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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짜다”

작성자:

오대산

조회: 9290 등록일: 2014-02-21

우리나라처럼 미각 언어가 발달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아무리 언어가 풍부한 나라라 할지라도 ‘쓰고, 씁쓸하고, 쓰디쓰고’ 또 ‘달고, 들큼하고, 달콤하고, 달짝지근하고’를 구별할 영광을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의 성격을 평가하는 데도 ‘싱거운 놈, 짠 놈, 매운 놈’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아무래도 우리 사회는 맛을 봐야 아는 사회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 같다.
 
한번 쯤 들어 봤을 이야기 한 토막이다. 
외계인이 지구의 각 국민성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지구인이 아직 본 일이 없는 물체를 하나 길 한복판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 뜬 원반속에 숨어서 그것을 줍는 지구인들의 반응을 지켜 본다.
 
그때 그 물체를 줍는 순간 눈앞에 들이대고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프랑스인일 것이며, 반대로 귀로 가져가 흔들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독일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미술과 패션의 천재들을 배출한 프랑스인은 눈(시각)으로 사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데 비해 베토벤을 낳은 음악적인 민족, 독일 사람은 귀(청각)로 그것을 인식하려 할 것이다.
 
뛰고 나서 생각한다는 투우의 나라 스페인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눈이나 귀로 가져가지 않고 집어 들자마자 두드려 빠개볼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그 물체를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중히 집으로 가져가 며칠 동안 끈기 있게 이것 저것에다 맞추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각자 몸소 경험한 다음 민주주의 발원의 국가답게 가족 전원이 모여 엄숙하게 투표로 결정할 것이다.
 
만만디 중국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영국인 보다 훨씬 어른답고 한층 더 인내력이 강하다. 우선 그들은 물건을 줍기 전에 사방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군자처럼 엄숙하게 집어 올려 소매 깊숙이 짚어넣는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우선 보존해 두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가면 몇 백년 후라도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여기서 툭하면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초강대국 미국과 러시아를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기대와는 딴판일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냥 주울 뿐이다. 아무 표정도 없다. 도무지 귀찮게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국인은 컴 발명 국가답게 그것을 줍자마자 컴퓨터에 물어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크레물린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매력적인 기질을 갖고 있지만, 또한 가장 믿을 수 없는 러시아인은 비밀경찰(KGB)에 보고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워크맨의 나라 일본인은 눈앞에 놓고 뜯어보거나 귀에다 대고 흔들어보지 않을 것이다. 부숴서 분석해 보거나 소매 속에 슬쩍 감추지도 않는다. 호기심이 많아서 컴퓨터나 KGB에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귀재인 일본인은 집어 들자마자 재빨리 그것과 똑같은 것을 흉내 내어 만들어 볼 것이다. 그것도 같은 크기가 아니라 더욱 정교하게 수십분의 일로 축소해서 작게 만들 것이다.
 
문제는 한국인이다. 그렇다. 우선 그것을 혀로 핥아볼 것이다. 일단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다. 먹는다는 말부터가 다양하지 않는가? ‘나이’도 먹고, ‘더위’도 먹고, ‘공금’도 먹고, ‘욕’도 먹고, 심지어 청문회와 천안함처럼 두드려 맞고 따끔하게 당해도 ‘한방 먹었다’고 한다. 역시 ‘맛을 봐야’ 알 수 밖에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의 풍자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듯 싶다.
 
"와, 짜다“ 
러시아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고별무대 경기 직후 김연아의 독백이다. 황홀한 연기력에 비해 박하게 나온 점수가 나옴과 동시에 ‘은반의 여왕’ 김연아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다. 이쯤되면 별에서 온 그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 싶다. 그랬다. 역시 김연아도 한국인이었다.

댓글 : 1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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