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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탈존 영화

작성자:

탈존

조회: 5828 등록일: 2017-08-07

마틴 브래스트Martin Brest 감독이 1992년에 스스로 제작한 영화 여인의 향기는 한번쯤 감상해봄직한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올라오는 질문이 있다.
‘갈등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변화를 방해 하는가.’
‘선택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 영화를 감상하노라면 스스로 올라온 이런 질문들에 관한 대답을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매력이라고 할까.
이 영화가 감동적인 원인은 영화적인 탄탄한 구성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밀도 있은 성격창조, 연기자들의 열연熱演이 완성도를 높였기 때문일 것이다.
구성 측면에서 본다면 베어드 고교의 ‘찰리 심슨’과 교장 간의 갈등에 더하여 ‘프랭크 슬래스’ 중령이 벌이는 갈등들이 베틀 짜기의 씨줄과 날 줄처럼 치밀하게 엮여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갈등을 풀어나가는 등장인물을 보면 괴벽乖僻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각장애인 ‘프랭크’ 퇴역 중령과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닌 고학생 찰리의 성격이 대조적으로 그려졌다.
이 개성 강한 두 사람 역을 맡은 ‘알 파치노Al Pacino’와 ‘크리스 오도넬Chris O' Donnell,’ 이들 두 연기자의 열연도 감동을 일으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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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생 ‘찰리 심슨’은 추수감사절 여행 준비에 들뜬 친구들과는 달리 학교 게시판에서 아르바이트 광고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도서관에서 일 하다가 책을 열람하던 부잣집 아들 ‘윌리스’와 함께 밤늦게 귀가하던 찰리는 교장선생을 골탕 먹일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발견한다.
이튿날 학생들에게 인기 없는 교장이 봉변을 당하고 찰리와 윌리스는 범인을 밝히라는 강요를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찰리는 추수감사절 기간 동안 프랭크 슬래스 중령을 돌봐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프랭크와 함께 뉴욕여행에 나선 두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해괴한 갈등을 경험을 하면서 자신들의 본질을 만나간다. 이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 두 사람은 힘을 합쳐 교장선생님의 독선적인 조치에 대항하는 한편 새로운 삶을 찾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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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에는 갈등이 있다.
갈등은 대부분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물론 숙제를 결론으로 대신하는 작품이 없지 않지만 이런 패턴은 줄거리가 없는 미술작품에도 시각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다.
그림의 음양陰陽이나 사진에서 빛의 대비를 의미하는 콘트라스트contrast도 일종의 갈등인 셈이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예술에서의 갈등은 재미와 감동을 불러오는 근본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갈등의 근원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넓고 좁고, 길고 짧고, 두껍고 가늘고, 높고 낮고, 밝고 어둡고, 깊고 얕고 등의 상대성이 있다면 심리적으로는 기쁘고 슬프고, 아름답고 추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옳고 그르고 등의 대비감정對比感情이 있는데 그것이 갈등의 근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이 모든 대립현상이 옳고 그름이라는 상대성으로 나타나지만 아이러니irony하게도 대립관계란 결국에는 하나라는 것이었다.
대립이라 여겼던 두 현상의 틈새를 발견함과 동시에 통합의 변화, 곧 화해가 일어난다는 것. 통합을 향해 삶의 여정을 경험하는 것일 뿐, 원천적으로 상대성이란 없었다는 느낌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그런 감동을 느꼈다면 혹,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주는 걸까.
미국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설립취지를 지닌‘베어드’교교의 교장은 자신에게 봉변을 준 범인을 밝히라고 찰리와 윌리스에게 강요한다. 심지어 가난한 고학생 찰리에게는 하버드 장학생 입학추천을 미끼로 내 걸기도 한다.
퇴학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밀고를 거부하는 찰리의 양심은 교장이 지닌 정의개념正義槪念과의 대립관계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베어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주모자를 밝혀야 한다는 교장의 주장과 친구의 비행을 밀고密告할 수 없다는 찰리의 양심은 두 가지 상반된 믿음 간의 대립이다.
팽팽하게 맞선 교장과 찰리의 대립 사이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프랭크 중령과 윌리스 부자父子가 끼어든 것이다.
프랭크 중령과 윌리스 부자의 입장은 다소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통합의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적契機的 존재로써 유기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넨 원대한 삶을 성취하기 위해 베어드 고교에 들어갔어. 성공하려면 학교에서 바라는 대로 주모자를 밝혀야 할 걸?”
