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남쪽으로 형주를 정벌할 때 당양(當陽)땅 장판(長阪)싸움에서 유비를 추격하자, 조자룡은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조조군 사이를 질주하며 유비의 둘째 마누라 감부인과 아두를 구하여 유비에게 바친다. 그 해가 서기208년(단기2541년, 중국 漢헌제 건안13년, 신라 내해이사금13년, 고구려 산상왕12년, 백제 초고왕43년)의 일이다.
바로 그때 유비는 아두를 받아들자 얼굴빛을 고치고 아두를 번쩍 들어 땅에 내던지며“이 못난 핏덩이로 인해 하마터면 나의 형제 같은 일원 대장을 상할 뻔했구나!”라며 외친다. 그 광경을 목격한 조자룡은 깜짝 놀라며 땅에 떨어져 파랗게 질려 우는 아두를 급히 껴안고 현덕에게 절하며 아뢰기를“소신은 오장육부를 땅에 쏟아 내더라도 주공의 은혜를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라며 흐느낀다. 비록 주종(主從)의 관계이지만 진정한 사나이들이 연출한 한 장면이다. 또 이런 게 있다. 명심보감 안의편(安義篇)에 있는 말이다.
장자(莊子)가 이르기를, 형제(兄弟)는 위수족(爲手足)이요, 부자(婦子)는 위의복(爲衣服)이라, 의복파시(衣服破時)엔 경득신(更得新)이나, 수족단처(手足斷處)엔 난가속(難可續)이니라!! 즉, 형제는 손발과 같고 마누라나 자식은 의복과 같은 것이라, 의복이 떨어지거나 헤지면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손발이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웁나니라......
요즘 이런 소리 했다가는 어쭙잖은 페미니스트나 호주제 폐지를 기도하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씨 앞에 어미 성인지 아비성인지를 이중으로 달고 다니는 요상한 뇬넘들에게 따귀 맞을 일이지만, 유비인들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아깝고 귀엽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의(大義)나 큰일을 위해 아내나 아들을 잠시 뒷전으로 물림으로서 간뇌도지(肝腦塗地)하며 자신과 나라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신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날 우리의 어떤 지도자는‘그럼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로 여심을 흔들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진짜 최소한의 덕목과 양심을 가진 리더라면, 그 꼴 난 자신의 장인과 아내를 두둔할 게 아니라, 다른 의미로 국민의 정서를 달랬어야 했을 것이다. 계백장군은 황산벌로 나아가기 전 자신의 처자를 직접 단두하였고, 손오 병법의 창시자 오기(吳杞)는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의 아내의 목을 치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물론 객관적으로 또는 현대적 시각으로 본다면 두 사람의 잔인성은 살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오늘날 그들의 행위는 국가와 대의를 위한 위대하고도 귀감이 되는 잔인성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나 국민 나아가 민족을 위해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어깃장을 놓을 것이 아니라 마누라 정도야 떨어진 옷 갈아입듯 해야 진정한 지도자 동지가 아닐까? 말 뽄새부터 틀려먹은 지도가 들어선 게 오늘날 우리 국가와 국민과 민족 모두가 불행의 시작인 것이다.
다행히 현임 대통령은 돌 볼 가족이 없는 게 또한 지난 세월의 불행을 반전 시킬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임,
이아침 토론마당 하고 세상만사 방 나의 스승 정경열 선생님의 형제애를 강조하는 16講을 들으며 문득 생각나 해 보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