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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사회주의1, 재정스런 설문조작따라 조희연의 평가조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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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이며 허구인 사회주의는 선동이론과 실천이론이 따로있어 사악하며 설문과 평가결과를 조작하는 수법이 성공회대스럽다.
괴물형 좌익전과자교수들을 지원한 좌편향 성공회대 후원 재벌, 한화그룹 김승연은 대한민국 국민께 사죄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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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마음교육연구소부모마음출판국부모마음교육학부모회부모마음호국시민연합부모마음호국학생연합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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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등교를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는 설문이 아닌 ‘등교시간은 9시, 9시10분, 10시 중 택하라’는 식이었으며 이를 택한 것은 찬성으로 둔갑한 듯했다. 결국 거짓선동을 위한 설문이 경기도민의 의사인 냥?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자신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이재정 교육감의 놈현스럽고, 성공회스런 행태였다. 이예 뒤질세라 조현스런 자사고평가는 뻔뻔한 선동질였다.
이들이 만난 것은 김승연 한화그룹 이사장의 재정적 지원을 듬뿍받던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이 조희연을 채용하면서부터이다. 이재정의 기독사회주의에 동참한 좌익교수들이 흩어진 빨치산이 모여들 듯 성공회대라는 아지트에 모여 김일성을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으로 찬사하며 反시장과 反대한민국을 논하며 좌익진영의 씽크탱크가 되었는데도 정부는 심각성을 모른체했다.
“교수들의 옥살이 횟수를 모두 더하면 육십갑자를 넘는 대학이 성공회대”라는 성공회대 교수를 보면, 통혁당 빨갱이 신영복 채용이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박성준(한명숙 前 총리의 남편),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진영종, 김일성을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으로 찬사한 한홍구,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권진관과 이종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영환,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임규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백원담 등이 성공회대 교수로 차례차례 영입됐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로 첫손에 꼽히는 김수행 교수 또한 서울대 정년퇴임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됐다.(미래한국 기사 발췌)
이렇게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동지(同志)들이 한 장소에 모이자 어마어마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였고 교육감으로 까지 되어 이제는 설문조사 왜곡에 평가왜곡 등에 이어 어떠한 괴물형 행동이 나올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폭탄 같은 놈현스럽고 재정스럽고 조현스런 존재가 되었다.
요즈음 자유교원조합은 정부여당도 야당도 아닌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전교조나 전교조교육감들의 행태를 보면 울화가 치밀지만 근거를 바탕으로 알려드릴 뿐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자유교원조합과 2013년7월18일 체결한 ‘국민의례 의무화 및 헌법굥규과 안보교육 강화’등이 포함된단체협약을 성실히 이행하여 좌익세력의 난동을 막고 현상황을 타개하기 바란다.
또한,
성공회대 교수채용시 아예 교도소 갔다온 것은 가산점이며, 교수들의 교도소 경력이 육십갑자를 넘었다는 말이 자랑인 사악한 反시장과 反대한민국 지향의 좌익사상에 빠진 교수들 아지트격인 성공회대를 대한민국 국방을 위해 화약을 만들고 시장경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재벌그룹인 한화그룹이 지원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해 한화그룹 김승연에게 사죄요구를 한다.
이재정과 조희연의 교육감 출마소식을 듣고 이들에 대해 알아보다가 우연히 미래한국의 ‘反시장을 지원한 재벌’, ‘성공회大의 어떤 성공, 그들은 어떻게 좌파 지식계의 본산이 됐나’라는 기사를 읽고 어안이 벙벙하고 혼란스러웠다. 이재정과 조희연의 성향을 알고는 우국지사들과 한화그룹 앞에서 일인시위라도 돌아가며 하자고도 했으나 실행은 못했지만, 꼭 해야 될 것 같다.
