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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인사와의 대화

작성자:

탈존

조회: 3960 등록일: 2017-10-27

어제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왔다. 볼일을 끝내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평소 인면을 트고 지내던 시인을 만났다.
좌익사상을 지닌 분이었는데 이번 상경 길에 그 분과 꼭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옳네, 네 생각이 틀렸네, 그런 다툼차원이 아닌, 정말이지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다운 대화가 되기를 희망했다.
궁금한 게 많았던 내가 질문하는 쪽이고 그 좌익계 시인께서 나를 설득하는 형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굳이 따라온 출판사 사장님은 워낙 골수우익이기에 우리들의 대화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자리를 같이 했는데 그 사장님은 내 얼굴에 ‘술’이라고 써져있기라도 하다는 듯 나만 만나면 밤새도록 술 마셔야 하는 병이 도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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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차 노골적인 표현이 나오더라도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기에 그동안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의문이었던 문제를 질문했다.
“당신들은 김정일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반면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들이 독재를 했다고 저주에 가깝도록 비난하는데 그분들이 과연 김일성, 김정일만큼 독재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 사회는 원래부터 통제되는 사회였고 남한 사회는 자유로운 국가였다. 그걸 쿠데타를 일으켜 통제한 사람이 박정희와 전두환이었다. 자유의 맛을 알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유를 구속당하면 견디지 못하는데 그래서 두 사람이 욕을 먹는 거라고 본다. 특히 두 사람은 쿠데타로 정당치 못하게 정권을 잡지 않았는가.”
“쿠데타라고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마로 잡은 후 직선제로 대통령이 되신 분이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당시 헌법에 의해 대통령이 되신 분이었다. 유신헌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기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한국 상황을 봤을 때 유신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두 분 대문에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하는데, 나 자신은 두 분 대통령 시절에 하고 싶은 일 못한 게 없었고 생각을 어찌하든 상관없었던 것으로 보아 독재를 했다면 국민들에게 독재를 한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북한에 호의적인 사람들에게 국한된 독재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정치적인 탄압도 독재다.”
“당신의 주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친북인사들을 탄압하지 않았으면 벌써 우리나라는 김일성 일가의 치하로 들어갔을 것이며 그리되었을 경우 그나마 누리던 자유마저 박탈당했으리라 보는데?”
“자유국가에서 독재를 했으니 비난 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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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질문에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에 대한 독재문제는 더 이상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질문을 바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어찌 보는지.”
“이건 전적으로 이명박의 정치보복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 검찰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검찰의 보복이기도 하다.”
“분명 박연차와 관련된 금전 거래는 있었다고 보는데?”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새 발의 피가 아닌가? 수백억을 해먹은 자들은 뻔뻔스럽게 잘 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정도 돈에도 부끄러워 자살을 할 만큼 양심적이었다. 검찰은 선고가 있기까지 무죄라는 법리를 철저히 짓밟으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수사상의 기밀까지 언론에 공개해서 인민재판을 일삼은 것이다. 이것이 어찌 보복이 아닌가?”
수백억이든 수십억이든 액수에 따라 양심이 있고 없음을 논하는 기준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사기밀에 해당하는 혐의까지 언론에 유출시켜 인민재판을 했다는 주장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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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검찰의 수사관행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기에 할 말이 없었던 거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자살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보복에 최후의 수단으로 항거한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정치보복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했으니 살신성인의 모범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자살도 경우에 따라 용납이 된다는 의미인지? 어느 사회든 자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정치인이 필요할 텐데, 오히려 자살에 앞장선 것을 미화美化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데?”
“이준열사가 헤이그에서 독립의지를 천명하고 자결한 것을 영웅적으로 보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결했으니 영웅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질문만 하기로 약속했던 만큼 내 판단을 그 시인에게 설득하려하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긍정할 수 없는 엉뚱한 해석으로 보더라도 이토록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논리로도 이해시킨다는 게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대화 중에 얻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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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인사들은 한 때, 북침설北侵說까지 유포한 적이 있었다. 당신도 북침이라고 믿는가?”
“북침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미국에서 남침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조장했다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남침유도설과 북침설은 분명 표현부터 다르고 의미하는 바도 다르다. 시인이신 당신이 그리 돌려 말한다면 그것조차 인정한다 치자. 그러나 어떤 근거로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건가?”
“당시 한반도를 태평양방위계획에서 제외한 것은 미국이 소련에게 ‘우리는 한반도를 포기할 테니 마음대로 해라’, 라고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달리 알고 있지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을 정당화시킬 수 없을 텐데?”
논리도 이처럼 비약飛躍하려면 어느 정도의 강심장을 지녀야 가능할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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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미국은 2차 대전에도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한 이후에야 참여했을 만큼 전쟁을 기피했던 나라다. 설혹 그들의 해석이 가능하더라도 어떻게 북침설까지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내 정서다.
“당신들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가? 우리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독재에 항거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독재를 비판하면 될 일이지 김일성 일가에게 그토록 호의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21세기에 삼대에 걸쳐 세습하는 그들이야말로 독재의 표상이 아닌가?”
“전쟁 없는 남북통일 염원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에게 나라를 헌상하면 전쟁 없이 남북통일은 될 거다. 그런 통일을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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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동문서답의 시작이다.
좌익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생각과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겠지만 피차간에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로 했음에도 그 좌익시인께서는 나를 설득하려 했을 뿐, 순간순간 동문서답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논리의 모순을 되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서 안타까웠다.
내 질문에 동문서답이 많은 것으로 보아 분명 주사파 같은 종북주의자 그룹에 속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도 이 땅에 진정한 좌익이 없기에 그들 편에 서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여하간 나로서는 이런 사람들을 종북주의자들과 격리시킬 방법이 무엇인지 해답이 없어 답답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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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엇다.
“지난 박근혜 탄핵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정당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거짓증거를 내세워 민중을 현혹시켜 촛불을 들도록 조장하고 결국 초불의 힘으로 인민재판을 한 것이라고 보는데?”
“증거가 거짓이라고 주장하지만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한 건 사실이 아닌가. 최순실이 누구의 힘으로 그토록 기업의 돈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여자와 기리도 가까웠다는 것이 탄핵파면사유로 충분하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합작하여 부정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고 구속재판을 한지 언제인데 아직도 증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우리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탄핵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불법 탄핵과 파면을 시켰다는 것이다. 법치국가가 민주주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은 공정한 법리에 있는데, 이처럼 헌법을 무시한 촛불세력들의 감정으로 재판을 했으니 어찌 죽창을 휘두르며 민중의 감정으로 판결해버리던 인민재판이 아니라 하겠는가. 묻고 싶다. 소위 진보, 좌익이라 하는 자들이 종북반역자들인지 진정 진보주의자들인지를.”
“나는 진보주의자일 뿐, 빨갱이는 아니다.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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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좌익은 없다는 것이 대화를 나누던 나의 판단이었다. 스스로 빨갱이가 아니라면서도 생각은 빨갱이들이 행하던 그것을 옳다는 것이다.
어찌 인민재판을 정당한 법리에 의한 재판이라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도 김정은이 여전히 건재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건지…….
이 시인의 인식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는 주장뿐이었다.
과연 김정은이나 문재인, 또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과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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