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오패의 으뜸으로 치는 제환공(齊桓公)에게는 관중(管仲), 포숙(鮑叔) 그리고 습붕(隰朋)이라는 충성스런 신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수초(竪貂), 역아(易牙), 개방(開方)이라는 세 사람의 간신배도 있었다.
그 중 수초(竪貂)는 웬만한 계집아이 보다 더 예쁜 미소년이 있었는데 환공이 사랑하는 동자(童子)였다. 내정(內庭)에서 환공을 가까이 모시기 위하여 밖에서 왕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해서 스스로 제 불알을 거세한 후 내궁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환공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더욱 총애하고 믿어 자기 곁에 잠시도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때로는 아름다운 비빈을 멀리하고 가끔씩 이자에게 수침(睡寢)을 들게 하여 운우지락을 나누었다는 기록도 있다.
역아(易兒)라는 놈은 또 어떤가? 제환공이 중원에서 한참 큰 소리를 칠 즈음이다. 패자 된 입장에서 모든 영화를 누렸지만, 자신은 아직 사람고기를 먹어 보지 못했노라고 농담을 한다. 일종의 궁중 요리사 비슷한 직책을 가지고 있던 역아가 이 말을 들었다. 다음날 아름다운 옥쟁반에 제환공으로서는 처음 보는 음식이 담겨 올라온다. 맛나게 먹은 제환공이 트림을 하며 일찍이 이런 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며 무슨 고기요리냐고 묻자, 역아는 그것이 자신의 아들을 잡아(?)요리한 것이라고 이실직고한다. 그 후 제환공은 역아를 수초라는 간신배와 항시 옆에 두고 권력의 단맛을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 개방(開方)은 원래 위(衛)나라 공자로서 왕족이었다. 그런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병든 제 어미를 한 번도 찾지 않고 15년 간 수초 역아와 함께 제환공 옆을 떠나지 않고 아첨을 떨었다.
그런데 얼마 후 관중이 죽음에 임박하자, 제환공은 그에게 후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러 간다. 그러자 관중은, “임금의 말씀이 없어도 신이 장차 말하려했습니다. 원컨대, 임금께서는 수초(竪貂), 역아(易牙), 개방(開方)등 3인을 멀리하십시오. 역아는 인육을 맛보지 않은 군주의 미각을 위해 그 아들의 몸둥이를 삶아 내놓았습니다. 무릇 인정(人情)으로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 만한 것이 없는데, 지금 그 자식을 아끼지 않는데 어찌 임금을 능히 아끼겠습니까? 임금이 시샘이 많고 궁내의 여자들을 좋아하니 수초는 스스로 거세를 하고 그들을 관장하였습니다. 또한 인정으로 자기 몸을 아끼는 것 만한 것이 없는데, 어찌 임금을 능히 아끼겠습니까? 개방은 임금을 15년간 섬기면서 제(齊)나라와 위(衛)나라 사이가 며칠거리임에도 그 어머니를 버려두고 오래 벼슬하며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어머니를 아끼지 않는데 어찌 임금을 능히 아끼겠습니까? 신(臣)이 듣기로, 밖으로 꾸미는 것은 길지 않고 텅 빈 것을 숨기는 것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컨대, 임금은 이 세 사람을 물리치십시오.”그리고 관중이 마침내 죽자, 제환공(齊桓公)은 이를 행하지 않다가 죽음을 맞았는데 결국 세 놈의 간신배 일당에게 감시 유폐 당하여 그 시체가 구원파 교주 유병언처럼 구더기의 밥이 되어 백골만 추리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패자(覇者)고, 영화고, 권력이고 한낱 물거품일 뿐이었다.
오래 전 ‘왕의 남자’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해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대충 통박을 굴려보면 연산군의 학정과 변태적 생활상을 그린 게 아니겠나 싶다. 변태적이란 동성애를 말함이니 옛날에도 게이(남성 동성애자)가 있었는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얘기 하자면 ‘있다’다. 비교적 권력형의 동성애자가 많았다. 특히 고대의 중국에선 동성애에 대해 많은 호감과 관대함을 가졌던가 보다 중국 속언에 대장부라면 남색은 한번쯤 즐길만하다고 여겼단다. 여기서 남색(男色)이란 남자가 여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원하는 것으로 일종의 동성애이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비역’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동성애의 상대가 되는 예쁘장한 남자아이를 연동(姸童)이라고 하며 풀이해보면 아름답고 순종하는 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