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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책) 사려니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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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조회: 32458 등록일: 20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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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라는 말에는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사려니숲길을 가기 위해 5.16도로에서 비자림로로 들어서면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도로에는 높이 솟은 삼나무들이 양쪽으로 길게 도열하여 열병식을 거행하고 있고, 우리는 그 고요한 의식에 난데없이 뛰어든 불청객 같아 한편으로는 죄스러울 정도다.
제주도에는 사려니가 대세다. 만장굴이나 정방폭포 등이 지난 세월 제주관광을 대표하는 명소로 한 시절을 풍미했다면, 지금은 도민이나 관광객들이나 너나없이 사려니숲길을 입에 올린다. 입소문을 타면서 사려니숲길은 꼭 가봐야 할 제주 관광 코스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제는 제주를 대표하는 제일 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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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려니숲길은 만원이다. 사려니숲길 입구 일대에는 도로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로 비자림로는 북적거린다.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사려니숲길이 각광을 받게 되면서 그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려니숲길에 고민이 있다면 단 하나, 그것은 주차장 문제일 것이다.
사려니숲길은 가까이 있다. 한라산 정상의 기쁨은 고된 등반의 노력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지만, 사려니숲길은 차에서 내려 차문을 닫자마자 사려니숲은 펼쳐진다. 번거로운 중간 단계가 생략됨으로서 지리적인 거리로 사려니숲길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제주도에는 올레길, 둘레길, 삼다수길, 등등 많은 길들이 있지만 이런 길들에 비해 사려숲길은 평탄하다. 길의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내림이 없기에 오래 걷는 데에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갓난애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친구들이나 식구들끼리 사려니숲길을 걷는 모습은 다른 숲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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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힐링캠프니 자연치유니 하는 환경친화적인 용어들이 유행이다. 사려니숲길은 이런 것들을 한번에 충족시켜주는 장소이다. 사람의 키보다 몇 배나 더 자란 삼나무들, 졸참나무, 서어나무, 그리고 싱그러운 풀들이 뿜어내는 풀내음과 피톤치드향, 사려니숲길에서는 보는 것과 맡는 것과 걷는 것이 모두 행복하다. 
사려니숲길을 기획했던 누군가가 사려니숲길을 기획하지 않았다면 사려니숲길의 풍경은 제주도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었어도 구경을 못하고 죽었을 게 틀림없다. 그만큼 사려니숲길은 한라산 중산간 지역 심심산골에 있는 천연림 지역이다. 옛날에도 사냥꾼이나 화전민들이 겨우 다녔을 길이었다. 그러나 사려니숲길이 만들어짐으로서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한 한라산 천연림의 깊은 속살이 동네 골목길처럼 가깝게 우리들 눈앞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려니숲길의 진짜 자랑거리는 여기에 있다. 사려니숲길은 사시사철 언제 걸어도 좋다. 붉은 송이길에 초목들이 푸르러가는 봄에도 좋고, 보랏빛 산수국이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여름에도 좋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가을도 좋다. 언제 걸어도 좋고, 누구와 걸어도 좋고, 아무 때나 걸어도 좋은 사려니숲길은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올레길이나 숲길 중에서 단연 군계일학이다.
사려니숲길에 비가 내려도 좋다. 비가 내리면 풀들의 초록과 피톤치드는 더욱 짙어지고, 송이길은 더욱 붉어진다. 안개가 껴도 좋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사려니는 더욱 신성스러워진다. 울창한 자연림에 단풍이 들어도, 그 가지들에 함박눈이 소복이 내려앉아도 사려니숲길은 좋다. 다만 안 좋은 것이 있다면 사려니숲길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것이다. 모래 죽을 지도 모른다. 아직 걸어보지 못했다면 내일은 사려니숲길을 걸어보자.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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