“전 밀고는 하지 않아요.”
“밀고자는 아니다? 그 사건에는 그 이상의 뭔가 있지?”
“제안을 받았어요. 트래스크 교장이 그 친구들을 밀고하면 저를 하버드에 장학생으로 넣어준다고 했어요.”
“만약 조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조지에게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죠.”
“할 수도 없었겠지. 조지 아버지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거래를 해. 받아들여. 하버드에 가라고.”
“그럴 순 없어요. 선뜻 내키지 않는 뭔가가 있어요.”
뉴욕 여행 중에 프랭크와 찰리가 나눈 대화다.
밀고를 하지 않겠다는 찰리의 마음, 그러나 찰리는 그런 마음이 올라오는 이유를 아직은 명료하게 알아차리지 못했음을 엿보게 된다.
그렇다면 프랭크는 진정으로 찰리가 교장과 타협하기를 바란 것일까.
그건 아니다.
찰리가 지닌 내면의 갈등, 즉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과 장래를 위해 타협하고 싶은 이성 사이의 갈등을 끌어내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자살하려던 순간 찰리에게 총을 겨누며 프랭크가 한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너도 죽일 거야. 네 친구 조지는 카나리아처럼 털어놓고 너도 그렇게 하겠지. 그렇게 되면 넌 말이야, 미국남성의 정신에 먹칠하는 것이고 너의 양심은 당연히 끝장나는 거지. 친구를 팔아넘길 너를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
“나는 평생 모든 사람들과 맞서왔어. 그래야 내가 위대한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넌 반대야. 넌 성실해. 그러니 널 쏴버릴까, 아들로 삼을까?”
모든 사람과 맞서며 살았다는 프랭크에게도 내면의 갈등은 존재한다.
갈등이란 자유를 얻고자하는 인간 본능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그 기술의 원리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삯이 터 자란 사랑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교장과 찰리의 갈등은 전교생이 모인 상벌위원회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눈이 나빠서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순전히 짐작뿐이지만 ‘해리’와 ‘트랜트’ 그리고……, ‘지미’였던 것 같았는데 찰리가 좀 더 가까이 있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조지는 함께 참석한 아버지의 비호를 받으며 교장의 질문공세를 요령껏 피해 나간다.
그럼에도 찰리는 끝내 고발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상벌위원회에 자네를 퇴학시키도록 제안할 생각이네. 자넨 은닉자이며 거짓말쟁이야.”
이것이 교장이 생각하는 정의다.
그러나 프랭크 중령의 정의는 다르다.
때마침 찰리의 부모 대신이라며 상벌위원회에 참가한 프랭크는 자신의 소신을 강력하게 밝힌다.
“그러나 밀고자는 아니지요. 급우의 비행을 밀고하라! 숨기면 화형에 처하겠다. 이것이 이 학교의 방침이요? 그렇다면 이 학교를 설립한 분의 정신은 죽었습니다. 당신이 이 학교를 밀고자의 소굴로 만들었잖소!”
결국 상벌위원회는 더 이상 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바뀌는 순간이다. 아니, 프랭크와 조지 부자의 틈새역할로 갈등이 통합으로 변화된 것이다.
변화란 어느 날 갑자기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제법 뼈아픈 대가를 지불할 계기가 있어야 일어나는 것이 변화의 원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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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찰리와 학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교문제와 어우러지며 장님이 되고서도 육군중령으로써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프랭크의 집착執着이 마침내 일궈내는 현재, 이순간과의 통합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의 변화를 방해하는가. 그것은 에고ego에서 만들어진 집착이다.
끝내 군인으로써의 자부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 한다. 세상 모든 것들에게 도전적이고 부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모든 사고思考의 틀이 빡빡한 군인정신으로 고착되어 있는 프랭크 중령이다.
“네 놈이 장님인가? 내가 네 놈을 잡아야지 왜, 네 놈이 나를 잡는 거야? 정신 차려!”
계단을 만나 찰리가 무의식중에 부축해주려 하자 불처럼 성질내는 모습이 그렇다.
긴 세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각장애인 퇴역장교의 삶은 어떤 것일까. 참담하게도 찰리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이 자살하기까지의 보조자로 필요할 뿐이다.