꼭, 한화그룹의 답변을 듣고 싶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이하 대생) 인수에 대한 특혜 의혹’이 보상이었는지, 아니면 순수한 김승연의 의지였는지?, 한화그룹은 대답해야 할 것이다. 또, 광우난동반역시위에 생수와 빵과 음료수를 대거 지원하고 좌익세력을 지원한 재벌들도 반성과 사죄 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한다면, 反대한민국이 아닌 더 좋은 대한민국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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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교장들 "조희연식 자사고 평가는 인정할 수 없다"
(상보)서울교육청 '종합평가' 거부… "면접권 박탈하면 부유층 자녀만 올 것"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 |입력 : 2014.07.29 15:07
자율형사립고 교장들이 "진보교육감들은 일반고 살리기를 빙자한 자사고 말살 정책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자사고교장협의회는 2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를 탄압하는 일체의 부당한 행위에 강력히 연대해 행동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진보교육감들은 각종 협박으로 2015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방해하지 말라"며 "교육감들의 대책 없는 무분별한 정책으로 자사고의 신입생 선발에 영향을 끼치려는 교육감답지 못한 행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면접권 박탈 방침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사고 49곳 중 25곳이 위치한 서울의 경우 25곳 중 14곳이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이다. 배재고 교장인 김용복 회장은 "면접권 박탈은 자사고를 지원하려는 중2·3 학생과 학부모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해서 지원을 하지 않도록 해 자사고를 고사시키려는 유치한 전략"이라며 "면접권을 폐지하면 자사고는 돈 많은 자녀들만 오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사고에서 면접권 존속을 주장하는 이유는 건학이념과 교육프로그램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종합평가를 거부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김 회장은 "법으로 규정돼 있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협의해서 이뤄진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 받을 이유는 없다"며 "조희연식 평가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조 교육감은 1차 운영성과평가와 2차 공교육영향평가 지표를 재검토한 뒤 10월 말까지 종합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협의회는 △안산 동산고의 재지정 취소 철회 △광주 송원고의 조건부 재지정 철회 △ 조희연식 평가와 면접권 박탈 철회 등을 해당 교육감에게 요구하면서 "사학의 자주성을 보장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양한 형태의 학교는 미래 사회를 위한 실험적인 교육정책의 적용과 인재 양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진보교육감들의 자사고 탄압은 사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해서 학교와 학생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협의회는 지역별 자사고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진보교육감들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는 추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협의회는 사건에 대해 논하는 것이지 아직까지는 사람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일의 진행에 따라 사람을 논하게 될 때가 오면 다시 밝히겠다"고 말했다.
[서진욱 기자 트위터 계정 @shineway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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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시장’을 지원한 재벌, 한화
김승연 회장이 좌편향 성공회大의 후원자가 되기까지
2014년 04월 04일 (금) 09:28:57 이원우 m_bishop@naver.com
<장면 1> 지난 3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어느 교수가 ‘병든 사회 아픈 교육’이라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주인공은 조희연 성공회대학교 교수.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조 교수의 출판기념회에는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前 참여연대 대표, 안경환 前 국가인권위원장,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의 좌파 인사들이 ‘총출동’하며 큰 화제가 됐다. 이후 조 교수는 3월 18일 서울시교육감 좌파 단일화 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장면 2> 지난 3월 24일 경기도교육청 브리핑 룸. 어느 거물 인사가 경기도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주인공은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
혁신학교의 ‘저작권자’인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상황에서 이재정의 출마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택이었다. 총장을 지내며 성공회대를 어엿한 4년제 종합대학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 자리에서 “김상곤 前 교육감의 정책을 계승해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장면 3> 지난 3월 27일 김포공항. 어느 회장님을 태운 전용기 한 대가 미국을 향해 이륙했다. 탑승한 사람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는 2012년 8월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된 뒤 만성폐질환, 당뇨, 헛것이 보이는 섬망 증세 등을 이유로 2013년 1월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한때는 ‘위독설’까지 돌았다.
올해 2월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풀려난 그는 50억 원의 벌금 및 3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사회봉사 연기를 신청했다. 그리고 ‘빠른 치유를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다. 2007년 폭행사건으로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받은 뒤에는 일본으로 날아갔었다.
위 세 장면의 주인공은 각각 조희연, 이재정, 김승연이다. 언뜻 보면 제각각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물들 같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교집합이 있다. 정답은 ‘성공회대’다.
교수들 옥살이 햇수를 더하면 ‘육십갑자’
1534년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후 영국에서 설립된 성공회(聖公會) 교파는 1890년 무렵 한반도에 진출했다. 1914년 4월 대한성공회는 인천 강화에 성 미가엘 신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1961년 현재 위치인 구로구 항동으로 이전해 1982년 천신신학교, 1992년 성공회신학대학, 1994년 성공회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신학대학으로 설립된 성공회대는 현재 어엿한 ‘4년제 IN서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한 상태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얻으며 서울 소재 대학교에 진학을 꿈꾸는 수험생들의 진지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의 드라마틱한 혁신과 성장이 가능했던 데에는 탁월한 리더 한 사람의 공헌이 컸다. 그가 바로 이재정 前 총장이다. 성 미가엘 신학원 출신이기도 한 이재정 교수가 부임하면서 이 학교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그는 성공회대의 총장을 지냈고 2006년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다(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경기도교육감 후보).
