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된채 동서냉전의 최일선에 놓여있던 한국과 월남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또 문화면에 있어서 너무도 기이하리만큼 유사성이 많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두민족이 지난날 다같이 동족상쟁의 비운을 겪었지만 어쨌던 월남은 남북이 통일 되었는데 지난날 한때 월남에 파견한 우리의 군인들을생각해본다.
남북으로 허리가잘린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역사적 지정학적으로 공통된 환경에서 물려받게 되는
슬픈 유산의 소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짙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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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지나반도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 북으로는 중국대륙과 접하여 있고 서쪽은 '라오스' '캄보디아'를 끼고 있으며 동쪽은 남지나해를 바라보고 있는 월남은그 땅덩어리의 생김새 자체가 한국과 비슷하다.
안남산맥을 따라 가늘고 길게 남북으로 뻗어 있는 월남의 지형은 그 나라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
'두개의 쌀바구니가 목도 양끝에 달려있는 모양'으로 장백산맥의 끝줄기가 남쪽으로 길게 돌출하여 이루어진 한반도를 방불케 한다. 국경의 북단역시 한국과 같이 중국대륙에 접해 있고, 전 국토의 8할이 산림이며, 북고남저의 지세인데다가, 지하자원의 대부분은 북부에 편재해 있는 반면 곡창지대는 남부에 집중되어 있어 일찍부터 한국과 똑같이 남농북공의 경제구조를 갖게 하였다.
다같이 한문화의 영향권 내에서 살아 온 이들은 정치,사회,문화 기타 모든 영역에 있어 유불사상이 짙게 배어 있으며
생활 풍속을 보더라도 가부장중심으로 이룩된 엄격한 가족제도여서 경로와 효행관념이 사회윤리의 기본바탕이 되어 있고 '몬슨'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쌀을 주식으로 생활을 영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월 두민족이 오늘날 겪고 있는 공통된 시련은 이러한 자연환경이나 사회생활의 유사성에서 보다도 그것을 배경으로 훨씬 더 뿌리 깊게 계승되어온 역사적 운명의 공통성에서 살펴보야할 것이다.
장악하게 될 때까지 월남은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역대왕조는 중국의 책봉을 받는 동시에
정열적으로 조공사절을 파견 하였었는데 조선도때에는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겨 자조 사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씨왕조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명황제로부터 받았듯이' 안남'이라는 명칭도 중국인들이 지어 부른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볼때 중국주변에 있는 여러나라가 중국의 지배 내지는 침략을 받것이지만 동북아에 있어서의 한국과 동남아에 있어서의 월남만큼 순수하게 정치적 문화적 지배를 받아 온 나라는 없다고 본다. 비록 그들이 1970년대말 남북통일이후 중국과 전쟁을 했더라도,
그래도 한국은 문화적인 면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였지만 월남은 중국적인 것과 월남고유의 것을 거의 분간할 수 없으리만큼 혼합 동화되어 있는 것이다.
종교만 보더라도 동남아의 모든 나라가 소승불교를 신봉하고 있는데반해 유독 월남은 중국이나 한국과 같이 대승불교를 믿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한문화를 얼마나 짙게 받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필자가 여기에서 이점을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는 근세이후 양국이 다 같이 중국과의 주종관계를 청산한 후에 여전히 좋은면 나쁜면 할 것 없이 모두 깊은 인연을 맺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일제 36년 동안 우리의 선열들이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하여 상하이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을 전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치하에서 호지명을 비롯한 혁명가 또는 '내셔널리스트'들의 반불운동 역시 중국에다가 거점을 두었던 것이다.
2차대전에 와서도 중국은 기회만 있으면 한월 양국을 자기의 지배권 하에 둘 것을 꾀하여 왔으니 종전직후 중공군이 재빨리 월남에 진주한 것이라든지 또 중국대륙을 장악하게 된 중공이 한국전쟁과 월남전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코 세계의 적화를 모토로 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혁명에서만 연유된 것이 아닌가한다.
따라서 이렇게 깊이 맺어져 온 역사적 관계가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두고 중국과의 사이에 주종관계를 맺어왔던 양국은 또 19세기에 와서 똑같이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한국은 1910년 그리고 월남은 이보다 25년이 앞선 1884년에 각각 일본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특히 하나 주의하지 않을 수 없는것은 당시 한월양국의 지도자들은 다같이 외세에 어두워 서양을 배척하는 정책을 써서 선교사를 박해했으며 또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에서는 청일전쟁이 그리고 월남에서는 1883년에 청불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기억해둘만 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보다 더 깊은뜻을 갖는것은 식민지 합병후에 있어서의 통치방식이다.
한국을 강점한 일본이 총독을 주재시켜 무단정치를 펴는 동시에 때로는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이른바 '일시동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동화정책을 강요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월남에다가 총독을 두는 한편 겨우 만여명의 군인과 삼백명 미만의 경찰을 가지고 삼천만 월남인에게 무단정치를 강행했으며 극단적인 동화정책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러한 점은 식민지인의 자치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식민정책을 폈던 영국과 미국의 식민정책과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2차대전 후 독립을 얻은 수다한 약속국가들 중에서도 인도, 필리핀과 같이 비교적 순탄하게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되고 또 그 후에는 서로 우호관계까지 맺게 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동화정책하에 식민지인의 자치활동을 전연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 월남 또 혹은 인도네시아 같은데서는 국토분단 민족상쟁 민족혁명 등의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영미제국은 세계대세에 순응하여 자발적으로 식민지의 독립을 승인하여 준데 반하여
일본은 패전 때문에 억지로 한국에서 물러났고, 프랑스 역시 인도전쟁까지 치루어 가면서 끝내는 그곳에서 축출당하다시피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일양국간, 그리고 불월양국간의 날카로운 민족감정의 대립이 좀체로 가시어지지 않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호관계를 매끄럽게 이룩되지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가 알아 두어야 할 역사의 교훈이라 할 것이다.
결론은? 월남은 공산주의로 통일했지만 통일대통령 호치민이 자본주의를 택함으로서 경제부국으로가는데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대결이 해가 중천으로서, 북한주민은 굶어죽고 남한국민은 통일비용준비에 허리가 휜다!!!!
근세의 역사에서 많은말을 하고싶지만 타인에게 들려주기에는 지식이 딸리지안나 생각하지만,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오류가 있을것이라는것을 인정하고 아는것만큼 글을쓴다. 잘못된 부분에대해서 정확한 지적을 해 주신다면 충분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