얻어맞거나 위협을 받은 경험은 전혀 없다.
과거에는 변두리 술집에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취객이 정치적 얘기로 시비를 걸어오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도 거의 없어졌다. 최근에는 한국의 대학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강의를 해도 "일본 교수의 의견에 도전하겠다"고 질문하는 학생도 없고 지하철 차량 안에서 큰소리로 일본어로 말해도 돌아보는 사람도 없다. 3월 1일과 8월 15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시위에 모이는 사람들도 적어졌다.
서울의 대형 서점에 가도 "반일 서적"을 찾기조차 어려워 한국 민족주의 연구자인 필자로서는 자료 찾기에 고생할 정도이다. 덧붙여서 말하면 같은 서점의 일본어 서적 코너에는 일본 내에서 출판된 "혐한 책"이 많다. 도대체 이 서점에서 "반일 서적"과 "혐한 책"은 어느 쪽이 더 많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논의의 공간이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회에서 그렇듯이 어떤 문제를 둘러싼 "열광의 종언"은 관심의 상실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때까지 사회에 공존해온 "특정 견해"가 "다른 견해"를 구축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특정 의견이 "이념적 헤게모니"를 잡은 것이며, 더 쉽게 말하면 "공고한 상식"으로 확립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사회 내부에서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첫째는 이 "상식"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는 대항 의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다른 견해를 제시하면 주위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경우 "상식"에는 그것을 신봉하고 또 보급하려고 하는 "조직"이 있다. "조직"은 때로는 "상식"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탄핵하고 그들을 이단자로 몰아간다. 그리고 한번 이단자 딱지가 붙은 사람은 사회 속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상식"이 유지되는 대신 사회는 유연성을 잃게 된다.
자, 한국 이야기로 돌아가자.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14년 6월 15일. "나눔의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9명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객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의 출판 금지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다음날인 16일에는 박유하를 "명예 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출판 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2014년 6월 17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문제 삼는 것은 박 교수가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다"고 쓰고, 또 "일본군의 성폭력은 한번만의 강간, 납치 후 성폭행, 관리하 매춘의 세 가지가 있었다. (중략) 조선인 위안부의 대부분은 이 중 세 번째가 중심이다"고 한 부분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유하는 일본에서도 <화해를 위해>를 비롯한 많은 저작으로 알려진 인물이며, 그 평가는 어쨌든 한일 간의 커다란 장애가 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쓴 서적을 읽어보면 알게 되듯이, 결코 센세이셔널한 발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출판 금지 요청된 <제국의 위안부>는 지난해 8월에 이미 출판된 책이며, 지금 단계에서 갑자기 출판 금지 청구를 낸 것은 상당히 기이한 느낌이 든다. 배후에 위안부 관련 운동을 둘러싼 지원단체와 박유하 간의 갈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만을 알 수 없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모든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 의한 "협의의 강제 연행"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 자신이 지난해 발표를 도운 전 위안소 종업원의 일기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위안부를 둘러싼 상황은 지역, 시대, 심지어 개개인에 따라 다르며 실제로 위안부들 자신의 증언도 한결같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 실상과 해결 방법에 대해 다양한 접근을 통한 분석과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자유로운 학문적 논의는 필수불가결하고,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힘으로 제압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문적 논의는 어디까지나 학문의 영역에 맡겨야 한다.
바꿔 말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사법 및 사회의 "상식"을 이용해 특정 논의를 봉쇄하려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규명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그 운동의 신뢰성을 스스로 크게 다치게 한다. 위안부 할머니나 지원 단체가 박유하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당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하면 될 뿐이다. 충분한 증거와 내용이 있다면 그들은 쉽게 박유하의 주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로 인해 자신의 견해의 올바름을 더욱 명확히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한일 간에 매우 중요한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여성 인권 차원에서 높은 관심을 모으는 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니까, 자유롭고 개방적인 자리에서 의논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일본에서의 논의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서로의 논의를 '민족주의적 터부'로 봉쇄하지 않고 어떻게 투명하고 공정한 환경에서 진행할 수 있는가.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갈릴레오로부터도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말하는 자유를 절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보다 더욱 큰 것, 즉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