문제는 이재정의 혁신이 오로지 ‘왼쪽 방향’을 향해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시작은 좌파성향 교수들을 대폭 영입하는 일부터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1988년 임용된 신영복이다. 1968년 발생한 역사상 최대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20년 복역 후 출소해 성공회신학대학에 임용됐다.
이재정이 신영복 다음으로 영입한 인물이 바로 현재 서울시교육감 후보인 조희연 교수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는 그는 성공회신학대학에 자리를 잡으며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박원순 現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외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박성준(한명숙 前 총리의 남편),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진영종, 김일성을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으로 찬사한 한홍구,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권진관과 이종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영환,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임규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백원담 등이 성공회대 교수로 차례차례 영입됐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로 첫손에 꼽히는 김수행 교수 또한 서울대 정년퇴임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됐다.
“교수들의 옥살이 횟수를 모두 더하면 육십갑자를 넘는 대학이 성공회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퍼지는 사이 성공회대는 하나의 교육기관인 동시에 한국 좌파진영의 싱크탱크로 발돋움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동지(同志)들이 한 장소에 모이자 어마어마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2010년 박원순 변호사는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고 싶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성공회대는 캠퍼스도 작고 대학 규모도 작다. 양으로 따지면 그렇다. 그러나 질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아주 큰 대학이다. 거기에는 좋은 교수님과 좋은 커리큘럼이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미래의 비전이 있다. 내가 다시 젊어 대학을 간다면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성공회대 이사장 김승연의 ‘업적’
성공회대의 ‘성공’적인 혁신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혁신(innovation)에는 인재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우선 성공회대에 인재가 넘치도록 풍부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다. 시간 또한 충분했다. 이 학교의 좌편향이 시작된 시점을 1988년 이재정·신영복 임용으로 잡는다면 지금까지 28년의 시간이 투입된 셈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충분한 시간은 성공회대를 한국 좌파진영의 굳건한 ‘본부’로 성숙시켜줬다.
문제는 돈이다. 혁신에는 돈이 든다. 성공회대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혁신을 가능케 한 자금의 원천은 어디였을까.
학교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면 성공회대의 성장에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그룹 중 하나인 한화그룹(회장 김승연)이 깊게 연관돼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 시장경제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하며 자유와 경쟁, 개방과 친숙할 것 같은 한화그룹이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학풍으로 유명한 성공회대학교를 지원해왔다는 점을 아이러니라 해야 할까, 패러독스라 해야 할까.
접점의 출발점은 김승연 회장의 선친인 故 김종희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천안 출신으로 1952년 한국화약주식회사(현 한화그룹)를 창업한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공회 신자였다. 세례명은 디도. 그는 인천공장 내에 ‘성 디도 채플’이라는 기도실을 운영해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유도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였다. 1981년 영면 이후 영결식도 서울 정동 대성당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거행됐다.
김종희 회장의 장남으로 1952년 천안에서 출생한 김승연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성공회 사람들과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김 회장의 세례명은 프란시스. 2011년에는 자신의 세례명을 딴 성 프란시스 성당을 충북 보은 화약공장 내에 건립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8년 신영복과 이재정이 교수로 부임한 시점부터 김승연은 성공회대 이사 중 한 사람으로 선임됐다.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김승연 회장 역시 성공회대 ‘1988년 체제’의 주역 중 하나였던 셈이다. 그리고 성공회대의 실질적 CEO라고도 볼 수 있는 이재정과 한화그룹 CEO 김승연의 접점은 차츰차츰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켜 나간다.
1996년 김승연 회장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기업구조조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6월 16일 뜻밖에도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김 회장은 “재계가 국민적 합의 속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면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재야인사 영입을 물색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영복을 고른 것은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이는 당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또한 자문위원 물망에 올랐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한 달 전인 1996년 5월에는 성공회대 개교 82돌 기념식에서 공로패를 받기도 했던 김승연 회장은 1997년 4월 28일 성공회대의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2001년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하기도 했다. 이후 2003년 이사장직에서 퇴임할 때까지 6년간 한화와 성공회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DJ정부와 참여정부를 가로지르는 이 시기야말로 한국 사회의 좌경화와 성공회대의 좌편향이 동시에 진행된 기간이다. 그리고 2002년 한화그룹은 모두의 예상과 상식을 깨고 대한생명을 인수함으로써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 이후 DJ정권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공회대 승연관
대학본부 이름이 ‘승연관’인 이유
한화와 성공회대가 구축한 긴밀한 관계의 흔적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성공회대의 아담한 캠퍼스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대학본부 건물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김승연 회장의 이름을 딴 ‘승연관’이다.
