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은 '논리(論理)'보다 '의도(意圖)' 즉 본 뜻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는 논리의 싸움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속내는 이해관계의 끊임없는 충돌이다. 논쟁의 핵심도 항상 권력구조 변경 문제다. 헌법을 정치의 종속변수쯤으로 치부하는 우리의 정치문화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권력이 바뀌는 시기마다 예외없이 개헌 이야기가 튀어 나온 까닭이다. 이번에는 새정부가 출범한지 반환점도 안돌았다는 점으로 보면 정황상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큰 권력이든 작은 권력이든 권력교체기마다 개헌 논의가 나오는 것은 운동경기를 할 때마다 선수들이 룰을 고치자는 말과 같다. 선수가 링 규칙 안에서 싸워 이길 생각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링의 규칙을 바꾸는데만 신경쓴다면 안될 말이다. 그래서는 경기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예컨대 개헌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의 경우 "개헌은 시대정신이다"라고 주장하며 개헌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일부 여야 의원들이 정치적 헤게모니와 맞물려 동참하고 있다.
이번에는 김무성 대표가 총대를 맨 듯하다. 김 대표는 최근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질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론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라며 제동을 건 지 열흘 만에 여당 대표가 외국 방문 중에 개헌 논의 불가피성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비롯한 국정 주요 현안에서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은 경제살리기와 민생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북핵과 맞물린 한반도 주변정세는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 와중에 세계경제 침체의 장기화는 국민경제와 민생의 바탕이 되는 펀더멘탈(경제기초)다지기도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도 모자랄 여당 대표가 시기상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 개헌론을 의식적으로 꺼내 놓고 치고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노림수는 무엇이었을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대권 의지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권의 권력 지형을 개헌 찬반그룹으로 나눠 이에 반대하는 친박계를 솎아내는 동시에 당내 차기 구도를 본인 중심으로 확실하게 재편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집권당 대표가 정권 2년차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개헌 이슈를 던진 것을 두고 이명박 정부 당시 세종시 수정안 이슈로 각을 세웠던 박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평소 킹메이커 역할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지만 상황에 따라 여차하면 치고 올라가겠다는 정치 포석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헌론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은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이다. 공론화될 경우 메가톤급 이슈가 될 수밖에 없고, 경제와 민생이 뒷전으로 밀릴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민심은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국정지지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치고빠지기 개헌론 주장은 영락없이 타초경사(打草驚蛇) 모양새다. 김무성 대표는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하지 말고 어심(御心)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