“뉴욕에서의 계획을 수행하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일등석을 타고 뉴욕으로 날아와서 일급호텔에서 묵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고급술을 마시고, 품위 있는 리무진을 타고 형을 만나러 가는 거지. 식구만한 사람이 없는 거야. 그리고 멋진 여인과 즐기는 거지. 그 다음에 호텔의 멋진 침대에 누워 머리에 총을 쏘는 거야.”
자신의 자살기도를 태연하게 찰리에게 말하는 프랭크다.
최고급의 여행을 즐기는 것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찰리가 자신의 자살기도를 말려주기 바래서 하는 말이 아니다.
과거 속에 살고 있는 프랭크 중령에게 현재의 삶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에 다름 아니었을 테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죽음조차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을 만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랭크 중령은 집착과 자유 사이의 빈 공간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 공간은 정신적으로 정의하는 바가 없기에 대립이 없는 공空의 세계, 곧 영과 현실 간의 틈새다.
물론 프랭크 중령에게 여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기본성품이 있었다지만 아무래도 틈새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찰리가 아르바이트생으로 프랭크 앞에 등장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내 옆에 나타난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맡았던 그는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으로 만나주는 것일 뿐.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해답은 자신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하느님은 정말 천재인가 봐. 머리……. 여인의 머리털은 모든 것이야. 그 안에 얼굴을 묻어본 적 있어? 그 안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었던 적은? 아하……! 입술이 닿는 느낌은? 마치 사막을 지난 뒤 마시는 첫모금의 포도주와 같은 거야. 가슴, 후-와! 크든 작든 간에 서치라이트처럼 너를 노려보는 거지. 다리? 그리스의 대리석 기둥이던 뭐든 상관없어. 그 사이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지.”
어찌 보면 음담패설淫談悖說에 가깝지만 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는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인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그저 모든 것과 하나였던 마음의 고향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 성性이라는 것일까. 이미 죽음을 결심한 사나이의 입에서 나오는 솔직한 음담패설은 차라리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프랭크가 여자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이 페라리라고 고백한다.
그래, 페라리는 어떤가? 스피드, 모험이다. 장님이 된 장애자에게는 역시 군인다운(?) 취향의 과거집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프랭크 중령에게는 또 하나의 틈새가 나타난다.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이다. 형님 댁을 방문했을 때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서 내뱉음으로써 철저하게 경멸당하며 조카들에게 내쫓기는가 하면 신호를 무시하고 함부로 건널목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마치 사고를 유발시키려는 목적이 있어 보이는 망발妄發이다.
“개도 싸잖아.”
에비뉴 공원에서 소변을 보려는 행위를 말리는 찰리에게 내뱉은 말이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망가지는 모습이다. 어쩌면 프랭크가 망가진다는 것은 집착執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노력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집착이란 자신이 구축해 놓은 에고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내가 어떻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이 망가지지 않는 한 변화를 위한 틈새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일까.
“난 행복해!”
프랭크 중령이 페라리를 렌트하여 스스로 운전하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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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만큼 얻는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프랭크 중령에게는 여러 가지 탁월한 감각과 더불어 여인의 향기를 족집게처럼 맡을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찰리를 데리고 고급술집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저쪽에서 좋은 비누향이 나는데?”
“아! 예쁜 여성이네요.”
“그녈 좋아하는 모양이군.”
“전 여자에겐 관심이 없어요.”
“그렇다면 넌 죽은 거야.”
프랭크 중령은 여인에게 관심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한 다. 마음의 고향을 잃은 자는 죽은 자나 다름없다는 것일까.
프랭크 중령은 그 여인이 사용하는 비누를 알아맞히면서 탱고를 추자고 제안한다. 탱고를 잘 추지 못한다며 망설이는 여인에게 해주는 말이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탱고는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인생과는 달라서 단순하죠. 만약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죠.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멋진 프랭크 중령의 탱고솜씨. 바람처럼 순간을 살아온 장교將校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프랭크는 이미 자신에게서 일어난 틈새를 여전히 느끼지 못한다. 일부러 특정상표의 시거를 사오라며 찰리를 멀리 심부름 보내는 프랭크. 드디어 자살을 감행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문득, 권총자살 하겠다던 프랭크의 말을 상기하고 급히 호텔로 돌아온 찰리는 미 육군 장교의 정복을 차려입고 권총을 조립하는 프랭크 중령을 발견한다.