이 작명에는 이재정 당시 총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만큼 김승연 이사의 이름을 건물명으로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살아 있는 대기업 총수의 이름을 대학 건물 이름으로 정하는 파격은 당시로서도 드물었다. 한화건설은 성공회대의 새천년관 건립공사를 하기도 했으며 공사대금 140억 원 중 10억 원을 깎아준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새천년관의 머릿돌에는 김승연 회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재정과 한화 사이에 ‘아름다운 10억’만 오간 건 아니었다. 2004년 1월 28일 법원은 이재정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화그룹으로부터 대선 불법자금 10억 원을 양도성예금증서(CD) 형태로 수수 받아 노무현 후보 캠프에 전달한 혐의였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의 불법 대선자금이 노무현 후보 측 캠프에 전달된 사실이 밝혀진 건 그때가 처음이다. 국회의원이자 대학 총장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사제인 이재정이 불법자금 혐의에 관련됐다는 것 또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0억 수수 이재정의 거짓말
이재정은 당시 “내가 한화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법원은 불법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으로써 이재정은 풀려났다. 2006년 12월엔 참여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장관 청문회 당시 이재정은 북한인권과 관련된 질의에서 “저 내용들(북한인권 유린)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최근엔 김정일-노무현의 2007년 정상회담과 관련해 “NLL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국정감사장과 방송에서 증언한 바 있으나 허위로 드러나며 위증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세례를 받을 때 대부(代父)로 서기도 했던 사제다.
이재정 前성공회대 총장
한편 김승연 회장과 성공회대의 관계는 2007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는다. 계기는 세간에 잘 알려진 보복폭행 사건이다. 대기업 총수가 직접 나서서 폭행에 가담한 사실은 한국 사회를 넘어선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당시 공판장에 환자복 차림으로 휠체어까지 타고 등장한 김 회장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 재벌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성공회대 학생들은 모교가 폭행사건의 가해자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점에 대해 격하게 반응했다. 승연관의 유래가 김승연 회장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당장 건물 이름을 바꾸라는 시위에 돌입했다. ‘승연관’이라 적힌 안내판이 낙서로 훼손되는 사건도 있었다. 학생회까지 나서서 항의 집회를 주도했지만 2014년 현재까지 성공회대 대학 본부 건물의 이름은 승연관이다.
김승연 회장은 더 이상 성공회대의 이사장이 아니지만 둘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성공회대 학교식당을 한화 푸디스트가 운영한 것도 그렇지만 경영학부에는 한화가 운영하는 갤러리아백화점 인턴과정이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성공회대 경영학부 3~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화점 업태 이해와 함께 실무 현장 체험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취업난이 고착화된 상황 속에서 성공회대 진학을 고민하는 수험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反시장’ 학교 졸업 후 ‘명품백화점 인턴’
이재정과 김승연의 좌편향적 혁신에 대한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좌편향적 학풍이 압도적인 학교에서 反시장의 이데올로기를 학습했다가 명품백화점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갤러리아백화점으로의 취업을 타진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수십 년간 지속돼 온 한화와 성공회대, 재벌과 反시장의 기이한 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2013년 6월 27일 한화갤러리아노동조합은 설립신고를 완료하고 조직화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김승연 회장은 미국으로 날아갔지만 그가 구축해 놓은 친시장과 반시장의 기묘한 협동은 한화그룹, 나아가 재벌의 의미에 대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시교육감과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성공회대의 상징적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 것은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웅변해 주는지도 모른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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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 그 영욕의 길 · 성공회大의 어떤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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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大의 어떤 성공, 그들은 어떻게 좌파 지식계의 본산이 됐나
2014년 03월 24일 (월) 09:01:41 이원우 m_bishop@naver.com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임을 믿는다.”
