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말했듯이 이들은 동시세대이다.
필자는 1950년대생이고 흔히 말하는 베이비부머이자 이제는 거리로 내몰리는 세대이지만 요즘 어느 방송에서 7080이라니라고 묶어서 표현하는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내가왜 80이란 아이들과 묶여야 하는가.
한국의 1970년대는 산업사회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방황이 극을 이루던 시대였다. 작가들은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했고, 그것은 곧 그들의 작품 속에 생생하게 반영되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해일의 <겨울 여자>, 박범신의<죽음보다 깊은잠>, 한수산의소설 또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은 모두 당시의 특이한 세태와 풍경을 담은 1970년대의 대표작들이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먼저 그 분야의 선구자로 등장한 작가는 1970년대 초 한국문단에 소설 붐을 일으켰던 최인호이다. 재치 있고 리드미컬한 문체로 한국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던 최인호는, 바보들의행진에서 산업사회와 군부독재?라는 두 가지 억압구조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던 당시 대학생들의 삶과 의식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아직은 대학생들을 인탤리라고 불러주던 6~70년대에는 학생들이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고 치고 그들또한 자부심도 있었다고본다.
사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우리 대학생들은 산업사회의 비인간적인 세태와 숨막히는 정치적 억압의 틈바구니에서 바보처럼 살아가야만 했다고 쳐주고. 그것이 싫은 사람들, 그래서 대학을 그만두는 사람들에게는 즉각 징집영장이 날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휴학계를 내고 입대하기도 했다. 대학에 녹화사업? 녹색운동이라는것이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부인하면 안된다.
도시산업 선교회가 학생들을 앞세워서 어느기업에 침투하면 그 기업은 당연히 망한다는 철칙! 그러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유토피아적 <이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숨막히는 <현실>이었다고도 쳐주자. 왜냐하면 어떤 면에서는 <군대>야 말로 가장 비낭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현실이었으며, 정상의 젊은이라면 무조건 가야하는 피할수없는 모든 비극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대학을 떠나 군대로 가는 병태는 결국 또 하나의 바보짖을 하러 가는 셈이 된다.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동해바다의 고래>는 젊은이들이 추구했던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없다. 이 세상에는 다만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공간만 있었을 뿐이다. 스무살무렵 필자도 군대라는 현실과 비록 불확실한 앞날이지만 미래에대한 갈등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도 했었다.
최인호의 이 소설은 요절한 하길종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또 다른 생명을 가진 작품으로 태어났다. 최인호의 순발력 있는 문장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길종 감독은 그 대신, 영화의 매장면을 재치있고 심도 있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불필요한 무거움과 오버액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부분의 문예 영화와는 달리, 영화 바보들의행진은 경쾌하고도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는 사회비판과 시대정신이라는 중후한 주제를 도처에 깔아놓고 있다. 예컨대 장발단속 경관들과 장발족들의 쫓고 쫓기는 경주, 교수들의 권위주의와 무기력함, 텅 빈 강의실과 북적거리는 학사주점, 대학과 군대의 비교, 동해바다의 고래, 상징적인 대사들,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깔린 저항가들은 모두 하길종 감독의 예리한 감성과 뛰어난 재능이 살려낸 원작의 중요한 주제들이다. 아이러니와 풍자로 점철된 원작과 영화 둘 다에서, 억업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들과 관객들은 마치 1960년대 반전가수 존 바에즈의 저항가를 들을 때처럼, 그 억압의 주체가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곧 바보들의행진이 문학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인호의 소설에 늘 등장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부단한 충돌과 갈등이다. 이것은 그가 대학을 다녔던 한국의 1960년대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가 충돌하던 혼란의 시대였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젊음을 억압 속에서 보내야만 했던 당시 세대들은 스스로를 흔히 쪼다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그들은 낭만과 희망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바보짖을 하던 세대들은 지금 어느덧 오륙십대가 되어, 이제는 자녀들과 제자들이 또 다른 너무나 빡빡한 현실에서 힘들어 하는것을 보고 있다.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살아 남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역사의 반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40년이흐른 지금에와서 짚어볼것은 1970년대 초중반 청바지와 생맥주 통키타로 대표되는 당시의 젊은이들은 비록 현실이 암울하더라도 미래에대한 꿈이 있었으며 그들이 학교를 나가서 사회로 포함되더라도 학생때의 자부심(당시에만 하더라도 대학생을 인탤리라고 지칭한 사회)이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발전과 가정을 위해서는 세계 어느곳에서도 못할일이 없었다.
통칭 1930년대생들의 서독행 1940년대생들의 목숨을건 베트남행 1950년대생들의 보리밥에대한 마지막 기억은 대한민국이란 역사에서 우리를 슬프게하는 현실이었다.
바로 그들이 1970년대 초중반에 청년문화를 꽃피운 1950년대생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베트남에서 목숨을 걸어놓고 일한것에 대해 선배들에게 존경도 할줄 알았고 우리 자신들또한 열사의 사막에서 망망대해의 원양어선에서 열정으로 일도 했었다.
한마디로 1950년대 생들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낭만세대이며 산업화의 마지막 세대이다. 흔히 말하는 486세대가 지금 우리 정치권에 중추로 자리하고 있지만 필자는 그들을 경멸한다. 486새대는 공부는 뒷전이고 이미 어느정도 먹고살만한 시기에 대학을 같으며 그들은 소위 민주화에만 빠져서 아직도 투쟁을 부르짖던 1980년대의 사고방식에서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그들의 머리속에는 인간적이자 휴머니라는 단어가없고 오로지 나외에는 무찌르고 타도해야하는 대상이라고보는것는 얼치기 좌파학자 리영희같은 인물과 슨상님이란 인간의 영향이 지대한다고본다.
학문적인 깊은 지식은 없지만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장래에대해 고민을하고 국가도 가끔 생각했고 군대도 같다온 젊은날이었다는것.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한번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시절....
어느국가이든 지도자를 잘 만나느냐 잘 못만나느냐는 지금의 남북을보면 다섯살짜리 아이도 금방 답을낸다. 세상에 무궁무진한 자유가 주어지는곳은 천국도 극락도 될수없다는말로 횡설수설의 글을 마감한다.
사족: 위의 글에서 1970년대당시 학생들이 불편하게 살았다는 표현은 일반적인 말이지, 필자는 장발단속과 통행금지 이외에는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문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가고싶었던 열망이 가득했기에 그쪽의 고민이 더 깊었다는것, 그것이 내가 지나온 70년대였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올수없는....공부와 사랑과 고래를 생각했던...
기억하는것- 70년대 초반에 우리가 경제적으로 북한을 추월했으며 중반에는 보릿고개가 사라졌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