“어떻게 날 속일 수가 있죠?"
“속였잖아.”
속일 수 없다고 믿는 찰리가 지닌 사고思考의 틀을 단 한마디로 깨부수는 프랭크의 대답이다. 당연하게도 자살을 막겠다는 찰리와 죽고자 하는 프랭크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생명이 귀한 줄 아셔야죠!”
“무슨 생명? 난 생명이 없어. 난 어둠속에 있단 말이야!”
역시 과거의 포로가 되어 있는 프랭크에게는 삶이 없다는 뜻일까. 장애가 생겼으면 장애가 생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삶의 기준, 보람, 욕구 또한 장애자로 변화해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변하고서야 세상도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야할 이유를 하나만 제시해 봐.”
“두 가지를 말할게요. 중령님은 누구보다 탱고를 멋지게 췄고, 페라리를 근사하게 몰았어요.”
그랬다. 시각장애인이라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널려있었다. 시력을 잃은 대신 정상인들에게 없는 탁월한 감각기능을 얼마나 많이 얻었는가.
찰리의 말 한마디에 서광을 만나는 프랭크. 무언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순간, 알 파치노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제 난 어디로 가야하지?”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에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삶. 장님이 된 것도 탱고를 추다가 스텝이 엉킨 것일 뿐. 엉켰으면 엉킨 그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 삶이다. 드디어 프랭크 중령은 삶의 틈새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미 자신이 알고 있었던 세계…….
그러나 자신이 만든 에고로 스스로를 결박하고 집착함으로써 그 결박을 더욱 조였기에 발견할 수 없었던 틈새…….
깨달음이란 이미 되어 있기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
자신이 했던 말의 의미를 찰리를 통해 비로소 깨닫는 프랭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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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 각자는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일까.
자신이 가야할 삶의 길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엉뚱한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들인가.
“언젠가는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깨어난 아침에, 내 옆에 그녀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녀의 체취, 그 따뜻함 말이야. 그러나 이젠 포기했어.”
“뉴헴프셔로 돌아가면 제대로 된 상대를 찾아요. 중령님은 잘 생기셨으니까 분명 생애의 반려자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죽네 사네 실랑이 벌이던 격동의 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열려있지 못하면 간단한 선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에도 자신의 옆에 따뜻한 그녀의 체취를 머물게 하고 싶다면 결혼하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프랭크는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원하던 여인의 따뜻한 체취를 포기했던 것일까.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달아나는 자와 남는 자가 있죠.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늘 그른 쪽을 선택했어요. 왜냐하면 옳은 쪽을 선택하는 일이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찰리는 위기와 맞섰습니다. 양심에 따라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조지는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 숨었죠. 그런데 조지에게는 상을 주고 찰리는 파멸시킨다? 이 학교의 설립목적을 유지하려 한다면 순수한 찰리의 영혼을 보호하시오!”
프랭크 중령이 결혼하지 못한 것이나 찰리가 퇴학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친구를 밀고하지 않는 것. 우리내 인생에서 그 누구에게나 다반사茶飯事로 오는 무언가 선택해야할 기로岐路들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할 몫일뿐, 거기에 옳고 그름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스텝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이듯 엉키는 스텝에 잘잘못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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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일까.
찰리의 상벌위원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급히 뒤따라온 베어스고교 정치학 여교수가 프랭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결혼 했어요?”
대뜸 엉뚱한 질문을 하는 프랭크. 여교수가 사용하는 비누 향을 알아맞히며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교수님을 찾을 날이 반듯이 있을 겁니다.”
결혼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일로 변화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가 아닌, 또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말이다.
집으로 돌아간 프랭크의 태도가 부드럽게 변화되어 있었다. 추수감사절 휴가에서 돌아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어린 조카들에게 보인 태도다. 군인이 아닌 자상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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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다소나마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프랭크의 파격적인 연기가 조금은 오버액션over action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말이다. 프랭크의 심리적 파행跛行을 이해하면서도 감정이입感情移入의 와중渦中에 튀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기에 하는 소리다.
나 역시 알 파치노의 연기가 보기 드문 열연이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뭔가 튀는 느낌을 받았다면 총체적인 조화의 문제, 혹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는 마음 또한 없지 않다.
어쩌면 ‘여인의 향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 스타일과 달랐기에 느낀 나 자신 내부의 불협화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심장인 내가 라스트 신last scene에서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감동했으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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