성공회(聖公會) 신자들의 기본 교리 중 하나다. ‘성공회’라는 명칭 자체가 이 교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들어졌다. 1890년 무렵 한반도에 보급됐으며 탤런트 사미자 씨, 한화그룹 창업주 故 김종희 회장과 김승연 회장 등이 성공회 신자로 알려져 있다. 김승연 회장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이기도 했으며 성공회대 대학본부의 건물 이름은 지금도 ‘승연관’이다.
1914년 4월 대한성공회는 인천 강화에 성 미가엘 신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 폐교되는 위기를 겪지만 1961년 현재 위치인 구로구 항동으로 이전해 1982년 천신신학교로 이름을 재인가를 받으면서 4년제 대학학부 과정을 개설했다.
왼쪽으로만 ‘열림 나눔 섬김’ … 김승연 한화 회장이 지원
1992년 성공회신학대학으로 이름을 바꿀 때까지만 해도 2개의 학과(신학과/사회복지학과)에 한 학년 학생 수 100명에 불과했던 신학대학이었지만 성 미가엘 신학원 출신의 이재정 교수가 부임하면서 근본적으로 흐름이 바뀌게 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성공회대의 3대 교육이념은 ‘열림 나눔 섬김’이다. 하지만 이재정 등장 이후 성공회신학대학(이후 성공회대학교로 개칭)은 ‘왼쪽에만 열리고 오른쪽에는 닫혀 있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두드러진 것은 좌파성향의 교수가 대폭 임용된 일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1988년 임용된 신영복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쓴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신영복은 좌파진영에서 ‘우리 사회 지성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968년 발생한 역사상 최대의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20년 복역 후 출소해 성공회신학대학에 임용됐다.
그를 끌어들인 것은 물론 이재정이었다. 1988년 10월께 마당 세실극장 이영윤 대표의 소개로 신영복을 만난 그는 “전국에서 제일 작고 보잘것없는 학교인데 강의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이렇게 신영복은 성공회신학대학에서 ‘경제원론’과 ‘한국사상사’를 강의하게 된다.
이재정이 두 번째로 영입한 인물은 사회과학부 조희연 교수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는 그는 성공회신학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박원순 現 서울시장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는 활약을 한 조희연은 최근 2014년 6·4 지방선거 서울시교육감직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편 신영복과 함께 통혁당 사건으로 검거된 또 다른 인물로는 박성준이 있다. 신영복과 박성준은 북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을 받은 거물간첩인 김종태에 의해 포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태는 前 남로당원, 학생, 청년 등을 대량 포섭했으며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할 것을 계획했다.
김종태는 김질락을 포섭했는데 김질락은 위의 신영복을, 신영복은 박성준을 포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성준은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13년을 복역했는데 그를 옥바라지 한 것은 부인 한명숙 前 국무총리다. 출소 이후 박성준 역시 성공회대가 처음으로 만든 NGO대학원에 교수로 임용됐다.
이재정 前총장
“운동 경력이 우대사항”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진영종 부교수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했던 탓에 교수 임용이 힘들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으나 성공회대는 그를 받아줬다. 자신의 이력을 숨김없이 적어놓은 진영종에게 조희연 교수가 “이런 걸 쓰면 어떡하냐”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에 대해 진영종 교수는 “운동 경력이 우대사항이라고 해서 썼다”고 답했다(2006년 월간중앙 보도내용).
사회과학부 정해구 교수도 이재정 前 총장이 영입한 대표적인 좌파 학자다. 2005년 12월 2일에 열린 한국산업사회학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정 교수는 6·25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들 한국전쟁이 발발한 원인과 그 책임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이미 이 논의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정략적인 요소로 ‘오염’된 상태이다. (중략) 오히려 전쟁의 원인과 책임보다 국가와 전쟁이 과연 국민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인도주의와 평화, 인간의 차원에서 전쟁을 연구해야 한다.”
좌파 역사학계의 대부인 한홍구 역시 2000년 성공회대의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김일성에 대해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라고 찬사한 바 있는 한홍구는 200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깎아내리는 일 만큼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은 서로 더 많이 고무하고 찬양하자.”
