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이 시대적 분위기와 국민의 영웅인 李舜臣 장군의 충성심과 Leadership 으로 연일 한국 영화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따라서 영화에 나오는 전쟁씬과 역사와의 일체 여부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의문을 표시한다.
먼저 영화이기 때문에 歷史的 사실과 다른 모습들이 보이거나 誇張 (과장)되거나 각색된 부분도 있다.
나도 영화를 봤지만 어떻게 11대 130 (영화에서는 330척)의 불리한 戰力으로 海戰에서 승리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표현이 부족하였다. 확실한 것은 불가사의하게도 명량 해전에서 大勝을 한 歷史的 사실이다.
먼저 당시대의 양 수군의 무기 체계를 살펴보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된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기초로 한 배 바닥이 평평한 平底船 (U)이고 왜군은 V 자형이다. 전자는 속도는 느리지만 회전반경이 적어서 쉽게 방향 전환이 용이하고, 후자는 속도는 빠르지만 회전 반경이 커서 근접 전투에는 불리하다.
이렇게 된 배경은 조선 수군은 해안선 방어가 주 목적이니 고정 위치에서 전투를 하게 되니 속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대신 대형선을 만들었다. 일본은 해적질로 국가를 유지 하였으니 당연히 치고 빠지는 전술과 또 조선이나 중국 해안선을 노략질 하려니 거리가 멀어 자연적으로 속도에 중요성을 둘 수밖에 없었고 함선은 경량화를 채택 하였다 .
영화에서 조선 수군은 근접 전투에서 방향 전환이 용이 하여 적선을 격침시키고 혼란에 빠트리는 전술을 채택한다.
逆으로 가벼운 倭船은 반발력에 의한 전복 등의 문제로 대포 등 중무장은 不可한 함선이지만, 반면에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대형화가 가능하고 평저선이어서 대포 등 중무장이 가능 하였다. 조선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고려 최무선 시대부터 화약의 제조 기술이 조선조 까지 전수 발전 되었다.
일본은 西歐 문화의 조기 개방에 힘입어 조총의 제조 기술은 한국보다 우수하여 主力 무기로 사용 되었다.
현대 전투는 원거리에서 레이다로 적을 탐지하여 선제공격으로 제압하는 Speed 와 보유 군사장비의 성능이 승리를 판가름 하지만, 고대 전투는 可視圈 내에서 인간의 노동력으로 배를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게 되기 때문에 전략 전술 과 지리적 조건의 숙지가 무척 중요하였다.
좁은 해역(300M)에 양 군선들의 조우로 사실 임의로 후퇴하거나 전진이 불가 하였을 것이다. 조선 水軍은 대포로서 遠距離 사격이 가능하여 機先을 제압하기가 용이하고 쉽게 움직이는 특성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당 시대의 대포는 발사만 화약의 힘을 빌리고 적선의 파괴는 탄환(쇠구슬)의 운동 에너지를 이용한다. (현대의 대포는 목표물 도착후 2차 폭발을 일으켜 목표물 타격).
대포(天字총통 제원) Naver 에서
포탄은 화전(火箭)처럼 날아가는 대장군전(大將軍箭) 무게 30kg.
사정거리 : 960m(대략1,200보)
(실 전투에서 사용한 것은 반발력 때문에 천자총통보다는 적은 地字나 현자총통을 사용 하였을 것으로 추정)


조총의 유효 사거리: 30-50m, 200m이상의 경우 사람이 맞아도 사망까지 이르지 않는다.
해전의 통상적인 거리(25m이상)에서 조총으로 사격해 판옥선의 외판두께(12.26m)를 관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 조총>
밀집 대형에서 통신 수단도 깃발이나 북 징으로 한 고대 전투에서 조선 水軍의 대포를 동원한 先攻에 선발 함선이 격침당하면 후위 艦船은 인력에 의한 배의 조정은 방향 전환이나 전진 후퇴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지리적 특징이나 潮流에 대해서 잘 알고 戰術을 구사한 조선 수군이라 수적 열세이도 불구하고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다.
白兵戰은 일어 날 수는 있지만 주력 전투 방식은 아니다. 왜냐하면 朝鮮 수군의 입장에서는 대포를 동원한 원거리 打擊(타격)이 유리하고 왜군은 조총을 보유하고 있어서 근접 전투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함선과 함선의 충돌에 의한 격파는 전투 중 근접하게 되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력 공격방법은 아니다. 양 수군 모두가 木船이기 때문에 충동하면 크기에 관계없이 충돌 에너지는 똑 같이 양 水軍이 받는다. 그러나 조선 수군의 함선이 무겁고 大形船이기 때문에 왜선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三國志나 황산벌 싸움에서 보면 양 군대가 진영을 갖춘 후 전투에 들어가면 곧 바로 전면전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쪽 선봉대장이 나와 일대일 전투를 치룬 후 2차전이 벌어지는 모습을 많이 본다, 대기 군사가 많아도 先鋒隊將이 적장에 패해 목이 날라 가면 대열이 무너지고 전투에 패하는 모습은 명량해전에도 같았을 것이다.
당시 최신예 전함인 거북선은 위협적인 형상에서 적들은 겁을 먹었을 것이고 화염이나 연기를 내 뿜으며 충돌에 의한 擊破는 경외의 전함으로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열세의 전력에도 승리 한 것은 보유한 전함이나 장비 , 지형 조건, 정보 등 장점을 최대한 살려전법에 사용 하였고 왜군 지휘관은 심리적으로 위축당한 상태에서 가진 戰力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數的인 우세 빠른 기동력의 함선을 가지고 近海에서 횡렬로 조선 수군과 맞설 것이 아니라 大海로 나가 戰線을 확대하여 포위 전술이나 우회하여 背後를 공격하는 전법을 함께 사용하였더라면 승패는 예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론으로 조선 수군은 大形 함선 重武裝 ,정신력 그리고 훌륭한 지휘관의 전술 더불어 民官軍 일체에 의한 정확한 정보력이 多數의 왜함 우수한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격파한 이유이다.
최근에 군 부대의 소위 관심 사병들과 그 들에 의한 잔인하고 비열한 그리고 인간성을 말살한 폭력이나 왕따나 폭력이 국가적 관심으로 떠올랐다. 저런 정신으로 국가 비상시 전투를 할 수 있을까 염려도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극소수라 생각한다.
내가 군 복무 시절인 70년도 중반도 군대에서 폭력은 있었다. 물론 일개인의 독특한 폭력도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과 같은 왕따나 잔인하고 비열한 방법이 아니라, 기수별로 또 남자의 세계에서 軍紀 확립을 위해서 상호 이해되는 폭력이었다. 지금도 군 생활을 함께한 전우들의 생각이 나곤 한다.
어쩌면 자식이 하나인 한국의 가정에서부터 너무 過保護 하여 나약하고 정신이 이상한 청년들을 量産한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문제아들을 군대에서 제외 한다고 하면 사회에서도 사고 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사회 국가 가정에서의 교육의 정상화에서부터 시작 하여야 한다. 북한군도 일본 자위대도 유사 문제를 안고 있다. 너무 실망 할 필요는 없다.(20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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