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떤 도시에서 대형교통사고가 났는데 그 교통사고를 구호하기 위해 911응급차량이 출동하여 사고지점에 정차를 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번엔 교통경찰이 득달 같이 달려와 황망한 그 순간에도 주차위반 딱지를 땠다는 기사를 보았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 어떤 기사에는 도둑질을 하다가 주인에게 발각이 된 여자 도둑을 향해 주인이 총을 쏘아 죽인 것이다. 그 여자 도둑은 거의 만삭의 몸으로 주인에게‘아이를 가졌으니 제발 쏘지 말라’는 애원을 했음에도 주인은 발포를 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당방위라는 이름아래 주인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단다. 이런 게 민주주의의 맹점인 것이다.
기사 하나를 더 소개해 보자. 2011년 2월 뉴저지주의 인구 5000명 소도시 프랭클린에서 강풍으로 큰 나무가 하천에 쓰러져 홍수가 발생했다. 시 정부가 트랙터를 동원해 나무를 제거하려 하자, 한 변호사가 "이 하천은 주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나무를 제거하려면 먼저 주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시정부가 1만2000달러(약 1200만원)를 내고 주정부의 허가를 받는 데 12일이 걸렸고, 그동안 홍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하루빨리 나무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건 세 살짜리 어린 아이도 아는 상식인데, 공무원들은 박제화 된 법률 규정만 따진 것이다. 이 정도면 과유불급 민주주의다.
소위 민주주의의 본 고장인 미국이 이러할 진데 우리는 한 술 더 뜬다. 민주주의의 도를 넘어 아직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불법시위를 해도, 수십 명 살인을 해도, 민주주의의 지팡이라는 경찰을 아니 파출소나 경찰서등 공권력을 때려 부셔도, 파렴치범에서 천인공노할 흉악범까지 민주라는 이름으로 법의 보호를 받아가며 세상을 향해 실실 쪼개고, 심지어 무기고를 부수고 반란을 일으켜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포상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른 국가와 달라서 소위 온정주의에 떼거지주의까지 포함된 특이한 민주주의다.
참 재미(?)난 민주주의도 있다. ‘광주정신’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얘긴 즉 광주는 민주·인권의 도시라는 것과 저항정신이 곧 광주정신이라는 것이다. 그 광주에서 매년 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문화축제가 열린다. 그런데 어떤 맛이 갔는지 아니면 모자라는지 하는 자가 민중화가라는 탈을 쓰고 현임 대통령과 그 부친 되는 故박정희 대통령을 폄훼(놈들은 풍자라고 하지만...)하는 걸개그림을 전시했다가 보이콧을 당하자‘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주둥이가 댓 발 튀어 나온 모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논객이자 미디어워치 대표인 변희재씨에게 뻐덩녀 이정희의 종북(從北)을 지적했다고 명예훼손을 들어 변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도대체 진실을 말하자는‘표현의 자유’에는 재갈을 물리고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개 같은 행위에는 동정론을 펴는 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실상이다.

광주정신 즉 저항정신이 흠뻑 젖은 민중화가 님의 그림.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됐을 때(?) 그 즈음의 동일한 민중화가 님의 명화. 교황이 오셨다니 그 양반에게 이 그림을 보여드리고 평을 받으면 어떨까?
민주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과연 이런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인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이에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선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까? 당연히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이나 단어 그대로만 두고 선택하라면 함께 생산하고 함께 나누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없는 공산주의가 훨씬 좋을 것이다. 다만 그 진정한 의미와 뜻을 제대로 이행치 못하여 오늘날 공산주의는 북괴와 같은 일인 독재국가 같은 지극히 소수만이 지구상에 남아 명맥을 유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도‘인민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든가. 어쨌든 이래저래 망할 놈의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