조희연 교수
주요 이슈 발생 시 네트워크 과시
2013년 초에는 노원구청 주최의 강좌를 열려다 취소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문화평론가로도 활동하는 김창남 신방과 교수는 성공회대 07학번으로 편입한 방송인 김제동의 담당교수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2009년 KBS ‘스타골든벨’에서 김제동이 하차한 이후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순히 제작진 차원에서 김제동의 방출이 결정된 것은 아닐 거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김제동 본인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 정권(MB정권)의 치졸함이랄까 인간에 대한 예의 문제다. (중략) 연예인들에게 직접 시사프로를 맡기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기의 사회적 색깔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예인들, 사회자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허용 범위나 한계에 대해 이번 기회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외에도 1974년 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권진관, 이종구,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영환,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임규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 출신 백원담 교수 등이 성공회대 교수로 차례차례 영입됐다.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로 손꼽히는 김수행 교수도 서울대학교 정년퇴임 이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됐다.
“교수들의 옥살이 횟수를 모두 더하면 육십갑자를 넘는 대학이 성공회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퍼지는 사이 학교는 차근차근 ‘4년제 IN서울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했다. 1994년 이재정은 모교의 총장이 됐고 2006년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 前 총장은 2006년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북한인권 유린 관련 질의에 “민주화된 나라들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저 내용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2013년 8월 성공회대는 교육부 장관 자문기구인 대학구조개혁위원회(위원장 송용호)가 공개한 ‘부실대학’ 명단에 포함돼서 다시 언급됐다.
2014학년도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됐는데 그 즉시 정치보복 논란에 휩싸였다. 즉, 박근혜 정부가 좌파성향의 대학을 탄압한다는 주장이었다. 성공회대를 감싸느라 나온 반론이었겠지만 이와 같은 반작용 자체가 종합대학을 지향한다는 성공회대의 좌편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있었다.
성공회대 대학본부 승연관 건물
조희연 교수 “내 자식도 외고 졸업”
최근 서울시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조희연 교수의 지난 3월 5일 ‘병든 사회 아픈 교육’ 출판기념회는 성공회대를 중심으로 한 좌파진영의 막강한 인맥을 잘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재정 前 성공회대 총장을 필두로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前 참여연대 대표, 안경환 前 국가인권위원장,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신인령 前 이화여대 총장, 김세균 서울대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 등이 행사에 참여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교육단체 관계자들도 참석했으며 민주당 국회의원 정세균 유인태 남윤인순, 정의당 국회의원 심상정 박원석,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상규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조 교수의 교육감 출마는 처음일 뿐더러 그동안 교육계 인사로 분류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화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출마 선언 이후 조 교수의 공격은 당연히 현직 문용린 교육감에게 집중됐다.
“서울시내 혁신학교는 모두 67개교입니다. 문용린 교육감 이후 단 하나도 추가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숫자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문용린 교육감은 예산지원을 중단함으로써 혁신교육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역동성은 살려야 합니다. 혁신학교의 역동성을 살려야 교육에 역동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문 교육감은 이것을 죽였습니다.” (3월 5일자 오마이뉴스 인터뷰)
“미친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는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조희연 교수는, 그러나 본인의 자식도 외고에 진학시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제 자식도 외고를 졸업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고, 그렇게 친구들과 경쟁해서 승자가 됐다고 칩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돼요. 비정규직을 전전합니다. 설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금세 사오정이 됩니다.” 정말로 외고를 졸업한 조 후보의 자식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 돼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사오정이 될까. 조희연 후보와 그 동료들에게 언제나 손을 내밀어준 성공회대가 앞으로도 존속한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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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그 영욕의 길
2014년 04월 04일 (금) 09:38:45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empal.com
1937년 경기상업학교에 입학한 한 소년은 어느날 한국학생이 일본학생에게 얻어맞는 것을 봤다.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해 일본인 학생을 구타했고 그 사유로 퇴학을 당했다. 청년이 된 그는 194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상과 2년을 중퇴하고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한다.
1952년 서른 살의 젊은 사업가가 된 청년은 창업자가 돼 조선화약공판 입찰에 뛰어들어 인천 화약공장을 낙찰 받았다. 그는 폐허가 되다시피한 인천공장 입구에 자신의 회사를 세웠다. 바로 오늘 한화그룹의 모태가 된 한국화약이고 창업자는 바로 한화 김승연 회장의 부친 현암 김종희 회장이다.
김종희 회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1957년 다이너마이트 원료로 쓰이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생산했다. 이로써 다이너마이트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이후 한화의 인천공장은 경부고속도로 등 기간산업에 필요한 화약을 공급하며 2006년 가동을 중단할 때까지 폭약 124만 톤, 뇌관 11억 개, 도화선 7억7000만 미터를 생산했다.
