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안보와 국익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이 부분에서 만큼은 누구도 예외가 없이 똑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성욕이나 성적쾌감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남자 누구도 예외가 없이 여자를 따먹고 싶은 욕구와 love juice 를 배출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즉 여기에는 년령의 노소(老少)가 없고 신분의 고하(高下)나 귀천(貴賤)도 없다는 뜻이다.
한번 씩 뉴스를 보면 만원(滿員)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에서 성추행을 하는 남자들이 붙잡히고 하는데 그들의 면면을 보면 넥타이 버젓이 맨 대기업간부라든가 변호사, 의사, 학교선생, 공무원등 제법 그럴싸한 신분의 종자들이 성추행혐의로 걸려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이것은 왜 그럴까? 일반적인 여자들은 생각하기를 “미친놈들!~왜 고매한 신분을 가진 놈들이 저 모양일까?” 하는 생각을 가질게다.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이 더 무서운 사회, 돌대가리와 병든 사회를 만든다 할 것이다. 신분이 고매하면 인품도 생활방식도 밥 먹는 것도 똥누는 것도 섹스하는 것도 고매해야한다는 그런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웃긴다는 얘기다.
지하철성추행뿐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성추문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정치인, 교수, 고위공직자들, 검찰경찰간부, 고급장교나 별을 가진 군인들, 재벌총수나 임원, 변호사나 의사등의 전문직군들의 일부남자들이 성추문으로 인한 성범죄에 걸려든다. 즉 꼴린 男根을 해소시키는 행태에는 위에 말한 대로 년령의 노소, 신분의 고하가 적용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분이 고매하게 보인다고 성욕해소방법도 절대 고매하지 않으며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태초에 조물주는 종족보존을 위해 남자의 男根에 꼴림현상을 만들어 성교를 하여 종족을 보존하게 했다. 시대가 갈수록 그 꼴림은 진보와 진화를 거듭하고 섹스의 미학, 배설과 쾌감의 극치로 발달되어 급기야 궤도를 벗어난 이탈의 섹스, 이단의 섹스로 변질되어 범죄시되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이고 병적(病的)인 것으로 발달된다. 이름하여 변태적 성욕행위와 성폭행질이 그것이다.
돈이 최고가 되는 물질만능 세상에서 노출의 미학은 더욱더 발전되고 뇌쇄적이고 자극적인 성문화(性文化)가 노골적으로 유혹되는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성욕해소는 대부분 해결을 보는 것인데 돈이 없는 인간들은 자위라는 뽐뿌질(pumping)로, 더 나아가 추행과 강간이라는 성폭행질로 나가는 인간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보게 된다. 뽐뿌질도 자기집 방구석이나 화장실에서 혼자하면 되는데 문제는 그게 아닌 거리에서 불특정다수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다 보니 죄목이 공연음란죄(公然淫亂罪), 즉 누가 보든 안보든 길거리에서의 뽐뿌질은 사람들에게 특히나 여자들에게 수치감과 혐오감을 주다보니 공연(公然)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죄를 묻게 된다.
제주지검장을 한 김수창씨가 길거리뽐뿌질에 혐의가 잡혀 결국은 그 뽐뿌질이 사실로 드러나고 그 본인도 수사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일개검사가 아닌 제주도의 최고 높은 검찰총수가 길거리 뽐뿌질 혐의로 대내외적으로 망신살을 뻗히게 된 형국이다. 사람들은 특히나 여자들은 어떻게 한 지방의 검찰총수가 저럴수가 있냐 하며 놀라움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데 같은 남자 입장으로서는 김수창이가 제주도검찰총수를 떠나 한남자로서 (정신적으로 병이 들거나 섹스할 여자를 취할 수 없는 무능력한 경우)충분히 그 짓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될 대목 일게다. 김수창의 공연음란행위의 죄를 묻기 앞서, 공인으로서의 쪽팔림과 개탄스러움을 자아내기에 앞서, 한 남자로서의 성욕구를 건강하게(?) 건전하게(?) 합리적으로(?) 합법적으로(?)로 해소하지 못하고 길거리뽐뿌질이라는 공연음란으로 죄를 묻는 형국으로 도달하니 가련하고 불쌍한 모습의 김수창으로 밖에 볼 수 없음이 참으로 탄식할 따름이다.
이 친구를 정신과나 비뇨기과로 보내서 정신감정과 비뇨기관 검사까지 해봐야할 사안 일게다. CCTV에 나타난 그의 동선을 보면 여자를 뒤따라 간 것하며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보노라니 이 친구가 가족과의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으며 여자문제나 성욕해소문제를 얼만큼 제대로 대처하며 살고 있었는지를 짐작해볼 대목 아니겠나. 만일 이 자가 정신적으로 성도착증이나 과다노출증, 과색(過色)끼를 가진 자인데 고위공직자 신분으로 룸살롱여자와 붕가붕가를 했다든가 만원버스등에서 몸을 비벼대는 성추행을 하거나 더 나아가 강간이라는 성폭행등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해야 할 그것인지 참으로 슬플 뿐 아니겠나.
뽐뿌질은 성욕을 해소하는 건강한 행위이지만 미완의 섹스이자 한편은 씁쓰레한 수치심도 동반되는 요상야시꾸리한 행위이다. 이런 뽐뿌질 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와 또는 쭉쭉빵빵한 여자와 주고받는 따스한 체온과 눈빛, 둘이 함께 거칠게 내뿜는 호흡에서 느껴지는 성행위와 그 쾌감은 몸 대(對) 몸이라는, 즉 육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이의 성행위에서만 느끼는 짜릿함이기에 뽐뿌질에서 느끼는 차원과 너무나 다르다. 그러기에 혼자보다 늘 ‘둘이 함께’가 아름다음과 쾌감의 극치를 주기에 이번 김수창사태는 진정한 쾌감을 올바로 수행치 못한 김수창과 그 가족(부인)에게서부터 먼저 찾아야 할 그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글은 김수창을 대놓고 옹호하자가 아니다. 그가 벌인 공연음란의 죄는 철저히 묻되 언론이나 世人들도 더 이상 김수창을 매장 매몰시키는 기사나 손가락질은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경찰관에 연행되는 순간, 그 본인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수치심과 절망감과 공포감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거짓말을 처음에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왔던 제주지방 검찰총수로서 스트레스를 성욕으로 푸는 방법에 있어 이성적 판단과 행동의 결여는 김수창 본인에게만 덮어씌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의 주변(가족, 친구, 동료와 조직사회)도 일정 책임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아니겠나 싶다. 지금 어디선가 김수창보다 더 더러운 짓거리로 살아온 종자들이 오히려 김수창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성적(性的)인 사랑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의 사랑도 절대 부족함이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그것이다. 핵가족화 되고 사회가 핵분열화 되고 왕따가 만연하는 사회에서 갖은 음란물이 온 인터넷으로 파고들고 성문화가 엄청난 속도로 개방되는 시점에서 변태적 성욕해소는 누구도 예외일수가 없기에 말이다. 변태적 성욕해소는 사회적 신분이나 사회적 능력의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그 해당 본인들에게는 어쩌면 별종의 특미(特味)이기 때문이다.
길거리 뽐뿌질로 몰창피와 개망신을 당한 김수창은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들을 추종하는 무리들보다 훨씬 애국적이고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고 공직자로서의 임무는 이들 무리들 보다는 훨씬 많이 했을 것이다. 고로 김·노잔당무리들만큼은 김수창씨에게 손가락질하지마라. 니들 종자들은 하등 그를 비판할 일말의 자격조차 없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