1965년 한국화성공업을 설립하고 1968년 진해에 연산 1만5000톤 규모의 PVC 공장 및 PVC 가공 공장을 세웠다. PVC 제품은 국내 피혁, 철강재, 건축재료로 공급됐다. 특히 비닐하우스 공급으로 농업 증산에 기여했다. 1969년 경인에너지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사세를 넓힌 김 회장은 1976년 6월 ‘빙그레’란 상표로 아이스크림을 출시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한국화약은 충남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으로 성장해 갔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한국화약 김종희 회장의 지원을 받았고 그 대표적인 정치적 동업자는 바로 JP였다. 김종희 회장은 애국적 기업인이었다.
가업을 이어받은 김승연 회장
1981년 김종회 회장이 별세하자 아들인 김승연 회장이 선대를 이어 한화의 총수로 취임했다. 취임 1년 만에 그는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하고 이어 1983년 경인에너지 내국화를 단행하면서 매출을 2배 이상 늘려 재계로부터 ‘제2의 창업’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정아그룹(현 한화호텔&리조트),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하면서 3차산업에 진출했다. 1986년에는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를 창단했고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했다.
1990년 이후 김승연 회장은 한화의 해외 진출을 추진하면서 1993년 아테네은행 인수,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현 헝가리 한화은행)을 인수했으나 90년대 중반의 IMF 외환위기 체제 하 기업 구조조정 시기를 맞아 혹독한 구조조정 시기를 거친다.
이 시기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으며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창조적 구조조정으로 국내는 물론 산케이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었다.
무엇보다 김승연 회장은 2002년 대한생명 인수로 재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이하 대생) 인수에 대한 특혜 의혹을 도마 위에 올렸다. 이 의원은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통해 “정부가 지난 2002년 대한생명을 무자격자에게 거의 공짜로 매각해 사실상 특혜를 줬다”고 주장해 관계자들의 진땀을 뺐다.
이 의원은 “2001년 9월 대생에 대한 1조5000억원의 공적자금 출자로 인해 한화컨소시엄의 대생 인수가격은 1조6150억원이 아닌 1150억원에 불과한 셈”이라며 “대생 매각 직전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은 대생 인수자에게 엄청난 특혜를 부여한 것”이라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이종구 의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대생의 매각심사소위는 소위위원 4명중 3명이 한화그룹의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등 보험사 인수자격 요건이 불충분하고 매각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한화 인수에 반대했으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이 반대 의견을 묵살했다는 것. 하지만 이 문제는 대법원에서 ‘하자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후 한화의 대한생명은 날개를 단 듯 사세를 확장했다.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됐으며 2010년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 및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한다. 이후 중국 솔라펀파워 홀딩스 지분을 인수하며 한화솔라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태양광 산업에 진출했다. 2011년 중국지역에 사업 확장을 위해 한화차이나를 설립하는 등 김승연 회장은 30년 동안 회장으로 재직하며 한화그룹을 매출 27배, 총자산 115배, 당기순이익 223배 성장시켰다.
김승연 회장은 경영자 외에 사회독지가로서도 독특한 일을 했다. 1997년 국가 기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미 펜실베이니아주 앨런우드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던 로버트 김에게 김승연은 수년간 생활비를 지원했다. 이러한 사실은 로버트 김이 2005년 10월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자 한화그룹은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겠다고 밝히자 46명의 천안함 희생자 중 36명의 유족이 한화에 취업을 희망했으며 이중 2010년에 취업을 희망한 가족 5명 전원이, 2012년 기준으로 7명이 (주)한화와 한화테크엠에 근무하고 있다.
김 회장의 두 얼굴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과 논란도 많았다. 1992년 미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인근의 벤투리 카운티 히든벨리 지역에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별장을 470만달러에 사들였으며 이에 앞서 1979년 사우디 아리비아의 건설중개업자로부터 수수료 650만달러를 홍콩의 은행에 예치시킨 혐의로 구속, 1994년 외국환관리법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300여만원을 선고 받았다.
아울러 창업주인 부친 김종희 회장이 1981년 타계하면서 유언장을 남기지 않자 당시 29세 나이로 김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아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재산 분할 관련 31차례 재판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이 술집 종업원과 몸싸움을 해 눈에 부상을 입자 김 회장은 경호원 17명을 대동하고 자신의 아들과 몸싸움을 벌인 술집 종업원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폭행을 가해 처벌을 받았다. 배임죄로 2014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 선고를 받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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